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엔 ‘자유’ 기대했지만…올해도 ‘집콕’ 크리스마스가 기다린다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11월 말까지만 해도 캐나다의 코로나19 상황은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우선 백신 접종률이 높았다. 성인 80% 이상이 일찌감치 2차 접종을 마쳤고 미성년자 접종 또한 별 무리없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부작용 문제가 없지는 않겠으나 백신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정도로 언론에 보도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각에서 안티백서가 준동한다는 뉴스도 건조하게 팩트만 전하거나 비판적으로 보도할 뿐 언론이 거기에 동조해 방역당국을 공격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백신이 위험하다고 누가 떠들어대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대다수 시민들은 방역당국의 지시를 잘 따랐다.

다른 한편으로, ‘백신을 맞으라’는 방역당국의 권고와 지시는 명령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했다. 그것을 거부하면 ‘공공의 적’으로 간주해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식이었다. 초강력 조치였다. 물론 그 대상은 공무원과 공공업무 종사자들이었으나 그런 분위기는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게 마련이다. 지하철역 안에 있는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백신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런 처사가 가혹하다며 노조를 앞세운 이익단체 소속원들이 불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방역당국은 요지부동이다. 얼마 전에는 백신접종을 거부한 토론토경찰 117명이 무기한 정직 처분을 받았다. 백신을 맞지 않는 이상 직장에 복귀할 수 없으니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었다. 온타리오주 방역을 이끄는 더그 포드 주총리의 사위가 토론토경찰 정직자 명단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토론토 주택가에는 작년에 비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집들이 늘어난 느낌이지만 장식을 하다말고 방치한 집도 보인다. 코로나의 급격한 재확산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갑자기 푹 가라앉은 탓이다.

토론토 주택가에는 작년에 비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집들이 늘어난 느낌이지만 장식을 하다말고 방치한 집도 보인다. 코로나의 급격한 재확산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갑자기 푹 가라앉은 탓이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백신패스 제도 또한 별 무리없이 정착되었다. 식당을 갈 때마다 휴대폰에 저장한 백신패스와 신분증을 꺼내 보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일은 금세 익숙해진다. 백신 맞은 사람만 입장 가능한 ‘안전지대’에서 식사를 할 수 있으니 그 정도의 번거로움은 기꺼이 감수할 만도 했다. 캐나다의 ‘암행 단속’과 처벌은 독하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미성년자 담배 판매에 대한 단속 등) 식당 주인들로서도 백신패스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이 ‘남는 장사’이다.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백신패스 제도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같은 강력한 조치들을 동시에 시행하다 보니 토론토의 코로나19 상황은 느리지만 눈에 띄게 좋아지는 중이었다. 우리 부부만 해도 올 하반기에 캐나다 서부 빅토리아로, 동부 몬트리올로 4~5일씩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팬데믹 선언 이후 처음으로 한 여행이었다.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점차 잦아졌다. 캐나다답게 대단히 느리기는 하지만 차츰차츰 일상을 회복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운영하는 옷가게 매출도 마찬가지였다. 7개월여에 걸친 2차 록다운이 해제된 지난 초여름만 해도 가게 매출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가게 문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재난 지원에 계속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을 들어 천천히 일상이 회복된다는 느낌이 들 즈음 가게 매출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11월 말에는 지하철 이용객이 평소의 50%를 회복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코로나19로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10월까지만 해도 지하철 승객은 평소의 20%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지하철역 안에 있는 우리 가게는 그 때문에 더 큰 타격을 받던 터였다.

11월만 해도 ‘일상 회복’ 임박 예상
하지만 12월 들어서며 상황 급변
돌파 감염까지 확진자 폭증하며
불안한 뉴스에 모임·여행 등 취소

자영업자의 연말 특수는 날아가고
또다시 재난지원금을 기다릴 상황
우울한 와중에 술 판매점만 신났다

토론토에서는 이제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더 키워가도 될 성싶었다. 내 주변에는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가며 한국의 노부모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글로벌 팬데믹 선언 직후 캐나다와 한국 두 나라는 무비자 입국을 잠정 중단했다. 캐나다는 지난 9월부터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으나 한국은 여전히 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캐나다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겪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상을 당해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병상에 계신 노모를 3년 만에 뵈러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더디기는 해도 차츰 상황이 호전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니, 나 같은 자영업자들로서는 12월 크리스마스 특수를 조금은 기대할 만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1년 중 매출이 가장 큰 시기이다. 기대했던 대로, 사람들은 11월 중순부터 성탄절과 연말에 주고받을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2년 만에 맞는 크리스마스이다 보니(작년에는 록다운 때문에 모두들 집에 갇혀 있다시피 했다) 올해에는 소규모 모임과 파티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1년에 걸쳐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일구어온 ‘일상회복’으로 올해에는 모임을 가져도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이 때문에 12월의 주말에는 좋은 식당 예약 잡기도 쉽지 않았다.

토론토 주택가에는 작년에 비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집들이 늘어난 느낌이지만 장식을 하다말고 방치한 집도 보인다. 코로나의 급격한 재확산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갑자기 푹 가라앉은 탓이다.

토론토 주택가에는 작년에 비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집들이 늘어난 느낌이지만 장식을 하다말고 방치한 집도 보인다. 코로나의 급격한 재확산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갑자기 푹 가라앉은 탓이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조금씩 올라가던 이런 분위기는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토론토에서도 큰 문제가 동시에 불거졌다.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과 델타 변이 확진자의 급증이다. 몇개월째 수백명선을 유지하던 하루 확진자 수가 슬금슬금 1000명을 넘어서더니, 이제는 하루 1600명대에 이르렀다. 새로운 변이의 출현과 확진자 수 급증은 나 같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조금씩 나아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크리스마스 특수를 작게나마 기대하던 나로서는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들었다. 가게 손님이나 가게 주인이나 모두 따뜻하게 보내게 될 것 같던 2021년 연말이 그저 차디찬 겨울로 변하게 생겼다. 느리지만 조심스럽게 일상을 회복해 가던 터에 들이닥친 비상상황이라 그 충격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12월 둘째주 주말부터 잡혀 있던 지인들과의 송년모임을 모두 취소했다. 전파력이 훨씬 강하다는 오미크론 변이가 퍼지고 있는 만큼 2차 백신을 접종했다 해도 이제는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확진자 중 이른바 돌파 감염자는 절반을 넘어섰다.

선물을 사러온 사람들로 한창 붐벼야 할 쇼핑몰이 한산하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악화된다는 뉴스만 들리고 있어 썰렁한 분위기는 연말까지 이어질 것 같다.

선물을 사러온 사람들로 한창 붐벼야 할 쇼핑몰이 한산하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악화된다는 뉴스만 들리고 있어 썰렁한 분위기는 연말까지 이어질 것 같다.

크리스마스 이후 연말까지 지속되는 ‘황금 휴가’(직장인 대부분은 이 시기에 휴가를 낸다. 자영업자들도 손님이 적으니 덩달아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기간에 세웠던 여행 계획도 모두 취소하게 생겼다. 11월8일부터 백신 2차 접종자에 한해 미국 입국이 허용되어 캐나다 사람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동안 미국 시민들은 캐나다로 넘어올 수 있었으나 미국은 이웃인 캐나다 시민들의 입국도 거부했었다. 캐나다 당국이 “육로로 72시간 이내에 돌아오면 음성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숨통을 틔워주는 바람에 2박3일 미국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무려 1년8개월 만에 다시 열린 까닭에 미국 육로여행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나만 해도 이번 휴가 기간을 이용해 뉴욕 누님댁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 봐서는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미크론 변이의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상 국경을 넘어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하철역 등에 백신접종 부스를 설치한다거나 실내 경기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열어 백신접종을 독려했던 방역당국은 어린이 접종에 힘을 쏟은 데 이어, 이제는 부스터샷 접종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부스터샷은 일반인의 경우 70세 이상을 접종 대상으로 했을 뿐이다. 백신이 부족한 나라에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공급이 원활한데도 캐나다는 부스터샷에 대해서만큼은 너무 느긋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시민들이 지시를 잘 따르고, 서방 선진국 가운데 백신 접종률이 비교적 높은 편이고, 백신패스 제도를 엄격하게 시행하면서 방역당국도 나름 자신감이 생겨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도, 서방 선진국 가운데 캐나다가 코로나19 통제와 관리를 가장 잘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갈수록 줄어드는 확진자 숫자와 점차 회복해 가는 일상을 보면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작년 4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나 같은 자영업자들에 대한 재난지원이 꾸준히 이루어져서 코로나19와 방역으로 큰 피해를 입는 사회 구성원이 없게끔 노력한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재난지원금이 손실 보상에는 역부족이지만 버티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었다.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과 더불어 확진자 수가 다시금 급증하자 방역당국은 부스터샷 접종 연령을 50대 이상으로 서둘러 낮췄다. 50대 이상 시민은 12월13일부터 접종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상황이 더 급박해지자 내년 1월1일부터 18세 이상으로 접종 연령을 다시 낮추었다. 12월 초입에 맞이한 새로운 비상상황이 아니었다면 부스터샷 접종이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12월13일 50대 이상의 예약이 시작된 첫날, 접종 희망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온라인이나 전화로 예약을 하려면 최소 2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쇼핑몰이며 식품점에 2년 만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기는 하지만 올해에도 어쩔 수 없이 ‘블루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세가 심상치가 않기 때문이다. 확진자 수가 사흘마다 2배씩 증가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NBA 농구와 NHL 하키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뉴스도 들린다.

그래도 백신접종도 받지 못한 채 집 안에만 갇혀 있던 작년에 비하자면 조금 나은 편이기는 하다. 이 우울한 와중에 크게 붐벼 신바람 난 곳도 있다. 바로 ‘리쿼 스토어’이다(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가 없다). 연말에는 주류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라는 뉴스가 나오는 바람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드는 중이다.



[다른 삶]연말엔 ‘자유’ 기대했지만…올해도 ‘집콕’ 크리스마스가 기다린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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