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고수익 누리는 은행·현금 자산가…기업 옥석 가릴 계기

유희곤 기자

‘10억 부자’들 예·적금 증가

4대 은행 이자이익만 40조

가계대출 줄며 건전성 강화

거품 빠져 우량기업은 기회

서울 한남동에 사는 A씨는 지난해 10월 국고채 30년물을 5억원에 매수했다. 국고채 30년물 금리는 지난해 초 연 3.733%를 기록한 후 등락을 거듭하다 10월23일 연 4.307%로 연고점을 기록한 뒤 지난해 말에는 3.088%까지 떨어졌다. 올 초에도 이런 흐름이 계속되자 A씨는 지난 1월 보유 물량을 모두 팔았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데, A씨는 고금리 때 채권을 싼 가격에 매입했다가 금리가 잠시 꺾이던 시점에 비싼 가격에 되팔아 20%의 수익을 거뒀다.

A씨는 고금리 시대에 여윳돈을 활용해 금융상품 투자로 수익을 낸 대표적인 사례다. 한 시중은행 PB센터장은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장기 국채나 30년짜리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해 이자수익을 내거나 금리 하락(채권 가격 상승) 기간에 매도해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금리 기조가 2022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기준금리를 연 0.50%에서 3.5%까지 올린 후 10차례 연속 동결하며 기존 금리를 유지했다. 높은 기준금리는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통상 6개월 또는 1년마다 지표금리를 반영하는 변동형 비중이 많은 국내 대출시장 특성상 빚이 많은 사람은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커지지만 현금 보유액이 많은 자산가는 고금리 상품 투자로 이득을 볼 수 있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23 한국 부자 보고서’를 보면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사람은 지난해 말 기준 45만6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0.89%로 추정됐다. 이들의 세부 자산을 보면 부동산자산이 56.2%, 금융자산이 37.9%를 차지했다. 금융자산 비중이 일반 가구(15.6%)보다 2.4배 높았고, 예·적금 보유율은 94.3%로 2022년보다 9.8%포인트 증가했다.

업종별로 보면 고금리 시대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곳은 금융업이다.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연결 기준 14조9682억원으로 전년보다 4.5% 감소했지만 이자이익은 1.9% 늘어난 40조6553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은 금융당국의 요구로 늘어난 상생금융 비용과 부실대출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확대로 역성장했지만, 이자이익은 고금리 장기화로 예대마진(대출 금리와 저축성 수신 금리 차이)이 커지면서 사상 처음으로 40조원을 넘어섰다.

이자 부담 증가에 따른 가계부채 축소는 금융 전반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고금리 시대의 긍정적 효과로 볼 수 있다. 신규 대출은 줄이고 기존 대출은 상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22년 말 전 금융권 가계대출(금융당국 집계)은 전년보다 8조7000억원 감소하며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한은 집계)도 2022년 말 1058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조6000억원 감소하며 통계를 작성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올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3월까지 전년 대비 5조8000억원 줄었다.

고금리 기조는 시장에서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1년 ‘기업역동성 제고를 위한 한계기업 구조개혁 필요성’ 보고서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초저금리 기조로 만성적인 한계기업이 증가했고, 이들이 산업 내 한정된 희소자원을 과다 점유하면서 정상기업의 인적·물적 자원 활용에 제약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가 나빠지면 한계기업은 도산하고 상대적으로 우량한 기업은 생존해 경기 회복 시 반사이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정부의 정책 실패가 맞물려 2020~2021년 급등했던 아파트 가격도 2022년부터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2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연간 7.70% 하락하며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2.18%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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