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 RE100 가입 속도 내는 기업들

김상범 기자

미국·유럽 고객사들의 요구로 필수 트렌드화, 매출과 직결

현대차·네이버 등 속속 가입…삼성전자도 연내 동참 검토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올라…“정부의 제도적 뒷받침 필요”

일찌감치 4년 전 ‘RE100’(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에 가입한 애플은 2030년까지 모든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사실 애플만의 목표치가 아니다. 100% 외주생산을 맡기는 애플의 탄소배출 제로 목표는 외주 협력업체의 배출량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을 납품하는 협력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이다. BMW 역시 삼성SDI 등 주요 납품업체들에 RE100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국제적 캠페인 ‘RE100’ 가입을 서두르는 것은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네이버는 22일 국내 플랫폼 기업 중에서 처음으로 RE100 참여를 선언했고, 삼성, SK, LG,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사들도 RE100에 이미 가입했거나 가입 여부를 검토하는 중이다. ‘재생 가능한 전기 100%(Renewable Electricity)’를 뜻하는 RE100은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캠페인으로,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유럽·북미 등 고객사들의 요구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필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RE100이 기업들의 에너지 조달비용 상승으로 직결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의 재생에너지 확보 같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는 지난 22일 국내 인터넷 플랫폼업체 중 최초로 RE100 가입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99% 이상이 인터넷 데이터 센터(IDC) 및 사옥 전력 사용으로 발생한다. 네이버는 2030년까지 이 전력의 6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2040년까지 100%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RE100을 주도하는 비영리 환경단체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에 따르면 이날까지 가입한 기업은 총 379개다. 한국 기업은 네이버까지 총 22개가 RE100 가입을 완료했다. 미국(96곳), 일본(72곳), 영국(48곳)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숫자다. 올해에만 현대차, 기아, KT, LG이노텍,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인천국제공항공사, 네이버 등 8곳이 RE100 선언에 합류하는 등 지난해 초만 해도 가입사 숫자가 5~6곳에 불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국내 기업들의 참가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한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캠페인이지만, 해외 고객사 등의 참여 요구로 인해 매출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는 기업 생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주요 협력사인 삼성전자가 올해 중 RE100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국내외 협력사들에 RE100 진척 상황을 문의하는 등 내부 검토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 이면에는 미국과 유럽 등 각국 정부의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수입 품목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세금을 매기는 ‘탄소국경세’를 적용한다. RE100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상장기업들에 ‘기후 리스크’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사업장 주변에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해 재생에너지를 직접 조달하거나,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전력거래계약(PPA) 등의 방법을 사용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맞춘다. REC는 발전업체가 재생에너지를 공급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로,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손쉽게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REC 가격의 변동성이 커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공급자와 1 대 1로 계약해 장기간 공급을 받는 전력구매계약(PPA)도 선호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이 큰 걸림돌이다. 지난해 전력 소비 상위 30개 기업이 사용한 전력은 총 102.92TWh다. 반면 한국전력의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09TWh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려면 태양광·풍력 발전설비를 2배 이상 늘려야 한다. 지난 7월 RE100에 가입돼 있는 국내 기업들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좁은 국토면적으로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 EU, 북미 등과 달리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렵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정부가 기업들을 위해 재생에너지 관련 규제 개선, 공급망 부대비용 절감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신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국내 재생에너지의 70~80%를 태양광 발전이 차지하고 있다”며 “태양광 패널 이격거리 규정 등 재생에너지 보급을 둔화하는 규제를 개선해 수익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PPA에 드는 계통연계비용(한전의 전기설비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 등 부담을 완화시켜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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