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 소설가

‘노는 인간’이라 정의될 법한 남자… 실패도 독창적으로, 재밌게

사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사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배우·작가·연출자·스타 작가의 남편으로 다양한 이력…
“드라마 찍으며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지 않는 법 배웠죠”

영화감독 장항준과 관련된 내 첫 번째 기억은 그가 어느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었다. “제가 모텔 단골이라서, 돈 없는 날 여자친구랑 가면 외상을 해줬어요.” 소설가 K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숙박 3만원, 대실 1만5000원’이란 팻말을 보고 했단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 저 진짜 돈이 없어서 그런데, 대(큰 대)실 말고, 소(작을 소)실은 없어요?” 하하하! 두 남녀를 떠올리며 눈물 나게 웃어댔었다. 두 사람 모두 돈이 없었다는 점에선 동일하나, 한 명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한 명은 여행을 떠나는 여자로 모텔의 기능이 극단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만약 장항준이라는 이름 앞에 누군가 ‘개그맨’이란 잘못된 타이틀을 붙인다면, 사람들의 태반은 “아! 장항준. 기타노 다케시처럼 영화도 찍는 개그맨 아니었어?”란 표정일지 모르겠다. 하긴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킬러들의 수다>나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역을 소화했고, ‘상습 카메오 출연자’라는 희귀한 타이틀을 얻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뛰어난 작곡가인 윤종신을 개그맨으로 살짝 오해하는 착시현상이 그의 친구 장항준에게도 적용되는 셈.

미제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던 시절, 미국 잔디가 넓게 깔린 집에서 장항준은 엄마에게 시국선언을 하듯 소리쳤다. “나 비밀과외 시키지 마! 경찰에 확 신고해 버릴 거야!” 엄혹한 전두환 시절, 엄마를 경찰에 신고해버리겠다고 냅다 소릴 지르는 날라리 아들을 바라보던 모친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린이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거든요. 이 정도 재롱이라면 요건 면죄부가 된다, 느끼는 거죠. 전 어딜 가든 부모님이, 누나들이, 귀엽다고 했어요. 사실 학교에서 개근상을 계속 탔던 이유도 학교에 놀러 갔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만약에 공부하러 학교에 갔으면 개근상을 못 탔겠죠. 전 초등학교 6년 동안 숙제를 여섯 번도 안 해갔어요. 대단한 어린이었죠. 숙제하느니 차라리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마음은 또 얼마나 편해요. 즐거운 학창생활이었죠. 하하.”

■ 특유의 낙천성, 그의 인생엔 고난은 없고 행복만

세상이 ‘대책 없음’이라 규정하는 것들을 그는 대책 있는 것들로 바꾸어나갔다. ‘맞으면 그뿐’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무서운 게 있을 리 있나! 호모 루덴스. 마땅히 ‘노는 인간’이라 정의될 법한 이 남자는 애정이 결핍되지 않은 희귀한 성장기를 보낸 후, 누가 뭐라든 자기 리듬에 맞춰 사는 법을 습득했다. 장항준에게 무심함은 제2의 천성 같은 것으로 특유의 낙천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발이나 손을 보면 굉장히 심한 상처가 나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아물어가는 중이라 스스로 놀란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그는 통증을 감각하는 데 대체로 무감하다. 어느 점집에 가든 “만 명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사주”라는 격찬을 받는다는 장항준의 팔자소관엔 인생에 고난이 없고 행복만 가득하단다. 나는 좀처럼 믿기 힘든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은희랑 신혼 때, 돈을 못 내서 가스가 딱 끊어졌어요. 쌀통에 쌀 한 톨도 없던 시절도 있었구요. 그럼 전 이렇게 생각해요. 브루스타가 있는데 뭔 걱정? 술 마시고 싶으면, 친구들에게 놀러 오라고 전화하는 거죠. 야! 너, 우리 집에 놀러 안 올래? 근데 올 때 술하고 세제하고 하이타이 좀 사와. 뭐, 라면도 몇 개 사오면 더 좋고. 그때 윤종신 같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쌀도 많이 사다주고 그랬어요.”

그가 라이터를 켰다. 작업실 안으로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노는 남자는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고,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작가 커플이 되었나

“옛날엔 영화 광고가 신문 하단에 흑백으로 조그맣게 나와 있었어요. 전쟁 속에 핀 사랑과 관능, 관능의 여신 실비아 크리스텔, 어쩌고저쩌고! 첩자 마타하리 불꽃같은 삶을 살다, 국도극장 절찬 상영 중, 뭐 이런 식이었죠. 그걸 보고 애들한테 뻥을 치기 시작했어요. 첫 신부터 정말 본 것처럼! 그러다 <대부>와 <영웅본색>을 보면서 갱지에 볼펜으로 이 둘을 짬뽕시킨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애들이 재밌어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반 애들이 실제 등장하는 얘기였거든. 내가 갓파더인데 그 상대편 패밀리가 수학, 도덕 선생이고. 맨 우두머리가 학교 교장이고. 우리는 정의로운 마피아지만 저쪽 선생들은 악당들. 이런 상황에서 매회 한 명씩 처참하게 죽이는 거죠. 나중엔 청탁까지 받았어요. 항준아! 물리도 죽여줘!”

이야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저급으로 시작해서 약간 고급으로 빠졌다가, 시 동아리 활동을 하고 김수영을 읽으면서부터 저항시까지 이어졌다. 6·29 선언이 나오기 전, 넥타이 부대들과 함께 시청 앞에서 있었던 평화대행진의 생생한 역사 속 현장에도 있었다. 공부보단 노는 것에 몰두하던 그가 해야 할 공부를 깨닫기 시작한 건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고부터였다.

“늘 시간이 모자랐어요. 처음으로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면서 공부했으니까. 글도 잘 쓰고 싶고, 영화도 더 알고 싶고, 다른 과 강의도 청강하고, 극작하고, 대본 보고, 연극 보고. 대학 다닐 땐 책 보느라 말도 별로 없었어요. 제가 문창과 사람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시간이 부족해서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도 제야의 종 친 게 어제 같은데 오늘 또 치고 있더라고요.”

미국적인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스콧 피츠제럴드이다. 하지만 소설가 천명관은 그 말을 ‘영화감독의 삶에 2막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바꿔 말하며 감독으로 사는 일의 비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영화를 한 편 찍고 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평생 영화감독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될 확률 70퍼센트’의 세계에선 대부분의 감독들은 ‘감독은 감독이되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유령감독’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내 공연되지 않을 2막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유령 감독으로 떠도는 삶 말이다.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으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고, <라이터를 켜라>를 연출하고, <불어라 봄바람>으로 추락했던 장항준 역시 그런 충무로의 낭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아 하던 그는 영화 <그해 여름> 집필을 끝낸 아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장항준의 표현대로라면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는 김은희 드라마 작가를 입봉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찰리 채플린의 후예들은 상상하기 힘든 칼과 망치를 든 슬랩스틱. 이 죽음의 난타극은 숨겨진 금괴를 찾기 위해 무너지기 직전의 풍년빌라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속고 속이는 게임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될 이들 부부의 첫 작품은 ‘위기일발’이란 타이틀과 궤를 함께 한다. 이 드라마는 백윤식과 신하균을 캐스팅하고도 찌그러진 프로젝트로 공중분해될 뻔했다.

“애초에 16부작으로 만들어졌던 드라마가 공중파 편성에 실패하고, 케이블로 가면서 20부작이 된 겁니다. 편집이고 뭐고 전부 뒤틀린 거죠. 게다가 처음에 김은희 작가는 자신이 쓴 대본이 왜 재미없는지도 몰랐어요. 타이핑이 빨라서 내 대본을 대신 타이핑하는 것으로 극작 공부를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10부 정도가 지나면서 점점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실력이 무서운 속도로 일취월장하기 시작한 거죠. 드라마 <싸인>이나 <유령>을 거치면서 지금은 저희를 ‘김앤장’이라고 부르더군요.”

■ 드라마는 투쟁의 산물, 지지 않는 게 이기는 것

드라마 <싸인>은 방송국의 1차 편성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건 월드컵 아시아 지역 1차 예선에서 떨어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2011년 1월5일 방송예정이었던 드라마가 엎어지면서 포기하지 않고 준비 중이던 <싸인>이 투입되었다. 나는 그에게 영화감독으로 살았던 삶과 드라마 피디로 살았던 삶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하룻밤 새우는 건 영화하면서 많이 해봤으니까 괜찮아요. 근데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면 피 냄새가 계속 나요. 피는 안 나는데 코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거죠. 24시간은 안 잘 수 있어요. 48시간까지도 뭐 그럴 수 있더라고. 근데 한 바퀴 더 도는 순간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연출봉고라고, 연출자를 위해 만들어진 봉고차가 있어요. 그걸 타면서 제가 기사에게 물어요. ‘다음 장소까지 얼마나 걸려요?’ 기사가 ‘바로 요 앞입니다’라고 하면 아이 씨! 막 욕이 튀어나와요. 그러다가 한 시간 걸린다고 하면 바로 기절해서 자는 거예요. 좀 자다보면 다 왔다고 막 두들겨 깨워요. 그럼 멍한 상태로 ‘뭐 찍냐?’하며 걸어가면서 파트를 막 쪼개는 거죠. 투샷 원샷 투샷 원샷…… 콘티고 뭐고 짤 시간 없어요. 그런데 방송국 연출자들은 이걸 아주 어릴 때부터 해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때 오랜 미스터리가 풀렸어요. 왜 방송국에서 서울대 나온 사람들을 뽑는지 알겠더라고요. 밤잠 안 자고 코피 쏟으면서 공부해본 사람들을 뽑는 거였어요! 나처럼 잠 펑펑 자면서 놀았던 인간이 아니라!”

그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엔 현장에서 너무 헤맸는데 나중엔 적응이 되기 시작하더라구요. 이렇게 찍으면 효과적이겠구나, 부딪치면서 깨닫게 된 거죠. 근데 김은희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오빠, 우리 완전 망했어! 대본이 없어! 제가 어떻게 된 소리냐고 물었더니 10부 이후에 대본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이번 주는 작가 사정으로 한 주 쉽니다’가 대체 말이 됩니까? 안 그래요?”

그가 <싸인>의 연출을 포기하고, 대본 집필에 투입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싸인>의 시청률이 고공행진할 때였다. 애초에 <싸인>의 검시관 윤지훈(박신양 분)은 소신을 버리고 변절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하지만 시청자가 사랑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바꿀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판계를 휩쓸던 시기였다. 윤지훈은 어느새 절대 악과 싸우는 안중근 의사가 되어 있었다. 이미 완성된 대본 몇 회분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국 드라마는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으니까 사람들이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구나가 바로 반영이 됩니다. 드라마가 인간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쪽으로 진행되는 거죠. 그런 현실 자체는 엄청난 단점과 모순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생각지도 못한 이점을 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우리가 박신양이 변절하는 걸로 갔더라면 나름대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 자체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하고는 너무 다른 게 됐겠죠.”

그가 생방송 시스템을 옹호하는지 물었다.

“아뇨! 절대로요! 다만 세상에 다 안 좋은 건 없구나. 하다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곰팡이도 페니실린의 원료가 되잖아요. 그래서 전 요즘에 담배의 장점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담배가 백해무익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의 장점은 있을 것이다!”

그는 한참을 웃더니 다시 한 번 라이터를 켜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싸인>은 방송국에서 8부 연장을 하자고 했었어요. 4부까지는 어떻게든 해보자고 했었죠. 근데 최종 시청률이 25.5%인가가 나왔어요. 수도권은 27.8%였고. 그해 방송사 통틀어서 미니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이 된 거죠.”

그의 말투에서 후속작 <드라마의 제왕>의 주인공 김명민이 오버랩됐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싸인>의 성공 이후, 장항준은 <드라마의 제왕>으로 사람들을 찾아왔다. 김명민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캐스팅 카드, 드라마계의 <하얀 거탑>을 쓰겠다는 야심은 <드라마의 제왕> 1회의 긴박한 이야기만 보더라도 파괴력을 가진 듯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부모라도 버릴 수 있는 남자, 통계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드라마의 왕 앤서니 킴의 캐릭터는 냉혹하지만 아름다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첫 회 시청률은 6%. 이 업계에서 한 자리 시청률이란 ‘이제부터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으로 글을 쓰게 되는 어떤 것’이었다. 성공담보단 실패담 쪽에 훨씬 관심이 갔던 터라, 그에게 직설적으로 실패 요인을 물었다. <온 에어>는 되고 <드라마의 제왕>은 안 됐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보여주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남들은 16부에 하는 얘길 전 4부 안에 끝내버렸으니까. 왜 투수들도 어깨에 힘 빼고 던지면 성적이 잘 나오잖아요. 어깨에 힘을 준다는 건 부담감이에요. 속도를 빨리해서 강속구를 꽂아야 된다는 부담감. 그렇게 던지다보면 계속 볼넷이 나오고, 어떻게든 주자를 안 보내려고 실컷 가운데에 던지면 치기 딱 좋은 빠른 공이 나오는 거죠. 근데 힘을 빼면 몸이 활처럼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김은숙 작가는 대단한 것 같아요. 통산 300승을 한 선수가 대단한 선수인 거지, 매 경기 퍼펙트하고 부상당하는 선수가 대단한 게 아니거든요.”

<드라마의 제왕>을 하면서 장항준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드라마는 투쟁의 산물이다’란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은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파의 얼굴 같아졌다.

“지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기 주관대로 대본을 쓰다가 잘리는 건 지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일로는 분노가 생기지 상처가 생기진 않거든요. 이 자식들 날 잘라? 두고 봐라. 하지만 타협하고 쓴 대본 앞에는 창작자로서 변명을 할 수 없잖아요. 성과를 떠나서 끝까지 해보지 않으면 가장 큰 데미지는 스스로 입거든요. 질병은 극복하면 내성이 생기지만 그런 식의 상처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으니까요.”

■ 적당히 이기적으로 세상 즐기는 게 ‘살아내는’ 방법

그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60세 생일날, 활엽수 가득한 숲 속의 디렉터스 체어에 앉아 ‘생일 축하합니다, 감독님!’이라고 외치는 스태프와 함께 있는 모습이란다. 사는 게 즐겁냐고 물으니 즐겁게 사는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전 게리쿠퍼보단 게리쿠퍼의 몸종 같은 사람들이 늘 편했어요. 그래서 제 영어 이름이 페르난도예요. 나 꼴리는 대로 사는 거죠. 조금만 이기적이면 세상이 너무 편하거든요. 그 이기적이란 게 남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는 수준은 당연히 아니구요. 정말 웃긴 게 뭔 줄 아세요? 남자들이 술 먹고 집에 들어가서 내가 누구 땜에 술 먹는 줄 아느냐고, 돈 벌려고 밖에서 접대하느라 힘들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휴, 자기도 술 먹고 싶어서 먹은 거지, 밤새 술 먹고 들어온 걸 마치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듯이 포장하는 거 말도 안 돼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 직업이 ‘잘나가는 드라마 작가의 남편’이라고 말하던 장항준에게 마지막으로 ‘돈’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돈은 지금까지 내가 벌어왔고, 앞으로는 우리 마누라가 벌 무엇이죠. 하하하. 그런 건 있어요. 돈을 쫓았더니 돈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 돈을 쫓으면 평생 돈의 뒤꽁무니만 본다는 말도 있잖아요. 재밌는 게, 일하느라 바쁠 땐 돈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이 모여요. 돈이란 건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 별것 아니란 생각도 들어요. 돈이 많이 생기면 전에 만족했던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잖아요. 가족끼리 여행 가서 특급호텔에 들어갔는데 여기는 어디보다 후지네 이딴 소리나 하고 말이죠. 이 작업실을 얻었을 때 은희가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넌 앞으로 이것보다 후진 작업실에서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예전엔 책상 두 개만 들어가는 비좁은 곳이어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거든요. 돈은 그런 의미로 생각해요. 나한테는 삶이 좀 편해지는 것이라고요. 다만 내가 편해지면서 뭘 잃어 가는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가 다시 라이터를 켰다. 나는 수북이 쌓여 있는 담배꽁초들을 바라봤다. 이 속도대로라면 1.5리터짜리 생수병 가득 담배꽁초를 집어넣고도 남을 것 같았다. 끽연에도 하나의 장점은 있을 것이라 믿는 이 남자의 데뷔작 <라이터를 켜라>에는 전 재산 300원을 털어 산 싸구려 라이터 하나 때문에 인생이 뒤집어지는 백수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장항준이 라이터를 켤 때마다 나는 싸구려 라이터 하나 찾겠다고 졸지에 기차 속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영화 속 허봉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범죄와 비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미디 = 비극 +시간’이라고. 그렇다면 장항준은 코미디를 좀 알고 있는 남자다. ‘눈물 나게 웃긴다’라는 이율배반적인 문장이 어째서 가능하겠는가. 살다 보면 슬퍼서 너무 웃긴 그런 순간과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성공에는 누구나 알 법한 교훈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실패담에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멋진 실패’라는 말의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중엔 ‘지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란 얘기가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2008년 ‘씨네 21’의 장항준 인터뷰 기사 제목은 “인생은 즐겁다.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니까”였다. 문득 이 남자의 실패담은 참으로 독창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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