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정신, 행복한 마음

부모·양육자·선생님과 대화는 ‘심리치유’ 첫걸음

이소희 청소년특임이사·NMC진료과장

(2)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건강한 정신, 행복한 마음]부모·양육자·선생님과 대화는 ‘심리치유’ 첫걸음

등교 거부·구토 등 다양한 증상…학교생활 등도 살펴야 도울 수 있어
코로나 이후 초등생 3~4명 중 1명 우울…‘중등도 우울’ 중·고생 12%
학교선 ‘선별검사’로 고위험군 찾고 ‘인식 교육’으로 대처법 배워야

필자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문을 두드린다. 진단도 중요하지만 성장 과정, 부모님과의 관계, 학교생활 등 살펴야 할 것이 많다. 아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어떻게 도와줄지 전략이 나오기 때문이다.

청소년특임이사·NMC진료과장

청소년특임이사·NMC진료과장

15세 A군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느라 애를 먹는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온갖 짜증을 내고 그나마 가면 다행인데 아예 안 가려고 할 때도 있고 지각은 셀 수도 없다. 스마트폰을 하면서 늦게 잠드니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퇴학을 당할 처지에 이르러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방문한 것이다. 이 아이는 주의력결핍장애 진단하에 약물치료를 꾸준히 하고 부모님과 함께 행동 수정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 끝에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6세 B양은 학교에서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어머니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아이는 자해를 여러 번 해왔고 다이어트, 폭식, 구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수시로 우울해지고 기분이 바닥을 칠 때면 죽고 싶은 심정이 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니는 산후우울증이 있었고 아버지는 집안을 종종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다. 지금은 부모·자녀 간에 대화가 잘 안되는 상태였다. 기분장애, 식이장애로 진단하여 약물치료와 대화를 지속한 결과 점차 호전되고 있다. 보다 더 일찍, A군이 공부에 흥미를 잃었을 때, B양이 대화를 거부할 때 전문적 치료를 받았더라면 더 큰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중·고생을 대상으로 매년 하는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1년 동안 청소년 4명 중 1명이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다. 또한 1년 기준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청소년이 10명 중 1명이고,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청소년은 2%이다. 가슴 아프게도 자살은 여전히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이다.

코로나19 영향도 주목해야 한다. 감염병에 대한 방역 조치로 이루어진 학교 폐쇄, 온라인 수업으로 학업, 친구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있고 이제는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2022년 학생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의하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우울해진 초등학생이 3~4명 중 1명이고, 중등도 이상의 우울을 경험하는 중·고생이 12%로 나타났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 어른들이 아이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기, 학교에서 매년 정기적 선별검사의 필요성, 교육 커리큘럼에 정신건강 인식개선 도입 등을 제안한다.

첫 번째, 부모님·양육자·교사와 같은 어른들이 아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우울하다고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고민거리는 있을 수 있다. 분노, 슬픔, 실망감, 외로움 등으로 마음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럴 때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통하여 혹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잘 넘기면 된다. 어릴수록 부모님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이 생기고 극복하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가 심하여 일상생활이 안 되는데 주변 사람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님 혹은 양육자가 아이의 변화를 바로 알아챌 수 있는 상태이어야 한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잘 사귀는 것 같은 아이라도 평소 그 아이의 심경 변화를 모를 정도로 부모 혹은 양육자와 단절된 관계라면 그 자체로 위태롭다.

두 번째, 정신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학교에서 알아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매년 정신건강 선별검사가 필요하다. 현재 시행 중인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특정 학년에만 시행하므로 변화하는 아이들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알아채는 데는 실효성이 부족하다. 차라리 고위험군을 알아채는 것을 목표로 간단한 스크리닝 검사를 사용하여 매년 학년 초에 실시하는 것이 본래의 목적에 충실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자기 응답식 검사는 주관적으로 답변할 수 있으므로 결과가 괜찮다고 맹신하면 안 되는 제한점은 있지만 학기 초에 단시간에 여러 명의 학생을 파악하는 데 효율적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 번째, 청소년기에 정신건강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어떨 때 전문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정신건강 인식 확장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으면 자신도 돌아보고 그러한 친구도 도울 수 있어 효과적일 것 같다.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율은 실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약 12%에 불과하다. 치료율이 낮은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청소년에 대한 불필요한 낙인도 한몫할 것이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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