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안 따져도 대출금 92% 돌아와”

김여란 기자

‘더불어사는사람들’ 취약계층 웃음 찾아 준 생활자금 무이자 대출

무이자로, 담보도 신용보증도 따지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 신용불량자나 빈곤층에 한하지만 가난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단체 ‘더불어사는사람들’은 대출자가 작성한 대로 신용상태, 자산, 직업 등을 믿고 최대 100만원까지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2011년 여름 설립된 더불어사는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은 이들은 36명, 누적 대출금은 3000만원이다. 임대주택 보증금, 불어난 사채 이자, 병원비 등 누구에게는 적은 50만원, 100만원이 없어 절망했던 이들에게 더불어사는사람들은 ‘금융쉼터’가 돼줬다. 팩스로 보내온 대출 약정서 1장과 주민등록증 사본만 받고 대출해준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운 후한 조건임에도 돈을 빌려줄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이창호 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57)는 노점상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혹시 돈이 필요하지 않으냐, 무이자로 빌려주겠다”고 했다가 사기꾼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단체가 생기고 반년이 지나서야 지역 자활센터를 통해 대출자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저소득층 서민들에게 담보나 신용보증 없이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의 이창호 상임대표(57·오른쪽)와 돈을 빌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이영석씨(49)가 서울 용산에 있는 이씨의 구두수선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저소득층 서민들에게 담보나 신용보증 없이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더불어사는사람들’의 이창호 상임대표(57·오른쪽)와 돈을 빌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이영석씨(49)가 서울 용산에 있는 이씨의 구두수선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대출금 상환율은 92%에 달한다. 무담보 무보증임에도 상환율이 높은 것은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철저한 고객관리 덕택이다. 이 대표는 제날짜에 상환을 하지 못하는 대출자가 만드는 물건을 납품할 곳을 직접 알아봐줬다. 치아 상태가 나쁜 대출자를 위해서는 저렴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직접 수소문하고, 진료비를 일단 부담해주고 나중에 갚도록 했다. 이 대표는 “돈과 대출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연이율 1%로, 100만원 대출 시 매달 1000원이 못되는 이자를 받지만 상환을 마치면 축하금으로 되돌려준다. 무이자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우리가 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라며 “누구도 손잡아주지 않아 외로웠던 이들에게 세상에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 곳이 있다는 위로를 줘서 다시 서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사는사람들 대출자의 3분의 2는 빈곤 상태이면서도 정부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대출목적 또한 긴급한 생활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에도 저소득층을 위한 공제협동조합이나 정부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이 있지만, 특정 자격요건 없이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자립 과정까지 보살피는 기관은 없었다.

현재 금고 잔액은 80만원, 1월 말에 상환금이 들어와야 3명에게 추가로 대출이 가능하다. 후원회원 330여명이 모은 종잣돈 1800만원이 자산의 전부다. 기대를 하고 연락을 취한 이들에게 빌려줄 돈이 없어 미안한 경우도 다반사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정부 등 지원 없이 스스로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대출을 받은 이들이 다시 후원회원이 돼 다른 사람을 돕는 선순환 구조와 후원회원들이 각자의 재능으로 서로를 돕는 공동체를 청사진으로 그리고 있다. 모든 일은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있다. 따로 사무실도 없어, 서울 마포구 여성자원금고가 배려해 내준 공간 한쪽에서 이 대표와 전양수 이사장(71), 배순호 부이사장(71)이 1주일에 한두번 회의를 진행한다.

1970년대부터 신용협동조합 운동에 몸담아온 전 이사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생긴 신협이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정말 어려운 사람은 돈을 빌릴 수 없는 구조가 됐다”며 더불어사는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성공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중 외국계 은행에서 30년간 일하면서 부유층 고객만을 상대해왔던 배 부이사장은 조기 퇴직 후, 키르기스스탄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10년간 운영했다.

이 대표도 정부 미소금융재단에서 3년여간 일했다. 더 절박한 사람들을 더 쉽게 돕고 싶어서 정기적인 월급과 사무실을 뒤로하고 나왔다. 이 대표는 보따리장수를 자처해 하루 종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다닌다. 대출자와 친구처럼 관계를 유지하면서 필요로 하는 각종 자원을 연결해 자립을 돕는 것이다. 그는 “자선이나 복지 지원은 해답이 아니라, 신뢰를 통해 자립 의지를 형성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정부 등 기관의 대출제도 역시 자활 지원 및 금융소비교육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은 “돈을 빌려주고 창업방법을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 돈 쓰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자에 대한 진실된 애정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이 대표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신뢰를 최우선시하는 금융모델이 정부 및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대출제도에까지 확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