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밑지고 판다, 왜?

김형규·이성희 기자

▲ 희귀 질환 환아 위한 특수분유
기초 수액제 등 퇴장 방지 의약품
공정 까다롭고 단가 높지만
“수익보다 사명감·자긍심”

▲ 유방암 환자 전용 속옷
채식주의자 배려한 야채 라면
신생아 모자 뜨기 키트도
대표적 ‘사회공헌형 상품’
이미지 제고에 효과 만점

우스갯소리로 3대 거짓말이라는 게 있다. 처녀의 “시집 안 간다”, 노인의 “이제 죽어야지”, 장사꾼의 “밑지고 판다”는 말이다.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 말은 정말 거짓말일까. 대개는 거짓이지만, 가끔 참말인 경우도 있다. 일부 제품에 한해 조금 손해를 보고 파는 것이다. 물론 그 대신 사회공헌 활동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에, 완전히 밑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매일유업 PKU 환아 특수분유

매일유업 PKU 환아 특수분유

매일유업이 생산하는 ‘착한 분유’가 대표적이다. 매일유업은 1999년부터 페닐케톤뇨증(PKU)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PKU는 페닐알라닌이라는 단백질 속 아미노산을 분해하지 못하는 희귀병이다. 쌀밥과 고기, 생선, 콩 등 단백질이 든 음식을 보통 사람과 똑같이 먹으면 분해 효소 부족으로 페닐알라닌이 몸에 그대로 축적된다. 그 결과 지능, 성장 장애를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국내에는 현재 120여명의 PKU 환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매일유업은 PKU를 포함한 선천성 대사 이상 환아를 위해 특정 아미노산은 제거하고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성분을 보충한 특수분유 8종 10개 제품을 자체 기술로 개발해 판매 중이다. 국내 16명뿐인 단풍당뇨증 환아를 위한 분유도 만든다. 제품 특성상 제조 과정에 수작업이 필요하고 판매량도 연간 3000캔에서 최대 9000여캔에 불과해 손실이 불가피하다.

수익성을 생각하면 진작 접었어야 하지만 국내 대표 유제품 업체로서 책임감과 자긍심 때문에 이를 만들고 있다는 게 업체 설명이다. 덕분에 환아 부모들은 16년째 수입 특수분유의 절반 가격으로 아이 먹거리 걱정을 덜고 있다.

CJ제일제당 햇반 저단백밥

CJ제일제당 햇반 저단백밥

CJ제일제당도 2009년부터 PKU 환자를 위한 즉석밥 제품인 ‘햇반 저단백밥’을 팔고 있다. 저단백밥은 단백질 함량이 보통 쌀밥의 10% 수준이다. PKU를 앓는 자녀를 둔 직원 건의로 개발된 이 제품은 독자적인 단백질 제거 기술로 밥맛을 높였다. 가격도 1800원으로 일본 수입 제품의 절반 수준이다. 2012년엔 세계 3대 식품박람회 중 하나인 ‘파리 국제식품박람회’에서 200대 혁신제품에 선정됐다.

CJ제일제당은 저단백밥의 초기 시설 투자에만 8억원을 들였다. 효소 처리를 위한 별도 생산라인 운영 등 추가 비용도 적잖다. 반면 매출은 연간 2억원 수준으로 전체 햇반 매출의 0.6%에 불과하다. 원가를 보전하기도 빠듯하다.

최동재 CJ제일제당 햇반팀장은 “과자와 스파게티, 빵 등 저단백 가공식품이 다양한 외국과 달리 한국에는 아직도 PKU 환자들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한정돼 있다”며 “저단백 즉석밥 판매는 일종의 재능기부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CJ헬스케어 기초수액제

CJ헬스케어 기초수액제

이 같은 ‘밑지는 장사’는 제약업계에도 있다. 제약업계에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꼭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낮은 ‘퇴장 방지 의약품’이라는 게 있다. 포도당으로 불리는 기초 수액제가 대표적이다. 혈관에 직접 들어가기 때문에 제조 공정이 까다로워 생산원가가 높지만 기초약제라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처지다. 현재 CJ헬스케어와 JW중외제약, 대한약품 등이 생산·공급한다.

한독은 할리우드 영화 <로렌조 오일>을 통해 알려진 부신백질이영양증(ALD) 특수식이를 수입·판매하고 있다. ALD는 뇌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희귀질환이다. 한독약품 관계자는 “ALD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진행을 늦추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로렌조 오일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수익보다 사명감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비안 유방암 환자 전용 브래지어

비비안 유방암 환자 전용 브래지어

속옷 브랜드 남영비비안도 환자에게 위안을 주는 속옷을 만든다. 유방암 환자를 위한 전용 브래지어다.

유방암 전용 브래지어에는 가슴을 모아주는 와이어가 없다. 딱딱한 재질로 된 와이어는 수술 후 예민해진 가슴을 눌러 환자에게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브래지어 안쪽에 가슴 모양의 실리콘 패드를 넣을 수 있도록 입구가 넓은 보조패드 삽입구가 있다.

남영비비안 관계자는 “매장에서 주문하면 체형에 맞게 제작하지만 가격은 일반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예쁜 속옷을 입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사이즈를 다양화하고 디자인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 야채라면

농심 야채라면

농심도 곤궁한 처지는 아니지만, 남다른 취향을 가진 이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2013년 3월 채식주의자를 위한 ‘야채라면’을 출시했다. 지방 함량과 열량이 국내 라면 중 최저 수준인 야채라면은 육류와 생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버섯, 양파, 마늘, 고추 등 7가지 채소로만 맛을 냈다.

농심이 만드는 52종의 라면은 물론 국내 시판 중인 220여종의 라면 가운데 채식주의자를 위한 라면은 야채라면이 유일하다. 야채라면의 지난해 매출은 20억원으로 농심의 연간 전체 라면 매출의 0.2% 수준이다.

농심 관계자는 “국내에선 채식주의자, 스님, 이슬람 신자 등 소비층이 적어 이윤을 내기 힘들지만 다양한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공장을 계속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GS샵 신생아살리기 모자 뜨기 키트 도네이션 방송 장면.

GS샵 신생아살리기 모자 뜨기 키트 도네이션 방송 장면.

GS샵이 2007년부터 판매 중인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키트도 일종의 사회공헌형 장사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는 저체온증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의 영·유아를 살리기 위해 털모자를 직접 만들어 보내는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NGO) ‘세이브 더 칠드런’의 기부 캠페인이다.

키트에는 털모자 2개를 만들 수 있는 뜨개질 바늘 2개와 털실 2개가 들어 있다. 가격은 2만원이다. GS샵은 키트 제작 및 발송 비용을 후원하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다.

홈쇼핑 방송을 통해 캠페인 알리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주로 10월부터 3월까지 비정기적으로 방송한다. 지난해 12월19일 오후 3시20분부터 30분간 방송해 3000만원어치를 팔았다. 이 시간대에 식품이나 주방가전 등을 판매하면 5000만~1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이를 포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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