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 소설가

누구에게 상처 줘 봤어요? 상처 받을수록 강해진다는 건 거짓말

강신주는 “회의할 때 입 벌어지게 하품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말한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강신주는 “회의할 때 입 벌어지게 하품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말한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사는 그…
미워할 사람을 제대로 미워 못하면 사랑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단다

강신주. 1967년생. 경찰서에 붙잡혀가도 잠을 잘 정도의 공대생이었으나, 진로를 바꿔 철학을 공부했다. 2013년 7월 현재, 스물일곱 권의 책을 썼다. 두 권의 대표작은 <철학 vs 철학>과 <김수영을 위하여>. 객관적 철학사는 표방하지 않는다. 가령 제자백가 시리즈에서 맹자의 지위를 현격히 떨어뜨려 중국 고대철학 최초의 악플러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식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자유의 의미를 체감한 시인 김수영은 강신주의 정신적 아버지.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에 김수영의 미발표작 ‘김일성 만세’를 소개하며 4·19를 바라보던 김수영의 자유정신에 대해 독해했다.

지방에 20일 이상 머물며 하루 평균 2.5개의 강의를 소화했다. 철학자와 철학관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방의 노인들이 작명을 요구해 주역도 공부했다. 나름, 이름 좀 짓는 철학자다. 그가 거리의 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강단이 아닌 현장의 소리를 직접 채집했던 구체적인 기억들 때문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 교회 안 다니게 하는 도구’가 철학일 수 있고, 기독교, 자본, 국가권력은 삼위일체로 비판해야 하며, 종교비판서를 쓰지 않는 건 철학자의 책무가 아니라 말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것은 인간이 주인이라는 인문학적 정신의 표현이라고 강변한다. 미래의 천국은 없으니 지금 이곳에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삶 전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의 법칙을 좋아한다. 은혜는 꼭 갚고,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가 그의 원칙이다. 힘이 없을 땐 ‘데스노트’라도 만들어 나중에라도 꼭 갚아줘야 하는 게 원수라고 말한다. 미워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미워하지 못하면, 사랑해야 할 사람 역시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게 이 남자의 확신이다. 시를 좋아해서 시와 관련된 책도 몇 권 썼다. 그러나 시 읽는 철학자 같은 레테르는 별로다. 포괄적 독서는 없고, 책은 편식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수영의 영향을 받은 이성복, 황지우, 허연의 시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여자 시인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여자가 왜 시를? 여자 자체가 아름다운 시인데!” 같은 소릴 하며 피식피식 웃는다.

■ 여자가 왜 시를? 여자 자체가 아름다운 시인데!

그의 사랑학 강연을 듣고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커플이 꽤 있단 소리도 들었다. 그는 사랑과 결혼을 이혼하는 것처럼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잔인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남자는 이것이 모두 ‘행복’이 아닌 ‘불행’에서 온 생의 감각들이라고 말한다. 행복에서 떨어져 있어야 비로소 행복을 성찰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밖엔 알 수가 없다. 이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다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늘 열리던 현관문이 어느 날 열리지 않을 때, “엇, 왜 문이 안 열리지?”라는 의문에서부터 비로소 생각은 작동되기 시작한다. 왜 그가 자신을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는지. 만약 열쇠를 떨어뜨린 곳이 어둠 속이라면 그는 기꺼이 어둠 속으로 당신을 밀어 넣을 것이다.

-박경철이나 안철수, 김미경 등 이 시대의 멘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강연입니다. 강연을 많이 하시는데, 멘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멘토는 희망을 주고 사람들을 위로해줘요. 하지만 전 철학자고 철학은 산파술입니다. 산모가 아파야지 산파가 아프면 안 돼요. 그 사람을 힘들게 해야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아이를 낳는 거죠. 당신들, 비겁하다고 직언하면서 벼랑 끝까지 몰고 가야 해요. 그럼 각자 그곳에서 뛰어들든지 뒤로 물러서든지 고민이란 걸 하죠. 벼랑 끝까지 가보고 나서, 자기가 결정해서 뒤로 물러나고 비겁해지는 건 괜찮아요. 스스로 결정한 거니까. 멘토는 파시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모세를 찾듯 종교적이죠.”

-진짜 강한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는 ‘침묵’이란 말을 했습니다. 최고의 언어가 침묵이라면 최고의 강사가 구사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요?

“사장이 말 많이 하는 거 봤어요? 약자가 말이 많은 겁니다. 선생이 침묵하면 애들이 내 입을 봐요. 어색하죠. 근데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리듬이 생겨요. 모든 리듬은 소리와 침묵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생기는 거예요. 책은 그게 없어요. 시는 행을 띄우니까 가능하겠죠. 스타일이 별 게 아니에요. 리듬성을 말하는 겁니다. 처음에 어떤 작가나 소설가든 읽다가 잘 안 읽히면 나랑은 리듬이 안 맞는 거예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평론가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 그 작가의 리듬이니까요.”

-시와 관련된 책을 내기도 했는데 소설은 많이 읽나요?

“학창시절엔 문학을 전혀 안 읽었어요. 시를 읽은 것도 마흔 넘어서구요. 어릴 때 어정쩡한 낭만주의에 빠지지 않고 철학을 읽었거든요. 최근에는 민음사랑 작업하면서 소설을 여러 권 봤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왜 어린 여자와 나이 든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가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걸 요즘 상황에 맞게 바꾸면 왜 어린 남자와 나이 든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가가 될 것 같아요.

“착각이에요! 연상연하가 포인트가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연상이나 연하인 거예요. 롤리타를 사랑하고 나니 나이가 너무 어린 겁니다. 그럼 괜찮아요. 근데 롤리타가 어려서 접근하면 아동성애자인 거예요. 롤리타가 문학성을 얻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 강해서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자기감정을 수호하려고 하니까요. 여자를 많이 알아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여자를 사랑하니까 여자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겁니다. 이걸 잘 구별 못해요, 사람들이.”

-삼포 세대란 말이 있습니다. 연애, 결혼, 직업 포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 꿈은 이건데 엄마는 다른 걸 원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현실과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비겁함과 비겁하지 않음의 문제인 거예요. 결국 용기 있음과 용기 없음의 문제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결혼은 사회생활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돼요. 공적 활동이라구요. 그건 연애 같은 사적생활이 아니에요. 상견례를 왜 합니까? 정말 사랑하고 함께 살고 싶으면 동거를 하면 돼요.

-사람들이 소유와 사랑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했는데….

“이 감독 좋아하다가 다른 감독 좋아할 수 있어요. 근데 남녀관계에서만 문제가 되는 건 사랑이 소유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스위스 좋아한다고 거기만 가야 되고, 이탈리아 가면 배신자가 되나요? 결혼은 소유의 제도입니다. 하지만 사실 사랑은 무소유의 형식이에요. 어떤 사람이 내 짐을 들어준다고 칩시다. 그럼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추운데 옷을 벗어주는 것도, 배고픈데도 나한테 먹을 걸 퍼주는 것도 다 사랑하는 거예요. 근데 결혼식이 뭐예요? 결혼식장에선 친한 사람들이 다 모여서 사진 찍고 그러잖아요? 왜 그러냐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배신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건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이걸 보여주는 거예요. 모두의 목격자가 되는 거죠. 재밌는 건 인간은 일단 소유한 걸 아끼진 않는다는 거예요.”

-결혼이 소유의 양식이고, 사랑이 무소유의 양식이라면, 두 개는 별개인 건가요?

“옛날엔 사랑과 결혼이 확실히 분리되어 있어요. 부르주아들이 필요에 의해 결혼과 사랑을 합친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소유도 안 한 사람들이 무소유를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노숙자가 무소유를 얘기할 순 없어요. 무소유는 가진 걸 주는 겁니다. 내가 에너지가 있어야 줄 수 있고, 내가 힘이 있어야 내 음식도 주는 거고 그게 사랑인 거예요. 물론 결혼이 무소유의 형식일 때도 있어요.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나 죽을 때 내 재산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 가기 때문이에요. 보르헤스나 조이스도 그랬어요. 말년에 결혼 신고를 왜 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였어요. 자유주의가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그렇게 결혼이 소유제도니까 자본주의와 잘 결탁하는 거죠.”

■ ‘결혼은 소유의 제도이자 사회생활’임을 받아들여야

-요즘 이별살인, 카톡이별 같은 게 이슈가 되는데. 경찰청에서 이별하는 법에 대해서 공문을 낸 게 있어요.

“소유 형식이 너무 강해진 거예요. 죽겠으니까 죽여버리는 거죠. 예전에는 여자들이 힘들었으니까 남자들이 배신하면 여자가 남자를 죽였어요. 그런데 거꾸로 남자 연봉이 1500, 여자가 2억이면 남자가 칼을 들겠죠. 그런데 요즘은 남자도 천만 원이고 여자도 천만 원이에요. 그래서 서로 죽여요. 하향평준화가 된 거죠. 연봉이 아예 상향으로 가서 남녀가 모두 1억5000이면 그렇게 강하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거예요. 혼자 살기 힘든 불안과 공포, 실존적 문제가 건드려져야 살인이라는 게 일어나질 않아요. 경제가 안 좋으면 사랑이란 관계에 경제 상황이 투사가 된다고. 사회가 너무 힘들어진 거예요.”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을 강조하셨는데, 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건 정당한 건가요?

“누군가에게 제대로 상처 입혀봤어요? 상처 줄 수 있는 사람이 상처도 안 줄 수 있는 겁니다. 약자들이 왜 타인에 대한 상처를 떠드는지 모르겠어요. 의외로 타인들은 상처 안 받아요.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 인간의 마지막 비겁함은 주변 사람에게 상처 줄 거야란 말이에요. 죄책감은 비겁해지는 최고의 방법이죠.”

-보수화는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결과 아닌가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자본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방식이 그겁니다. 어머님한테 에어컨을 사드렸는데 전기를 아끼겠다고 안 쓰신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리모컨 작동이 어려웠던 거예요. 우리 아버님도 더블클릭이 잘 안 돼요. 그래도 되는 척을 하세요. 그러다 예전에 잘나갈 때 이슈 하나가 나오면 보수적으로 변해요. 자기 존재 가치가 과거에 있다고. 경험이 축적돼서 얘기할 수 있는 현재적 가치가 없어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위험성이 있어요.”

-자본이 나를 소외시키는 방식이 교묘해진다?

“점점 빨라져요. 어린애들은 앱을 다운받아서 자기 개성을 만들거든요. 자본주의는 노인을 저주해요. 현 정권의 경우 그럼에도 그들의 지지를 받아서 만들어졌죠. 그래서 비겁한 겁니다. 지금 정권이 친자본주의적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에게 피해의식을 만들어놓고 그걸 보상해주는 것처럼 해서 지지를 받았거든요. 노인의 문제는 그런 겁니다.”

-감각의 제일 위치에 올라선 것이 ‘시각’이라는 말을 하면서, 과거엔 그것이 촉각이었다란 말을 했습니다. 감각의 변화 역시 자본주의와 관련 있나요?

“눈의 능력이 퇴화되면서, 안경을 많이 썼다는 게 증거죠. 처음에는 눈으로 보지만, 우리가 사이가 좋아지면 옆에 앉아요. 나중에는 방의 불을 끈다고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게 양수의 촉각이에요. 촉각의 세계는 위계관계가 없어요. 근데 눈의 세계는 위계가 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한테 인사를 하는 건, 그 사람이 우월하기 때문이에요. 촉각이 강해지면 사회가 민주화돼요. 부모님이 아프면 제일 먼저 가서 뭐해요? 만지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린 영정이라도 만져요. 인간의 실존감각은 촉각에 있어요.”

-잡스가 스마트폰에 바로 그 ‘터치’ 감각을 넣었어요. 스마트폰이나 SNS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전 페이스북, 트위터 이런 거 안 해요. 그거 하면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SNS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제공한다는 선까지만 의미가 있어요. 문제는 소통의 제스처만 취하고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할 얘기는 많아요. 만약 우리가 이 휴대폰 케이스를 바꾼다고 칩시다. 그럼 케이스가 안 팔려요. 가족끼리 옷 바꿔 입으면 옷이 안 팔리니까 그걸 막으려고 하는 게 ‘개성’이란 겁니다. 네 형과 너는 달라! 뭐 이런 식으로 자본이 내면도 쪼개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이 세계를 화면으로만 겪어요. 스마트폰은 화면도 바꾸고 음악도 바꾸니까 내가 통제한다는 느낌을 줘요. 하지만 세계는 그냥 밀려온다구요. 그런 것들을 견딜 힘은 계속 약해지는 거죠.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잖아요? 근데 스마트폰이란 건 단점으로 시작했어요. 장점이라고 표방하는 건 그저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예요.”

-역시 경험은 어려서 하는 게 좋은 건가요?

“그럼요. 난로를 직접 만져야 뜨거운 걸 알고 다신 안 만져요. 이게 진짜 아는 겁니다. 문제는 가짜로 아는 거예요. 엄마가 저렇게 네모난 건 만지지 마 이러면, 배워서 안 만져요. 근데 나중에 그 아이는 동그란 난로를 만지게 돼 있어요. 네모난 게 포인트가 아닙니다. 뜨거운 게 포인트예요. 근데 일단 만져본 아이들은 동그랗든, 삼각형이든 안 만져요. 왜냐면 망가질 정도로 겪으면 안 되거든. 난로를 만졌는데 손이 다 타서 없어져버렸다? 그럼 안 되죠.”

-조개에 모래가 박히면 대부분 폐사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사람들은 진주의 존재만 얘기하잖아요.

“상처 많이 받으면 강해진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만약 누가 매일 와서 칼로 푹 찌른다고 생각해봐요. 그럼 강해지나? 더 무섭죠. 내일 또 와서 찌를까봐. 그래서 시련을 많이 당하면 사람 만나기 무서워지는 겁니다. 그걸 사람들이 강해졌다고 하는 거예요.”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라는 시가 있어요. 시련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말인데….

“상처에서 피는 꽃은 자기 안에 피진 않아요. 타인한테 꽃을 피울 순 있어요. 내가 더럽게 많이 아파봤으면 다른 사람은 안 아프게 할 수 있어요. 흉터는 그대로 가는 겁니다. 흉터가 어떻게 예뻐지겠어요? 근데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들한테 하염없는 공감대를 만들어줘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사람에게 잘해줄 수는 있겠죠. 그래서 선구자가 힘들어요. 본인도 그래서 작가가 된 걸 거예요. 글쓰긴 힘들어도 그 글을 읽은 다른 누군가가 위안 받고, 꽃을 피우니까 존재 이유를 찾는 거죠.”

■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림자가 깊고 짙어요

-<김수영을 위하여> 책 표지를 보면 편집자 이름이 저자와 함께 표기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도 휴머니스트에서 다른 곳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약 위반이었고, 소송까지 갈 수도 있는 일이었어요. 별 악의적인 소문도 많았구요. 개인적으로 편집자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어요. 그 일 이후 교정지 나와서 책이 출간될 때까지 계약서를 안 써요. 지론이 편집자가 그만두면 그 회사에서 책을 출간 안 한다는 겁니다. 전 마케팅으로 책 판 사람이 아니라 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독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독자를 만든 사람이에요. 책은 그런 게 아니에요. 도서관에 들어가는 겁니다. 80년대 편집자들은 옛날에 사장들이랑 멱살 잡고 싸웠어요. 사람들이 이것을 읽어야 한다는 시대의 사명감이 있었구요. 책을 기획하는 건 편집자인데, 사장들이 날 만나고 싶어해요. 내가 안 만나주니까 사장들이 날 싫어하지.”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사세요?

“삶의 구체적인 것들에는 그림자가 있죠. 근데 그림자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거 못해요.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림자가 깊고 짙어요. 원래 그런 거예요.”

-산다는 건 견디고 감당하는 것과 동일한 건가요?

“본인이 다른 사람한테 적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래야 착한 거예요.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건 본인이에요. 헤어질 때 상처 적게 남기고 헤어지는 것. 원래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은 최악의 컨디션일 때 나오는 거고, 성숙함은 헤어질 때 보면 알 수 있는 겁니다.”

나는 그의 삼색 슬리퍼와 늘어진 보라색 티셔츠를 바라봤다. 철학자의 발은 피로해 보였다. 인터뷰 중, 틀어놓은 음악의 볼륨을 조금 줄여달라는 부탁에 이 남자가 말했다. “음악이 이렇게 좋은데 왜 줄여요.” 그는 음악의 볼륨을 줄이는 대신, 녹음기를 자신의 입 가까이 대고 목소리를 올렸다. 별나게 고집스럽다 싶어 한참을 웃었다. 왕실 근위병처럼 얼굴이 굳어 있는 사람을 보면 무작정 웃겨준다는 말도 했다. 여행 가서 그런 사람들 보면 어떻게든 웃기는 게 인문학자라고 개구지게 말한다. 강신주의 표현대로라면, 회의할 때 입 벌어지게 하품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사회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림자에도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이 존재한다면 그의 색은 언뜻 검은색처럼 보일 것이라고. 원래 그림자는 검은색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다가 인터뷰가 끝날 즈음 깨달았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을 전부 더하면 그것 역시 검은색이란 걸. 뭔가, 제대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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