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재앙 ‘소빙하기’ 극복 과정 과학·산업 혁명 이뤄 근대 이행

조천호 대기과학자

새 세상 열게 한 소빙하기

‘얼어붙은 템스강(The Frozen Thames)’, 1677년, 아브라함 혼디우스. 소빙하기에 얼어붙은 런던 템스강 위에서 축제가 열렸다. 코끼리가 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곡예가 펼쳐질 정도로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

‘얼어붙은 템스강(The Frozen Thames)’, 1677년, 아브라함 혼디우스. 소빙하기에 얼어붙은 런던 템스강 위에서 축제가 열렸다. 코끼리가 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곡예가 펼쳐질 정도로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

14세기 시작…19세기 최저 기온
북미는 17세기보다 0.6도 낮아
기근·전염병에 마녀사냥 참극

소빙하기는 인류에게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한 시기이기도 했다. 14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 중반까지 소빙하기가 이어졌다. 이 기간 내내 추위가 어디서나 발생하지는 않았다. 동아시아는 이 시기 내내 서늘했고, 유럽에서 가장 추웠던 시기는 17세기였지만 북미 지역은 19세기에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 이때 기온은 1950∼1980년의 평균보다 0.4도, 가장 혹독했던 17세기보다 0.6도 정도 낮았다.

소빙하기는 태양과 화산의 활동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생겼다. 이 당시 햇볕 강도가 오늘날보다 0.25∼0.4% 약했다. 태양 흑점이 1460∼1550년과 1645∼1715년에 거의 없었다. 흑점 온도는 밝은 부분보다 약 2000도 낮지만, 흑점이 감소하면 자기장이 약해지면서 태양 에너지가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6세기 이후 화산이 자주 폭발한 것의 영향도 작용했다.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성층권으로 높이 올라가 햇빛을 막았기 때문이다.

태양과 화산의 변화 외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소빙하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1200년 전후 284PPM에서 1610년 272PPM으로 감소했다. 기온이 낮아지면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아 들어가는 양이 많아진다. 이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져 기온이 더 떨어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소빙하기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의 감소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고기후학자인 러디먼은 이산화탄소 감소와 인구 감소 간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1347년과 1352년 사이에 발생한 흑사병은 유럽 인구를 2500만명 감소시켰다. 1492년과 1700년 사이 북미에서 유럽인들이 가져온 질병에 의해 원주민 인구의 85∼90%인 5000만명이 줄었다. 중국에서도 13∼14세기와 17∼18세기에 걸쳐 기아와 전염병으로 인구가 각각 3000만명과 2000만명 정도 감소했다. 러디먼은 인구가 급격하게 줄면서 해당 지역의 농지가 버려져 숲으로 전환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분석했다. 숲에서는 농지보다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는 인과관계를 제시했다.

재난 극복 위해 영농 혁신 등
사회 체계 문제 인식 변화 추동
나무 대신 석탄 ‘증기기관’ 발명

산업혁명 이전 모든 세계는 농업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런 사회에서 경제는 작물의 성장 조건을 결정하는 기후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소빙하기에 작물 성장 기간이 짧아지고 경작지가 줄어들었다. 이 기간에 추위만이 아니라 날씨 변동이 심해 가뭄과 폭풍우가 자주 일어났는데, 이는 기온 하강보다 농작물에 더 심한 피해를 주었다.

유럽에서 기근이 급증했다. 북유럽 지역 사람 뼈대에 관한 연구에서 평균 신장이 소빙하기 이전보다 18세기에 6.4㎝ 정도 줄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영양실조로 인해 신체의 면역체계가 약하기 때문에 전염병 피해도 컸다. 기근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었으며, 이 때문에 전염병이 여러 도시로 퍼졌다. 또한, 왕조 간의 다툼과 종교 갈등이 고조되어 전례 없는 폭동과 전쟁이 발생했다. 추위가 이런 소요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정치·사회적 위기를 더욱더 증폭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는 농업 생산량이 줄어들어 곡물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부닥쳤다. 특히 1347년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 이후로도 흑사병의 공세는 400년 동안 파상적으로 이어졌다. 인구가 많은 도시가 가장 심한 타격을 입었다. 한때 파리와 런던에서는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였다.

엄혹한 이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혹독한 날씨, 흉작과 전염병은 신이 내린 벌이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몹시 분노한 신이 고통을 멈춰 달라는 인간의 탄원을 거부한 것으로 생각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이 닥치면 비합리적인 집단 선동으로 희생양을 찾아 사태를 무마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세 권력자들은 민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제물을 찾기 시작했다. 희생양으로 삼을 만한 이를 형벌에 처함으로써 신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죄악이 전염병을 불렀다’는 잘못 짚은 신념은 ‘악마를 죽여야 한다’는 왜곡된 신념으로 비화했다. ‘유대인이 흑사병을 퍼뜨렸다’라는 말이 돌았다.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힌 군중들이 유럽 여러 도시에서 유대인들을 수백명씩 죽였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소빙하기 고통이 마녀 때문이라고 믿었다. 17세기까지 대략 20만~50만명이 마녀사냥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중 3분의 2가 여성이었다.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던 해는 거의 언제나 소빙하기의 춥고 가혹했던 기간과 일치했다.

하지만 낙인과 혐오로 그토록 많은 유대인과 마녀를 죽여도 기후가 나아지지 않았고, 기아와 전염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대인은 악마가 아니라 소수민족일 뿐이었고, 마녀는 마녀가 아니라 사회 최약자인 하류층의 여성일 뿐이었다.

각기 다른 위도의 빙하, 퇴적물과 나무 나이테에서 산출한 기온 아노말리(1950∼1980년 평균 기온과의 차이). 출처 위키피디아

각기 다른 위도의 빙하, 퇴적물과 나무 나이테에서 산출한 기온 아노말리(1950∼1980년 평균 기온과의 차이). 출처 위키피디아

한편, 소빙하기에 각종 재난이 닥치고 여기에 수확량이 떨어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았다. 영농 혁신의 선두 주자는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였다. 휴경지 농법을 고안하고 농작물 재배를 다양화했으며, 기상 이변에 대비해 댐을 쌓아 간척지를 개척했다. 영국도 이를 따라 했으나 프랑스는 대혁명 전까지도 이를 제대로 보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영농 혁신에 뒤처지면서 기근에 더 시달렸다.

프랑스 정부의 정책 실패로 1778년부터 불경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에 1783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해 140개 화구에서 2년간 화산재를 뿜어냈다. 이로 인해 추위가 가중되었고 흉작이 들어 농산물 가격 폭등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1785년 이후 프랑스에는 흉작 피해의 영향을 완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비축 식량이 없었다. 1788년 7월 초대형 우박을 쏟아내는 폭우대가 벨기에,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걸쳐 지나가면서 대규모 피해를 발생시켰다. 1788년에서 1789년에 걸친 매우 추운 겨울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중단되어 재정위기가 찾아왔다. 루이 16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삼부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삼부회의를 구성하는 성직자와 귀족은 특별과세를 거부하고 이를 평민에게 전가하려 했다. 평민들은 이에 반발해 국민의회를 발족했다. 국왕이 무력으로 국민의회를 해산시키려 하자 파리 시민들이 무기 탈취를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이날 곡물 가격이 가장 높았다.

영국선 근대 과학 태동 기회로
중국 가뭄·홍수에 원나라 붕괴
조선은 ‘양란’보다 더 큰 피해

계몽된 사회는 기상 이변, 흉작과 전염병을 신의 벌이나 마녀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그 사회 체계의 문제로 보았다. 즉 기상 격변에 따른 기근은 지배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 사회·경제적 위기를 넘어 종교·정치적 위기로 치달을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결국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다.

한편 정치·사회뿐만이 아니라 산업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소빙하기 유럽에서는 나무 장작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난방, 건축과 초기 산업에 필요한 목재 수요 증가로 공급이 고갈되었다. 목재 가격이 1540년에서 1640년 사이 약 8배 상승했다. 이로 인해 목재를 대신해 석탄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런던과 같은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석탄 수요가 대폭 증가했다. 증가하는 수요에 맞춰 석탄 생산을 늘리기 위한 혁신 과정에서 증기기관이 발명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소빙하기에 영국은 근대 과학을 태동시키는 기회를 마련했다. 아시아에서도 소빙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중국 명나라에서는 1618년부터 1643년까지 가뭄이 계속되었다. 굶어서 죽는 사람이 많았고, 대규모 유민으로 폭력이 난무했다. 결국 명나라는 농민봉기로 멸망했고, 그 후 만주 왕조인 청나라가 들어섰다. 그런데 명나라는 기후 조건이 비슷하게 열악했던 약 300년 전, 몽골 왕조인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워졌다. 원나라는 극심한 가뭄과 큰 홍수를 번갈아 겪으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기근과 전염병이 원나라를 강타했고 약탈과 반란이 일어났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봉기한 농민의 지도자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 말이었다. 1309년과 1367년에는 한여름에도 바람이 너무 차가워 사람들이 겨울옷이나 가죽옷을 입어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가뭄마저 이어져 백성들이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온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고, 마침내 1392년 조선왕조를 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이어 1650년 이후 가뭄과 홍수를 극심하게 겪었다. 특히 1670년과 1671년 두 해에 걸쳐 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이를 ‘경신 대기근(庚辛 大饑饉)’이라 한다. 이 기근은 앞서 전란을 겪었던 어르신들이 ‘전쟁 때도 이보다는 나았다’고 말할 정도의 무지막지한 피해를 보았다. 대기근은 전염병 창궐로 이어져 100만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 이에 버금가는 수의 사람들이 1695∼1696년 일어난 ‘을병(乙丙) 대기근’ 때 굶거나 병들어 죽었다.

대기근 당시 양반층은 늘고 평민·노비층은 줄어드는 인구 비율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대기근의 피해를 누가 고스란히 당했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신앙이 퍼졌다. 농민들은 유민이 되어 사회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춰진 한양으로 몰렸고 일부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광주교육대 김덕진 교수는 그의 저서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에서 대기근이 고통과 혼란을 주었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선을 더욱더 안정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한 것에 주목했다. 자연재해가 흉작을 불러 기근이 발생하고 결국 조선 사회를 위태롭게 했다. 그러나 조선은 무력하게 굴복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냈다. 예를 들어, 임시로 설치한 빈민구제기구인 진휼청은 기근을 여러 차례 거치는 동안 상설 기구로 자리 잡아 사회안전망이 구축되는 계기가 됐다. 다음 세기 영·정조 시대에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7세기 대기근으로 빚어진 위기를 수습하면서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온 1도 상승 위기감
어떤 새 세상으로 가고 있나

소빙하기에 전 세계가 기아와 전염병으로 재앙을 겪었다. 마녀사냥과 유대인 학살 같은 비이성적인 행위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합리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학, 농업과 산업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뤘다. 이와 함께 정치·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의, 자유, 평등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근대로 이행할 수 있었다. 소빙하기는 지구 평균 기온의 작은 변화도 엄청난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기온이 지난 100년 동안 1도 상승했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 크게 변화할 것이다. 인간 활동에 의한 변화는 과거 자연적인 변화보다 크고 빠르며 이미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우리는 이 위기에서 어떤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가?

▶필자 조천호

[전문가의 세계 - 조천호의 빨간 지구] (6) 대재앙 ‘소빙하기’ 극복 과정 과학·산업 혁명 이뤄 근대 이행

대기과학자.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일하고 원장으로 퇴임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을 공부했다. 전 세계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모델과 전 세계 탄소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축했다. 기후변화 과학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공부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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