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 행동주의 펀드 ‘후폭풍’은 만만찮네

박상영 기자

삼성물산 주총서 ‘배당 확대’ 부결
주가 전 거래일 대비 9.78% 급락
‘투자 청사진 제시’ 등 목소리 분출

KT&G선 차기 대표 놓고 표 대결
잡음 속 ‘통합 집중투표제’ 변수로

최근 주주총회에서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의 안건이 부결되면서 주주환원 확대 요구가 한풀 꺾이는 모습이다. 기업들로선 당장 한숨은 돌렸지만, 향후 기업 가치의 근본적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열린 삼성물산 주총에서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의 배당 확대안이 23% 지지를 받는 데 그쳐 부결됐다. 5개 행동주의 펀드는 회사 측에 5000억원어치 자사주 매입과 함께 보통주와 우선주에 대해 주당 각각 4500원, 4550원씩 배당할 것을 요구했지만 모두 주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오는 22일 열리는 금호석유화학 주총에서도 자사주를 전량 소각해야 한다는 행동주의 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주주제안자 측은) 자사주가 지배력 강화 목적으로 사용됐거나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앞서 차파트너스는 “18.4%에 달하는 자사주가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제3자에게 처분 또는 매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호석유화학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다”며 자사주를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호석유화학이 차파트너스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여 자사주 262만4417주를 향후 3년간 소각하기로 한 점도 표 대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18.4%)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미풍에 그치고 있지만 기업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당장 행동주의 펀드들의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요구가 모두 부결된 이후 삼성물산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9.78%나 내렸다. 15일 주총에서도 신사업에 대한 투자 청사진을 제시해달라는 요구가 잇따랐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지분구조가 애초부터 총수 일가에 유리한 만큼 행동주의 펀드의 패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일부 회사의 경우 차기 대표 선임을 두고 표 대결이 현실화하는 사례도 있다. 오는 28일 열리는 KT&G 주총에서 지분 7.11%를 보유한 최대주주 기업은행과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회사 측이 상정한 방경만 수석부사장의 대표이사 사장 선임 안건에 반대하겠다고 예고했다. 기업은행 측은 “방 수석부사장 선임 후 KT&G 영업이익이 20% 이상 줄었고, 사외이사 외유성 출장 등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며 다른 주주들에게도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이번 주총에서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구분하지 않고 묶어서 이사 후보자 중 한 사람에게 몰아서 투표할 수 있는 통합 집중투표제가 적용돼 치열한 표 대결이 예상된다. 1주당 대표이사와 사외이사 후보 2명 등 3명의 선임 건에 대해 총 2개의 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2표를 모두 한 사람에게 던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투표 결과 다득표순에 따라 상위 득표자 2인이 이사로 선임된다. 단독 후보인 만큼 대표이사 선임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작지만, ISS가 방 수석부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에 사실상 반대를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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