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성 버리고 대담하게, 다변화해야 산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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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새벽 서울에 사이렌이 울렸다. 이런 걸 본 적 없는 아들은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북한발 해프닝이었고, 아들의 놀란 모습은 어릴 적 어떤 날이 떠오르게 했다. 1983년 5월5일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이다. 중국이 중공으로 불리던 그 시절에, 중국은 교역 대상이 아닌 갈 수 없는 위험한 나라였다. 필자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9시 뉴스에 비친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을 가던 중국 승객들의 모습은 더욱 초라하고 평범해 보였다. 이후 중국은 승객 송환을 위한 대표단을 파견했다. 중국이 적대국에서 교섭이 가능한 국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1992년 8월24일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었고, 이후 2016년 시작된 사드 보복 사태까지 둘의 간극은 좁혀지고, 경제교류는 지속 확대되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중국은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다. 서로가 윈윈하는 ‘세계화’라는 슬로건 아래 차이아메리카의 시대는 밝기만 했다. 중국이 디플레를 수출하고, 미국은 돈을 풀고 과잉소비하는 글로벌 불균형 성장이 세계화의 산물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당시 한국의 조선, 화학, 중공업 등 중후장대 산업은 그 수혜를 고스란히 받은 견인차였다. 아쉽게도 이러한 불균형 성장은 영원히 지속되기 힘들다. 미국이 더 이상 일방적인 과잉소비를 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자, 중국도 스스로 소비를 키우기 시작한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 내수시장이 급성장하는 구간에서도 한국 기업은 중국 경제의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 K팝 열기가 뜨거웠고, K드라마의 인기도 대단했다. 당시 중국 소비 성장에 힘입은 국내 화장품, 자동차 등 소비재 산업의 주가도 뜨거웠다.

하지만 2023년 현재, 모든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이 해양이 아닌 대륙으로의 연결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한국 경제의 미래였고, 기업들은 중국으로 달려갔고, 부모들은 자식을 중국으로 유학 보냈다. 중국 역시 한국을 최선의 파트너로 여겨줬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의 밀월 기간이 끝나갈 때, 한국과 중국의 거리도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6년 시작된 사드 보복과 ‘한한령’, 2020년대 애국소비 운동은 한국 기업들을 향한 중국 정부의 배척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시진핑 집권 후 모든 것이 변했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경제보다 안보에 정책 우선순위를 둔 군사 굴기 야심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패권을 내놓을 생각은 없기에 미국과 중국은 이제 협력이 아닌 대결의 시대에 들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기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문제는 두 나라 모두 무역을 빌미로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데 있다. 한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미 답지는 썼다. 2020년 5월 30.8%에 달했던 한국 전체 수출액 대비 중국 수출 비중은 지난 4월 19.1%까지 내려왔다. 중국 수출 감소분을 미국 18.5%와 EU 12.3%, 그리고 아세안 16.7%로 채워가고 있다. K팝 그룹은 중국인 멤버로 꼭 채워 넣었던 자리에 태국 내지 베트남 멤버를 선택했고, 중국 시장에서 잃은 지위를 오히려 미국과 유럽, 동남아에서 더 많이 찾아왔다. 동시에 첨단산업과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긴 흐름으로 볼 때, 중국의 추격으로 잠식 위기에 들어섰던 반도체와 2차전지 산업에는 다행스러운 변화이다. 사드 이전까지 한국의 수출이 대중 수출에 달려 있었다면, 이제 중국 외 지역으로 성장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한국은 중국의 ‘의존성’ 함정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중국 외의 시장으로 다변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

1992년 이후 한국은 중국 경제에 의존하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다. 길게 보면 경쟁자인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로 첨단산업 분야에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을 기회를 잃었을 때, 더 멀리 달아나야 한다. 한국의 수출 대표기업들을 향한 기대 수준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주식 투자를 미룰 이유가 없다. 머뭇거림보다 대담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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