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탓 해안으로 떠내려간 인간의 쓰레기들…바다의 안부도 걱정이다

이숙명

이숙명의 ‘유유자적’

인도 오션 프로젝트가 탐사한 발리의 유명 관광지 ‘크리스털 베이’ 피해 실태는 심각하다. 뿌리째 떠내려온 나무, 해안 상점의 집기들, 생활 쓰레기가 산호 군락지에 뒤엉켜 있다. 다이브 숍들이 다 함께 힘을 모아 청소할 예정이다.

인도 오션 프로젝트가 탐사한 발리의 유명 관광지 ‘크리스털 베이’ 피해 실태는 심각하다. 뿌리째 떠내려온 나무, 해안 상점의 집기들, 생활 쓰레기가 산호 군락지에 뒤엉켜 있다. 다이브 숍들이 다 함께 힘을 모아 청소할 예정이다.

12월13일 누사프니다에 홍수가 났다. 돌풍과 천둥을 동반한 장대비가 밤새 퍼부었다. 저지대 마을 수아나에서는 진흙, 자갈, 쓰레기가 뒤섞인 1.5m 높이 급류가 발생했다. 트럭과 오토바이들이 떠내려갔다. 집, 학교, 해안도로, 상수도관, 바닷가의 간이 상점들이 파괴되었다. 일부 지역은 오후까지도 물이 빠지지 않아 주민들이 스티로폼을 타고 다니며 흩어진 집기들을 그러모았다. 토박이 노인들은 평생 최악의 홍수라 했다. 한때 9000여가구에 수도가 끊겼다. 내 집은 고지대라 큰 피해가 없었지만 사흘 동안 수도에서 흙탕물이 나왔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직도 이곳 사람들끼리 만나면 “너희 집은 무사하냐”고 안부를 묻는다.

“새벽에 침실 바닥에 물이 고이기에 밖으로 나갔지. 마당은 무릎까지 물이 찼더라고. 대문까지 걸어가는 동안도 계속 수위가 높아지더니 가슴까지 올라왔어. 옆에서 뭐가 번쩍하기에 봤더니 끊어진 전선이 수면에 닿을락 말락 하는 거야. 미친 듯이 도망쳤어.”

또 다른 저지대 마을 페드에 사는 친구가 몸서리치며 그 밤을 회상했다. 그의 집은 몇몇 이웃과 달리 붕괴를 면했지만 물이 빠진 자리에 두꺼운 진흙이 남았다. 세간은 멀쩡한 게 없었다. 집은 청소를 하고 또 해도 곰팡이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수해는 땅 위에서 그치지 않는다
산호 군락 유명한 ‘크리스털 베이’
토사와 쓰레기로 치명적인 손상
시민·환경단체가 청소 나섰지만
복원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자연재해 많은 인도네시아의 일상
허술한 도시와 정부의 느린 대처
매번 발벗고 나서는 건 이민자들
날은 개었지만, 씁쓸하고 답답하다

수해는 땅에서 그치지 않았다. 누사프니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크리스털 베이도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산간지대에서부터 흘러온 빗물과 토사는 해변 간이 상점 15개를 휩쓸고 바다로 내리달렸다. 크리스털 베이 해저는 평평한 산호 군락지가 200m 정도 펼쳐지다가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형태인데 그 경계에서 심해어 몰라몰라(개복치)를 목격할 수 있어 스쿠버 다이버들에게 인기가 높다. 몰라몰라 출몰지는 보존이 되었지만 산호 군락이 문제다.

해안도로가 폭우로 무너지고 상수도관이 노출되었다.

해안도로가 폭우로 무너지고 상수도관이 노출되었다.

환경단체 인도 오션 프로젝트는 흙탕물이 잦아든 12월18일부터 크리스털 베이 수해 실태 조사에 나섰다. 첫 시도에서는 아직 수중 시야가 1m도 안 되어 제대로 지도를 그릴 수도 없었다. 이틀 뒤 나간 두 번째 조사에서는 참상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해양 생물학자 파스칼 세바스티안은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크리스털 베이의 산호를 보존하기 위해 오래 노력해왔다.

“나무들이 뿌리째 떠내려 와서 바닷속에 잠겨 있고, 해안 노점에서 날아온 커다란 냉장고도 있었어. 그나마 쓰레기는 다이버들이 들어가서 치우면 되는데 더 큰 문제는 산호를 뒤덮은 흙이야. 어느 구역은 산호 위로 손가락 마디 높이 모래가 쌓여 있어. 이게 오래 되면 산호가 햇빛을 못 받아서 백화되는데 인공적으로는 흙을 치워줄 방법이 없어. 큰 조류가 발생하길 기다려야지. 여러 달이 걸릴 거야.”

그는 이번 사태로 크리스털 베이의 산호 60~70%가 손상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누사프니다의 다른 다이빙 명소는 가파른 암벽을 끼고 있거나 해류가 빨라서 피해가 적었으나 그렇다고 지역 대표 관광지를 폐허로 남겨둘 수는 없다. 이건 해양 생태계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존도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안 청소에 나선 리플렉스 다이버스와 인도 오션 프로젝트 관계자들.

해안 청소에 나선 리플렉스 다이버스와 인도 오션 프로젝트 관계자들.

환경단체와 다이빙센터, 지역민들이 모여 우선 쓰레기가 바다로 더 흘러들지 않도록 해안 청소를 진행했다. 파스칼이 수해 위치를 파악해 지도를 완성하고 나면 누사프니다의 스쿠버 다이빙 업체들이 모여 수중 쓰레기를 치울 것이다.

“큰 나무들은 조각내서 먼바다로 끌고 가 가라앉히고, 썩지 않는 쓰레기들은 보트에 매달아 끌어낼 계획이야. 아직 시야가 나쁜 데다 수심이 깊은 곳까지 가야 하니 쉽지 않은 작업일 거야.”

오미크론 때문에 입국제한이 강화되면서 관광업이 다시 어려워진 와중에 수해까지 덮쳤으니 이곳 상황은 썩 밝지 않다. 하지만 조속한 복구를 위해 저마다 노력들을 하고 있다. 발리 거주민들이 의류와 침구를 모아 보내주기도 했다. 인도 오션 프로젝트는 섬에 들어와 있는 관광객들의 기부를 독려하기 위해 바자회를 여는가 하면, 수재민에게 음식과 건축 자재를 지원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www.indiegogo.com, Nusa Penida Flood Relief Fund)을 진행 중이다. 3000유로 이상이 모인 상태다.

인도네시아 오지에 정수기를 공급하는 민간단체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 역시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다(chuffed.org, ‘Clean drinking water for the flood victims of Nusa Penida - Bali’). 소셜 임팩트의 목표는 누사프니다에 150대의 정수기를 지급하는 것이고, 12월22일 그중 일부가 도착했다. 수해를 입은 마을마다 다이빙센터들이 거점이 되어 로컬 직원들에게 이용법을 교육하고 주민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소셜 임팩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는 해마다 2만7000여명의 어린이가 설사병으로 사망한다. 오염된 식수가 주요 원인이다. 누사프니다는 오지가 아니고 수도 시설도 대부분 복구된 상태지만 수해로 집과 사업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정수시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다. 내가 사는 동안도 근처 롬복과 길리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지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민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모금이나 봉사 활동을 벌이는 건 어찌 보면 씁쓸한 광경이다. 재해가 많은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저가에 날림으로 짓는 주택들, 턱없이 허술한 도로와 관개시설, 느리고 부족한 정부의 재난 처리, 이민자와 선주민의 생활 격차, 각자 경제적 어려움이 있음에도 번번이 세금 내듯 재해 복구 지원을 해야 하는 지역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이번에는 유독 답답하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그 역시 재해인 팬데믹에 오래 시달린 끝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니 마음이 지친 탓이다. 엎친 데 덮친다는 게 이거구나 싶다.

이제 날은 개었고, 누사프니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내가 즐겨 찾는 식당과 카페들은 무사하며, 느긋하고 잘 웃는 이곳 사람들의 기질은 섬의 다른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려움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저지대의 무너진 도로와 집들을 볼 때면 다시 한숨이 난다.

이곳의 현재가, 사람들끼리 등을 맞대고 간신히 서로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상황 같기도 하다. 그러니 씁쓸하고 답답하다고 혼자 주저앉을 수도 없다. 제발 내년엔 모든 것이 나아지기를 빌어볼 뿐이다.



[다른 삶]홍수 탓 해안으로 떠내려간 인간의 쓰레기들…바다의 안부도 걱정이다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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