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크립토아트와 메타버스의 결합, 또 다른 ‘플랫폼 노동시장’ 양산

이광석 교수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예술과 디지털 암호화 기술의 결합
크립토아트의 ‘NFT’ 암호기법은
위·변조 불가능해 진품 증명서 구실
무형 창작물에 자산 가치를 부여
예술노동 대중화·평등성에 주목

빅테크 문화산업과 맞닿는다면
‘메타버스’ 구축에 들어갈 디자인 등
외관·내장 장식물 창작활동과 유사
마치 대부분의 유튜브 노동자처럼
저렴한 창작 일꾼이 될 공산도 커

‘크립토아트’(cryptoart)라는 신종 예술 장르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크립토아트란 디지털 암호화 기술과 결합된 예술 장르를 뜻한다. 크립토 창작물에는 이른바 ‘대체 불가능 토큰’(NFT)이란 암호 기법이 쓰인다. 비트코인 등 가상코인이 일반 화폐처럼 등가의 ‘대체 가능’ 지불수단이라면, 크립토아트의 NFT는 전자적으로 위·변조가 불가능한 진품 증명서 구실을 하면서 무형의 창작물에 고유의 자산 가치를 부여한다.

누군가의 창작물은 이렇게 각자 고유 아이디를 가진 블록체인 암호화 기술로 저장되고,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로 경매에서 값이 매겨져 가상화폐처럼 유통된다. 이로써 무형의 창작물은 물론이고 유형에서 무형으로 옮긴 것도 자산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길을 연다. 가령 훈민정음 해례본 실물의 이미지 파일본 100개를 제작해, 각각에 고유 번호를 붙여 무형의 복제물로 만들어 NFT 거래를 시도한다면? 이 또한 크립토아트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사례는 실제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크립토아트는 신기술이 반영된 신생의 예술 장르지만, 인간 창작물에 대한 가상자산화 기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꽤 예외적으로 보인다. 기술과 예술의 장르적 결합은 보통 목적이 새로운 매체 기술을 통한 창작 아이디어 활성화에 있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이는 처음부터 창작물에 대한 재화 가치, 즉 지식재산권 확장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까닭이다.

실물이 아닌 디지털 창작 판본에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국내외 미술품 경매소에서 NFT로 만들어져 거래된 일부 작가들의 디지털 작업은 수억, 수십억원을 호가하며 언론의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따져보면 제페토 등 오늘날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 청소년들이 구찌 등 명품 가상옷과 가상의 액세서리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상황은 이제 그리 낯선 일이 아니게 됐다.

우리 현대인은 그것이 실물이 아니더라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면 가상자산에 투자하려 하거나 심리적 독점이나 점유 행위를 통해 소비 갈증을 푸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 가상부동산 사이트에서 전 세계 누리꾼이 디지털 지도의 픽셀로 나뉜 땅을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땅값이 오르면 프리미엄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도 이와 비슷한 심리라 할 수 있다.

NFT는 사실상 그 대상을 예술 작품에만 한정하지 않고 거의 모든 무형물을 화폐 자산화하는 기술 논리로 등극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 ‘짤’(자투리 이미지), 게임 아이템, 시, 소설, 트윗, 셀카, 비디오 등 이제까지 시장 거래가 불가능했던 거의 모든 무형의 디지털 창작물을 자산화하는 범용의 암호화 기법이 되고 있다.

NFT가 가까운 미래에 메타버스를 약동하게 만들 핏줄이란 묘사는 과장이 아니다. 오늘날 메타버스는 현실 논리와 디지털 세계가 혼합된 빅테크 주도의 문화산업 구상이라 볼 수 있다. 이 디지털 신세계는 아바타가 벌이는 온라인 활동이 실제 현실 수익으로 직결되고, NFT 창작물이 경매시장에서 쉽게 거래되고, 디지털 사물에 대한 소비 욕망이 우리의 일상을 주도하는 미래상이다.

■NFT와 예술혁명?

일반 투자(기)자의 관점에서 보면, 크립토아트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예술 작품의 형태로 저장한 것”이라 정의된다. 일반인 시선에서는 크립토 창작 작업이기 이전에 독창적 가상화폐를 만들어내는 기술 공정으로 파악된다. 반면 예술계 시각은 좀 다르다. 이를 창작 활동에 새롭게 불어오는 전환의 신호로 읽는다.

먼저 크립토아트에 우호적인 입장에서는 예술계 변방의 무명 작가, 아마추어 창작자 등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크립토 예술노동의 대중화와 평등성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주류시장에서 소외된 곳에서도 누구든 실력으로 자신의 창작 재능을 선보일 수 있고 적절한 보상 기회를 얻게 됐다고 낙관한다.

크립토아트의 또 다른 장점으로 무형의 작업 결과인 디지털 창작물을 마치 진본처럼 묶어둘 수 있는 힘을 꼽기도 한다. NFT가 무형의 것에 각자 고유의 시리얼 번호를 각인하면 인위적으로 복제를 막아 일종의 ‘진본성’(authenticity)을 얻는 데 성공한다고 본다. 소비자의 디지털 명품 브랜드 소비나 유명 작가의 크립토 창작물에 대한 구입 성향이 바로 ‘디지털 아우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주장한다.

아날로그의 권위가 원본(오리지널)이 지닌 ‘아우라’로부터 나왔다면, 바야흐로 ‘디지털 아우라’의 생성까지 점쳐진다. 이로 인해 실물 창작 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품 대가 지급에서 홀대를 당했던 디지털아트 전반에 대한 주목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이제까지 창작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뉴미디어 작가에게 금전적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NFT가 기술적으로 블록체인 암호화를 통해 창작물 거래와 유통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기도 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거래에 참여한 이들의 이력이 정확히 명시돼 이를 추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실제 최초 창작자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작업의 모든 거래를 투명하게 볼 수 있고, 거래가 성사되면 창작자는 이로부터 적정 로열티를 지급받을 수도 있게 된다. 실물 미술 작품 거래의 불투명성을 떠올리면 미술 유통시장의 혁신이다.

■디지털 자유문화의 위기

진정 크립토아트는 예술계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창작자들이 바라는 바를 실현해낼 수 있을까? 새로운 장점을 살피면서도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단 크립토아트는 기술과 예술의 새로운 장르 생성으로만 한정해 보기 어렵다. 이는 빅테크 닷컴 비즈니스 변화와 연계해 볼 수밖에 없다. 예술계 내부의 현상이라기보단 빅테크 문화산업의 미래 문법에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크립토아트는 태생적으로 빅테크와 게임·연예·문화산업이 연합해 기획하는 기술 흐름과 가상자본 활동에 더 영향을 쉽게 받고 있다. 거칠게 보자면, 크립토아트는 메타버스의 구축에 들어갈, 미술·조소·건축·패션·디자인·인테리어 등 가상화폐의 가치로 매겨진 외관과 내장 장식물 창작 활동에 쉽게 유비된다.

디지털 공유와 개방의 역사에 견주어 봐도, NFT와 크립토아트의 출현은 크게 미심쩍다. 이는 무한 복제, 비경합성, 한계비용 제로(0), 익명성 등 아이디어와 지식 공유의 디지털 전통과도 크게 배치된다. 영원히 “자유롭고자 하는” 정보의 본성은, 인류의 잠재적 창작 원천이 되고 복제와 공유를 독려하면서 디지털 ‘자유문화’를 확장해오지 않았던가.

매시업, 리믹스, 샘플링, 콜라주 등 디지털 복제문화는 인류의 창작 활동을 크게 신장해왔다. 거기에다 패킷 스위칭 데이터 전송, 익명성의 소통 방식, 분산형 네트워킹 시스템,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철학, 중심 없는 피어(또래) 간 네트워킹 등 혁신의 인터넷 기술은 이에 활력을 키우는 주요 동력이 됐다.

불행히도, 크립토아트는 정반대의 흐름을 타고 있다. 메타버스의 스펙터클한 신세계는 처음부터 지식재산권과 가상화폐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한 곳으로 상정된다. 가상화폐 시장이 없는 디지털 공간은 곧 황무지로 간주된다. 현재 NFT는 메타버스의 난개발에 활용되고 디지털 자유문화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선봉에 선다. NFT는 복제를 불허하고 닥치는 대로 가격 태그를 붙이면서 디지털 공유의 근원적 속성을 크게 훼손하기 시작한다.

■위태로운 크립토 창작노동

크립토 창작은 예술노동을 급격히 양극화할 공산이 크다. 대부분의 창작은 무기력한 데이터 노동으로 흡수되고 하향평준화한다. 마치 대부분의 유튜브 데이터 노동자처럼 크립토 작가는 메타버스 안팎을 매력적으로 꾸미는 저렴한 창작 일꾼이 될 공산이 크다. 더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어모아야 생존 가능한 크립토 작가는 성공을 위해 애쓰지만 대개는 저가로 NFT 창작물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노동자 대열에 합류하는 처지에 이를 것이다.

크립토아트는 메타버스의 창작 일꾼을 양성하는 (초)단기 노동 프로그램에 더 가까워져 간다. 크립토 작가는 일의 성격상 어디에도 매어 있지 않은 신체적으로 자유로운 예술노동자와 같다. 이는 플랫폼노동자가 프리랜서요, 개인 사업자로서 시·공간 자유도가 높은 것과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이 둘 모두 기술 예속과 불안정 노동에 처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성공한 유튜버의 경우처럼 2%의 크립토 ‘셀럽’ 작가만이 창작물에 거액의 보상을 받을 뿐 대부분의 창작 작업은 메타버스 시장에서 헐값에 거래될 운명에 처한다. 두 부류 모두 기술 예속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로 인해, 플랫폼노동자처럼 크립토 창작자도 메타버스에 포획된 창작노동자 지위에 머물 확률이 높다.

크립토 창작노동자는 특히 NFT의 불안정한 금융시장으로 인해 자신의 창작물을 가상자산 등락 그래프에 의존하는 위태로운 생존 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다. 개별 창작의 가치는 갈수록 글로벌 가상 금융시장의 코인과 토큰 시세 변동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기술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자산 증식과 투기(자) 논리가 자신의 창작 작업 변수로 함께 들러붙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창작물의 가치는 더 불안정해지고 휘발성 또한 극도로 높아질 것이다.

■크립토-메타버스 인클로저 벗어나기

우린 NFT 가상자산화라는 달콤한 유혹에 비해 그것이 개방형 기술로 꽃피워온 심미적 창의력의 원천인 디지털 자유문화에 미칠 미래 후폭풍을 별로 계산에 넣고 있지 않다. 그것이 창의적인 작업과 정당한 상호 참조와 인용을 어렵게 만드는 기술 코드가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크립토아트가 향후 창작의 보편 문법이 된다면, 미적 창의력 확장에 또 다른 민폐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당장의 시장 가치를 위해 거의 모든 디지털 창작물을 지식재산의 기술 코드로 가두고 인류의 창발력을 거세하는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주류 메타버스 산업에 속수무책으로 흡수될 수 있는 개인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을 속히 모색해야 한다. 우선은 개별 창작물이 창작자 자신에게 귀속되기보단 소유와 분리되고 빅테크와 문화 자본이 소유권을 대표하게 되는 왜곡된 시장 현실을 읽어야 한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데이터·창작 노동이 플랫폼과 메타버스로 독점화되는 현실에서, 크립토 창작물의 소유와 유통, 수익 분배에서 가중되는 불공정 경로를 드러내야 한다.

인터넷은 여러 우여곡절에도 사회적 창의력과 미학적 상상력을 담보하는 개방된 의식의 ‘공유지’ 역할을 해왔다. 인류 창작과 지식의 공유지인 인터넷에 크립토-메타버스를 세우려는 인클로저(종획)의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뒤틀린 이상향이 우리의 기술 미래가 되는 우울한 현실에 대해 보이콧하고, 닷컴 욕망에 의해 크게 기울어진 디지털 운동장을 바로잡는 일이 필요하다. 인터넷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예술과 기술에 대한 성찰적 사유와 대안의 상상력이 절실하다.

▶이광석 교수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33)크립토아트와 메타버스의 결합, 또 다른 ‘플랫폼 노동시장’ 양산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인류세, 포스트휴먼, 플랫폼과 커먼즈, 비판적 제작문화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디지털의 배신>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 <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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