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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가수 김창완
▲ 웃을 때 순한 주름 짓는 그는, 음악뿐 아니라 연기·라디오 진행까지수십년 변신에 변신 거듭하지만 정작 삶의 변화를 싫어한다는데김창완을 만나러 가는 날, 가을비가 내렸다. 그러니까 첫 질문이 “비 좋아하세요?”가 된 건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장진주사(將進酒辭, 술 한잔 권하다)’의 삶을 사느라 운전도 안 한다는 풍문 속의 이 남자는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는 날씨가 딱 두 개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과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날. 13년째 아침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김창완은 자전거를 타고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멘트를 직접 쓰는 그는 내게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제일 놀란 건 학교 갔는데 어떤 아줌마가 내 이름 불렀을 때였어요. 가족이 창완아~ 하는 건 늘 들었는데 골목에서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니까 너무 놀랐죠. 가끔 자전거 타고 가다가 마라톤 하는 사람을 보면 등에 이름이 붙어 있잖아요. 그럼 ... -
(17) 프로파일러 권일용
▲ 살인범들 대부분 “나는 불행한데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사회적 문제 왜곡해 내면화… 그들의 내면 끌어내는 게 내 역할“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 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죽음으로 이윤을 올렸다.”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 <시인>의 첫 문장을 읽다가, 나는 어둠을 응시하는 한 사내의 사진을 떠올렸다. 권일용, 이 남자의 얼굴이었다.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을 만났다. ■ 90년대는 막가파 등 사회저항, 지금은 분노 범죄 증가- 만약에 한 명이라도 내 인터뷰를 보고 범죄에 도움을 얻는다면 그 죄책감은 씻을 수 없을 것이란 얘길 했습니다.“아이가 토막 나 죽은 현장이 있었어요. 손가락으로 하수도까지 긁고 팠는데도 결국 발가락을 못 찾았어요. 아이의 몸이라도 다 찾아야 부모에게 보여줄 텐데 다 덮어놓고 얼굴만 확인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사건의 피해자만큼은 제 기사를 보지 않... -
(16) 디자이너 조수용
▲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 만들어…“모든 길과 식당이 대형몰에 잡아먹히는 세상,‘자본주의 암부’ 없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어”패션에 예민한 여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게 구두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슈어홀릭’은 아니지만 내게도 구두와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구두 브랜드 ‘토즈’는 땅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도쿄의 오모테산도힐즈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진행 도중 건물의 디자인을 전면 변경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주변 상인들이나 민원, 고비용이 아니라 느릅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토즈’는 나무를 베거나 훼손하지 않고 건물 전체를 느릅나무의 나뭇가지를 이용한 디자인으로 설계를 변경한다. 내가 본 사진은 바로 ‘토즈’의 도쿄 매장 앞에 서 있던 바로 그 늙은 느릅나무였다. 그날, 나는 신발장 안에 있던 낡아빠진 내 토즈 플랫슈즈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신고 내가 걸었던 수많은 길들 사이의 ... -
(15) 소설가 김영하
▲ “밀당하는 게 피곤해 출판사는 한 곳으로 단일화… 사람 보는 눈은 없어도 글을 보면 정확히 판단해요, 그래서 누가 청탁하면 이메일을 보내라 하죠”‘나쁜 살인은 나쁘다’라는 말을 쓴 사람은 의 작가 콜린 윌슨이다. 그렇다면 좋은 살인도 있는 건가, 라는 질문을 파생시킨다는 점에서 이 문장은 내게 매혹적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김영하의 소설 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의 맥박을 단박에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70대 연쇄살인마의 시간은 분명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김경주의 시를 인용해 ‘내 고통에는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었을 때, 나는 열 살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는 이 남자의 과거를 떠올렸다. 을 읽는 동안 김영하의 창세기가 궁금했다. 그렇게 17년 만에 를 다시 읽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0년이었다. 신촌... -
(14) 개그맨 남희석
▲ “연예인은 잘못하면 법적 제재 외에도 자숙해야 돼요…정치요? 돈 때문에 생각도 안 해요,10원 한 장 후원 안 받고 월급만으로 해야 되는데”27승64패. 승률 0.297. 9개 구단 중 압도적 꼴찌. ‘한화 이글스 팬은 부처님이다’라는 말은 개막 후 13연패를 내달리던 김응용 감독 자신이 2013년 4월24일자 인터뷰에서 직접 꺼낸 말이다. 단체로 부처님 가면을 쓰고 목탁을 두들기며 응원하는 한화 팬들의 사진은 ‘불교TV’의 자료화면으로도 쓰였으니 말을 말자. 개그맨 남희석을 만났을 때, 그는 충청도에서 유독 개그맨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는 내게 “충청도엔 열사도 많아요. 유관순 누나, 윤봉길 의사!”라는 말을 꺼냈다. 어지간해선 자기 속을 내비치지 않는 허허실실한 충청도 사람의 특징이 꾹 참았다 폭탄 던지는 것으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그는 내게 “한화 야구복 입고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자리 양보해준다”는 말도 꺼냈다. 한... -
(13) 철학자 강신주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사는 그…미워할 사람을 제대로 미워 못하면 사랑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단다강신주. 1967년생. 경찰서에 붙잡혀가도 잠을 잘 정도의 공대생이었으나, 진로를 바꿔 철학을 공부했다. 2013년 7월 현재, 스물일곱 권의 책을 썼다. 두 권의 대표작은 과 . 객관적 철학사는 표방하지 않는다. 가령 제자백가 시리즈에서 맹자의 지위를 현격히 떨어뜨려 중국 고대철학 최초의 악플러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식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자유의 의미를 체감한 시인 김수영은 강신주의 정신적 아버지.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에 김수영의 미발표작 ‘김일성 만세’를 소개하며 4·19를 바라보던 김수영의 자유정신에 대해 독해했다.지방에 20일 이상 머물며 하루 평균 2.5개의 강의를 소화했다. 철학자와 철학관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방의 노인들이 작명을 요구해 주역도 공부했다. 나름, 이름 좀 짓는 철학자다.... -
(12) 사진가 윤광준
▲ 세상 모든 물건들의 애호가·감각주의자·오디오 칼럼니스트…“먹어보고 짜면 안 먹을 테니, 즉각적인 감각이 주는 명확함에 더 끌려요”사진 찍는 남자들은 당혹스럽다. 이 편견에 가득 찬 문장이 적어도 내겐 반쯤의 진실이다. 2005년 사진가 배병우를 헤이리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했을 때, 그는 내게 “사진에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첫 번째 질문은 곧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졌고, 여수 남자인 이 사진가는 어부 같은 손으로 고등어 스파게티를 만들더니, 아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가 내게 물어본 질문이 내가 그에 관해 묻고 싶었던 질문지보다 더 길 것이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순식간에 바뀌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경기 일산의 작업실 ‘B1’에서 사진가 윤광준이 대뜸 내게 “왜 나이 든 남자들을 인터뷰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8년 전 그 기억이 떠올라 문득 말문이 막혔다. “남자 말고 수컷을 보고 싶은 겁니까?”... -
(11) 디자이너 정구호
▲ 하루 10번의 회의·10개 이상의 패션 브랜드를 꾸려나가는 남자…“남자를 유혹하고 싶으면 남자가 디자인한 옷을 입으세요”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공에 대한 정의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말했다. “제게 성공은 쇼를 계속할 수 있는 거예요. 또 하나 끝났고, 다음 쇼 준비해야죠!” 그것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의 성공론이 꽤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아기 토사물 같은 맛이라는 망고 스틴즙과 우유 단백질, 고지즙 같은 요상한 액체류와 소화제 몇 알을 첨부해 식사로 챙겨먹는 이 골초가 루이뷔통 같은 거대 브랜드를 이끌며 쇼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칼로리’가 꼭 ‘에너지’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담배와 커피, 프로틴 바가 식사를 대신하고, 물만 마셔도 반드시 소화제를 함께 먹어야 하는 소화불량의 세계도 있다는 돌연한 깨달음 같은 것도 얻고 말이다. 2010년 뉴욕 컬렉션. ‘하퍼스 바자’와 함께한 패션필름 속의 정구호는... -
(10) 영화감독 장항준
▲ 배우·작가·연출자·스타 작가의 남편으로 다양한 이력…“드라마 찍으며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지 않는 법 배웠죠”영화감독 장항준과 관련된 내 첫 번째 기억은 그가 어느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었다. “제가 모텔 단골이라서, 돈 없는 날 여자친구랑 가면 외상을 해줬어요.” 소설가 K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숙박 3만원, 대실 1만5000원’이란 팻말을 보고 했단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 저 진짜 돈이 없어서 그런데, 대(큰 대)실 말고, 소(작을 소)실은 없어요?” 하하하! 두 남녀를 떠올리며 눈물 나게 웃어댔었다. 두 사람 모두 돈이 없었다는 점에선 동일하나, 한 명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로, 한 명은 여행을 떠나는 여자로 모텔의 기능이 극단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만약 장항준이라는 이름 앞에 누군가 ‘개그맨’이란 잘못된 타이틀을 붙인다면, 사람들의 태반은 “아! 장항준. 기타노 다케시처럼 영화도 찍는 개그맨 아니었어?”란 표정일지 모르겠다. 하긴 뛰어... -
(9) 여행가 유성용
▲ 지금 필요한 건 나를 좀 버려두고 걸을 수 있는 공간…요즘 사람들은 여러 겹의 인생 안전장치 쳐 놓아 다양한 사건 못 만나정신적인 고통에는 오로지 하나의 해독제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 카를 마르크스 “제니 필즈는 마흔한 살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으며 그녀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내용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에 나오는 존 어빙의 말을 내게 처음 얘기해준 사람은 소설가 C였다. 마흔이 되면 뭐가 달라지냐는 서른 몇 살 후배의 말에 그는 40대야말로 장편을 쓸 수 있는 최고의 나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게 그것은 쓸쓸한 위로의 말이었다. 소설을 잘 쓸 수 있다는 말보다, 마흔 살이 앞으로 쓸쓸한 줄 알면서도 살아야 하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40대가 아주 절망적이진 않아. 커트 보네것이 그랬지. 남자가 여전히 빳빳하고 섹시할 수 있는 나이가 마흔세 살이라고 말이야.”‘여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