경향포럼

기술은 기후위기 해결 못해…‘녹색 제국주의’ 기업만 살찌울 것

런던 | 이창준·김경학 기자

‘글로벌 도박판’ 속에서 누가 지구를 망가뜨리는가…인도 종자 주권 운동가 반다나 시바

반다나 시바 박사가 지난달 12일 영국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창준 기자

반다나 시바 박사가 지난달 12일 영국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창준 기자

생물 다양성 확보가 기후위기의 해법…기술의 좋고 나쁨을 말하기 전에 기술 사용의 결과에 누가 책임질지 논의해야
코로나 겪는 동안 1% 자본가의 시장 지배력 커져…삼림 지키기 위해 ‘아마존 대사’ 만든 에콰도르처럼 변화의 시도 있기에 미래 낙관

반다나 시바 박사(71)는 40년간 토종 씨앗과 생물 다양성을 강조하는 종자 주권 운동을 펼쳐왔다. 자주농업을 강조하면서 국경을 넘나들며 거대 농업기업에 맞서 투쟁했다. 농업이 전체 산업의 35%를 차지하는 고향 인도에서는 ‘나브다냐(Navdanya)’라는 종자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이 운동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농민 운동과도 연이 있다. 시바 박사는 2003년 농민 이경해씨가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 개방 협상에 반대하며 자결했을 때 이 협상을 미국 농산물 수출기업 카길의 이해를 대변하는 ‘카길 협정’이라고 앞장서 비판했다. 그해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환경 영웅’으로 선정했다. 2010년에는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7인’에 들기도 했다.

시바 박사는 농업 분야에서 ‘상위 1%’ 거대 자본과 대기업이 생산 및 유통 전반을 독식하는 구조를 비판한다. 최근 이 같은 독식 구조가 농업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거대 자본이 빠르게 세를 불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금융 시스템과 과학기술을 ‘1%의 앞잡이’로 지목한다. 그는 “노동시장이 아닌 ‘글로벌 도박판’에서 부가 창출되면서 세계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의 횡포에 맞서려면 우선 무분별한 개발을 멈춰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 단위의 자급경제를 형성해 거대 자본이나 대기업이 영세 농민·상인들의 일터를 빼앗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시바 박사의 주장이다. 지난달 12일 영국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가장 집중하는 일은.

“주로 고향(인도) 집에서 농민들과 일하고 있다. 지역 사회와 농민들의 생계를 위해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는 운동을 한다. 가끔 출장을 다니는데, 지금은 국제동물복지단체 CIWF(Compassion in World Farming)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런던에 왔다.”

- 코로나19 대유행은 자본가들이 부를 증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팬데믹 기간 급증한 부채로 세계 경제는 위태로워졌다.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2015년 책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Oneness VS. the 1%)를 쓰면서 세계의 권력 구조를 살펴봤다. 대기업이 세계 1%의 위치에 있었다.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뱅가드그룹이 세계 경제 모델을 주도하고 있다. 블랙록의 대표(래리 핑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심지어 전쟁 중에도 나라 경제를 어떻게 운영할지 논의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대기업은 지역의 시장 상인들에게 문을 닫으라고 사실상 압박했다. 그사이 ‘아마존 프레시’(아마존이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 배달원들은 계속 늘었다. 그렇게 코로나19 대유행 2년 동안 억만장자들은 계속해서 부를 늘렸고, 그들의 시장 지배력은 더 커졌다. 그들은 이제 미디어와 교육, 농업 등 다른 지역 경제를 질식시키려 하고 있다. 꾸준히 성장해온 인류는 이제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듯하다.”

-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화두가 되고 있다. 드론, 무인 콤바인 등 농업에서도 AI 기술이 쓰이고 있는데, ‘기술 개발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농업 기술 발달은 사실 생산성을 늘리지 않았다.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화학비료를 통해 한 가지 품종을 기르는 것보다 생산성이 더 높다. 기술 발달은 수확물의 품질을 개선하지도 못했다. 생물 다양성이 확보된 씨앗이 유전자변형식품(GMO)보다 영양소가 더 풍부하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기술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기술이 도구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유리컵은 물을 담는 도구지, 물을 만들지 않는다. 물은 자연에서, 샘에서, 우물에서 나온다.”

- 무분별한 자원 개발은 코로나19 대유행을 초래했지만 동시에 고도의 과학기술 덕에 코로나19 백신이 신속히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술 개발과 성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

“기술 발달이 백신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친 것과 별개로 그 안전성은 계속 점검해야 한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다.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도구에 지나치게 큰 힘을 실어주는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기술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권력은 도구 소유자에게 집중된다. 기술의 좋고 나쁨을 말하기 전에 기술의 안전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결과에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 화이자와 모더나 등 제약회사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들과 이들의 백신 기술은 인류의 구원자로 봐야 할까, 99%를 착취하는 1%로 봐야 할까.

“빌 게이츠는 백신이 자신이 한 최고의 투자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화이자를 백신 개발사로만 생각하지만 화이자는 농약과 살충제를 만들고 있으며 GMO를 만드는 몬산토를 소유한 적도 있다. 화이자가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을 죽이는 분야는 보지 못한 채 백신에만 집중한다면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이다.”

- 책 <에코 페미니즘>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성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성이나 자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그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탐욕의 경제에 우월주의가 합쳐진 현상이다. 자연을 죽어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천연자원을 멋대로 착취해갈 것이고, 여성을 그저 대상으로 보는 사람은 여성을 통제하고 여성성을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 과거와 같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고도 성장을 통해 악화하는 이상기후와 부의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지구는 40억년에 걸쳐 현재의 기후상태를 만들었지만 인류는 지난 100년 동안 석유를 쓰면서 급격한 기후변화를 야기했다. 이제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고 비료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유전공학이나 지구공학의 이름으로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녹색 제국주의’는 날씨, 식량, 지구 생태계를 통제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기후위기를 통해 오히려 이익을 얻고자 한다. ‘그린 워싱’(위장환경주의)이 그 예다. 그들은 ‘나는 계속 개인 제트기를 탈 것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려면 당신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기후위기 해결은 유기농법이나 생물 다양성 확보를 통해 가능하다.”

- ‘1%의 앞잡이’로 금융과 기술을 지목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과 기술 발전을 배제한 채 인류의 미래를 그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1%의 앞잡이인 금융과 기술을 99%의 미래와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금융 및 기술은 1%가 쓰는 도구다. 그들은 실체가 없는 것에서 수익을 만들어내면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정상적인 부는 노동을 통해 창출돼야 하는데 지금은 ‘글로벌 도박판’ 속에서 돈이 벌리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자주 무너진다. 2008년에도 그랬고 미국은 지금도 그렇다. 금융과 기술은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상위 1%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데 쓰는 도구일 뿐이다. 물론 이런 도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금융과 기술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 금융과 기술은 더 고차원적인 목적을 위해 쓰여야 한다.”

- 아직까지 세계 경제 흐름은 성장 일변도이다.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나. 국가나 지방정부 중 이상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면.

“옳은 길로 가려는 국가들도 있지만 1%의 자본가들이 방해하고 있다. 부탄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으로 자신들을 정의하지 않으려 했다. 성장이 아닌 행복을 측정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GNH) 지수를 만들어냈다. 에콰도르 정부는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켰으며 아마존의 삼림과 그 밑에 매장된 석유를 지키기 위해 아마존 대사직을 만들어 몇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곳곳에서 그들을 공격했다. ‘어떻게 석유를 묵혀둘 수 있느냐’ ‘자연이 무슨 권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변화 시도가 실패하기도 하지만, 또 새로운 시도가 등장하기도 한다. 계속 시도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 마을이나 지역 단위를 넘어서 국가 단위로 공유지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글로벌 대기업이 개입할 수 없는 자급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국가 단위 변화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국가 단위의 시도도 가능하다. 다만 지금은 대기업이나 자본가들이 정부까지 쥐락펴락하고 있어 녹록지 않기는 하다. 일단 국가보다 낮은 단위에서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마을·지역 단위의 자급경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시도가 이어진다면 국가의 경제 체질 자체를 조금씩 바꿔갈 수 있다.”

- 한국에 팬들이 많다. 6월28일 <경향포럼>에 참석하게 됐는데,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경향포럼>에서는 지난 40년 동안 집중해온 일을 설명할 것이다. 자연과 일하면서 지역 단위의 자급경제를 구축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이 건강해지는 것 말이다. 또 모두가 사회의 부를 공유하는 순환경제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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