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다 봐도 올려다 봐도 좋았다…도심 속 루프톱

김지윤 기자

‘SEOUL’이라 적힌 네온사인과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늘어선 줄이 제법 길다. 100여평의 대형 카페 곳곳에 놓인 크고 작은 소품들이 해외여행을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을 찾는 대다수는 가장 ‘서울스러운’ 루프톱부터 오른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명소로 알려진 이 루프톱은 서울 송리단길에 위치한 ‘서울리즘’이다.

건물의 옥상을 일컫는 루프톱(roof top)은 도심을 즐기는 또 다른 공간이다. 분양 시장에서는 루프톱, 테라스 등의 특화 공간이 제공되는 상품이 인기를 끌고, 숙박업계는 루프톱에서 시티뷰를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패키지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문화·예술의 공간, 교류의 장으로도 루프톱은 활용된다.

팬데믹으로 켜켜이 쌓인 답답함을 해소하는 시원한 뷰를 누리며 옥상에서 할 수 있는 ‘거리’도 늘었다. 요즘은 독특한 테마와 이색적인 연출이 더해져야 ‘힙한 루프톱’으로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선선한 바람, 쾌청한 날씨, 각종 벌레로부터 자유로운 요즘은 루프톱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도심 속 루프톱을 찾아봤다.

재래시장에 자리잡은 루프톱 와인바 ‘히든아워’ 입구(@hidden_hour)

재래시장에 자리잡은 루프톱 와인바 ‘히든아워’ 입구(@hidden_hour)

■전통시장 입성한 루프톱 와인바

“또 거기 왔나 보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다 보면 우측으로 찾는 곳이 딱! 보일 거요.” 미로 같은 시장 골목 한 귀퉁이에서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3분 남짓 스마트폰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꽤 답답해 보였나 보다. 인근 상점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한 남성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외쳤다. 몇 걸음 더 지나 초록빛 조명에 반사된 유리문을 보고서야 그가 말한 ‘딱!’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전통시장 ‘윗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을 것이라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광장시장에서 보기 드문 감각적 디자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와인바 ‘히든 아워’(아래 큰 사진)의 첫인상이다. 빈대떡과 막걸리가 자동으로 입력되는 시장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주(酒) 종목에서 예상했겠지만, 이곳의 매력은 ‘반전’이다. 오래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트렌디하다. 착시현상을 보는 듯한 간판 뒤로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조금 더 오르면 조각난 거울들로 메워진 벽이 보인다.

이곳을 탄생시킨 이는 추상미 대표다. 그는 노점에서 나물을 팔던 할머니와 ‘박가네 빈대떡’을 운영 중인 부모님의 뒤를 이어 광장시장을 지키는 ‘3세대’ 상인이기도 하다. 삶의 일부가 된 광장시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가업을 이어받으며 광장시장의 브랜드화를 고민했다. 젊은 소비자들의 방문을 늘려 시장의 활기를 되찾게 하고, 동시에 상인들과의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시장이 갖고 있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이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을 팔아야 했다. 바로 와인이었다.

재래시장에 자리잡은 루프톱 와인바 ‘히든아워’ (@hidden_hour)

재래시장에 자리잡은 루프톱 와인바 ‘히든아워’ (@hidden_hour)

재래시장에 자리잡은 루프톱 와인바 ‘히든아워’ (@hidden_hour)

재래시장에 자리잡은 루프톱 와인바 ‘히든아워’ (@hidden_hour)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소셜미디어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 현재는 ‘감성 사진’에 빠진 MZ세대, 시장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2차’로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알고 오는 이들보다 모르고 오는 이들의 반응이 더 뜨겁다. 최근에는 장을 보러 왔다 호기심에 들렀다는 중장년의 고객들까지 품었다.

수족관을 연상케 하는 ‘히든 룸’ 등 곳곳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청담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히든 아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루프톱이다. 주말에는 예약 없이 이용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많다. 아케이드 속 시장의 왁자지껄함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는 고요한 ‘시장 뷰’와 단층의 시장 건물 위로 펼쳐지는 ‘시티 뷰’가 공존하는 모습은 이곳이 아니고서는 감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다른 매력이 있다. 석양의 고즈넉함이 자욱하게 깔리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이곳은 근사한 야경 명소가 된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멀리 남산 서울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뷰와 함께 맛도 챙겼다. 컨벤션부터 내추럴까지 40여종의 와인이 준비됐다. 시장의 특성을 살리고 그들의 메뉴에 영감을 받아 만든 안주들도 호평을 받고 있다. 머릿고기를 활용한 육가공품 ‘샤퀴테리’와 오소리감투가 잔뜩 올라간 ‘히든 피자’가 대표적이다.

‘히든 아워’만으로 아쉽다면 1층의 그로서리 스토어 ‘365일장’도 들러보길 바란다. 이 또한 추 대표의 작품이다. 광장시장의 자개 장인이 만든 와인오프너부터 다양한 로컬브랜드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통을 재해석 하는 문화공간 루프톱 ‘스페이스 오’(@space_o_rooftop)

전통을 재해석 하는 문화공간 루프톱 ‘스페이스 오’(@space_o_rooftop)

■전통과 현대의 경계, 인사동 루프톱

인사동이 달라지고 있다. 전통을 현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인트리 프리미어 호텔 인사동에 입점한 ‘스페이스 오’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오’는 ‘좋다’를 의미하는 감탄사 ‘오(Oh)’를 의미한다. 오감이 충족되는 공간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스페이스 오’는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들에게만 필수 코스가 돼 버린 인사동을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고자 기획됐다. 우리 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컬처톡 프로그램’을 비롯해 전통문화와 관련된 전시, 공연 등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공한다. 방문 시점에 따라 이곳은 갤러리가 되기도,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서울의 독특한 역사, 문화, 예술을 느낄 수 있는 ‘2021 서울 유니크베뉴’에도 선정됐다.

진부하지 않게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전통주와 한식을 주상품으로 하는 레스토랑이다. 조계사의 알록달록한 연등과 기와지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루프톱은 이곳의 자랑이다. 어떤 테이블에서나 종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특히 야경은 방콕이나 홍콩의 루프톱을 떠올리게 한다. 좁은 골목길,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빼곡하게 채워진 집들도 루프톱에서 내려다보면 한 폭의 그림이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속에 전통 가구들과 소품들이 적절히 배치돼 “외국인 친구를 데려와도 좋겠다”는 후기도 이어진다.

익숙하지만 이색적인 맛의 조화는 흥미롭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우리 한 입’은 완도 김으로 만든 부각에 강릉초당두부가 곁들여진 메뉴다. ‘스페이스 오’는 퓨전 한식이 아닌 ‘창의적 한식’을 고수한다. 전재식 대표는 “다른 재료와의 만남이 조화를 이룰 때 더 나은 방향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맛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낮의 분위기는 비교적 평온한 편이다. ‘맞이하는 맛’ ‘조금 배부르게’ ‘든든하게’ 등 상세하게 설명된 단품 요리와 정갈한 상차림은 주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다. 찾아가는 길은 다소 어려울 수 있다. 호텔 5층 로비에서 전용 엘리베이터로 환승하거나 ‘안녕 인사동’ 2층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는 것이 빠르다.

다양한 체험의 장으로 변신한 ‘루프스테이션 익선’. 네오벨류 제공

다양한 체험의 장으로 변신한 ‘루프스테이션 익선’. 네오벨류 제공

■취향으로 쌓아 올린 익선동 루프톱

‘체험’은 팬데믹 이후 급상승한 새로운 트렌드다. 변화에 능숙한 브랜드들은 각종 체험 공간에 힘을 싣는 추세다. ‘한옥마을’로 익숙한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문을 연 ‘루프스테이션 익선’도 그 흐름에 합류한 공간 중 하나다.

이곳은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기업 ‘네오밸류’가 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미션으로 기획한 도시문화 플랫폼이다. 여러 악기나 소품을 활용해 각각의 소리를 녹음한 뒤 화음을 만드는 동명의 음향 장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름을 지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취향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화음을 쌓아 올리겠다는 게 포부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익선동의 매력도 고스란히 살렸다. 두 동으로 설계된 ‘루프스테이션 익선’은 낮은 한옥들과 대비되면서도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채광이 좋은 유리 커튼월을 적용해 멀리서도 공간이 돋보여 쇼룸·체험형 매장 등으로도 손색이 없다.

다양한 체험의 장으로 변신한 ‘루프스테이션 익선’

다양한 체험의 장으로 변신한 ‘루프스테이션 익선’

첫 주자는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 하우스’ 전시다. 차량보다 더 큰 비중으로 체험의 공간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총 3층으로 구성된 A동의 1층 컨시어지 공간은 캠핑, 요리, 음악 등 취미와 취향을 다양한 인테리어로 표현해 ‘나’의 가치를 찾도록 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한 2층 리빙·다이닝룸은 가족을 위한 공간이다. 미국의 어느 가정집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어지는 가든 콘셉트의 3층 루프톱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모래사장과 그에 어울리는 장난감들이 놓여 있고, 전원주택 마당을 연상케 하는 텃밭이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동안 어른들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소파도 배치됐다. 현대인이 꿈꾸는 여가 생활의 낭만이 고스란히 담겼다. 루프톱을 포함해 각각의 공간은 추후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변주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B동은 음악을 즐기거나 책을 보면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 공간으로 꾸며졌다. 골목을 채우는 익선동의 여느 가게들과 다름없이 이곳에서는 ‘경험’을 살 수 있다. 특별한 체험의 공간인 셈이다. 네오밸류 측은 “기존에 물건을 사는 것 외에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익선동 골목의 편견을 깨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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