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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쌈, 마이웨이’

박경은 기자

여름 특식 타코 열풍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은? 이 질문에 자동 반사적으로 냉면, 콩국수 등을 떠올리겠지만 앞으로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2030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타코’다.

타코는 동그랗고 납작한 토르티야(옥수수나 밀가루로 만드는 납작 빵의 일종)에 고기와 채소 따위를 싸서 먹는 멕시코 음식의 대표주자다. 고기와 채소를 푸짐하게 얹어 간편하고 든든한 끼니로 먹을 수 있는 음식. 길거리에 서서 먹어도 자연스러우며 시원한 맥주와 더할 나위 없는 궁합을 자랑한다. 이국적인 매콤함과 짭짤함이 어우러진 기름지고 자극적인 풍미는 나른하고 처지게 만드는 여름의 후텁지근함을 날려 버리기에도 좋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여름에도 서울 시내의 인기 타코 매장 앞에는 뙤약볕 아래 오픈런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타코가 생소한 메뉴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도 패밀리 레스토랑을 통해 타코를 비롯한 멕시코 음식이 알려졌다. 1990년대 초반 티지아이 프라이데이스, 칠리스 등 패밀리 레스토랑이 파히타, 타코 등 멕시코 음식들을 국내에 소개했다. 이후 패스트푸드 체인 타코벨이 들어왔고 2007년에는 케사디야, 엔칠라다, 부리토, 치미창가 등 낯선 메뉴들까지 다양하게 내놓은 온더보더 등이 문을 열었다. 서울 이태원이나 강남, 홍대 등지에 교포나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들도 생겨나며 멕시코 음식은 외식 메뉴의 한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굳이 멕시코 음식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캐주얼한 레스토랑이나 브런치카페, 호프, 심지어 이자카야에서도 멕시코 음식을 메뉴로 내놓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포만감을 주는 한 끼로 손색없는 데다 짭짤하고 자극적인 맛이 안주로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토르티야만 있으면 손쉽고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토르티야를 튀기면 나초, 토르티야 위에 재료를 얹으면 타코, 속을 채워서 둘둘 말면 부리토, 속을 채워서 납작하게 접으면 케사디야, 토르티야에 마는 대신 내용물을 비빔밥처럼 비비면 부리토볼이 되는 식이다. 돈가스나 파스타, 떡볶이처럼 휘뚜루마뚜루 활용되어온 셈이다.

슈가스컬의 타코 플래터

슈가스컬의 타코 플래터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전문화되고 생소한 메뉴를 선보이는 타케리아(타코를 파는 식당)가 많이 늘었다. 이는 미국 외식 트렌드와도 무관치 않다.

타코는 미국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메뉴다. 그중에서도 최근 몇년 사이 큰 인기를 얻으며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비리아타코’다. ‘비리아’는 원래 멕시코 지역에서 고기와 향신료를 넣어 끓인 스튜를 말한다. 비리아타코는 스튜의 육즙이 풍부한 고기와 치즈, 채소 등을 토르티야에 싼 것으로, 철판에 바삭하게 굽거나 진한 스튜에 찍어 먹는다.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접한 멕시코 서북부 도시 티후아나의 가판대에서 시작되어 캘리포니아 지역 라틴계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비리아타코는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2021년 미국 구글 검색 트렌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미국의 뉴스 매체 투데이닷컴의 표현에 따르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비리아타코 한 입 먹고 싶어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인스타그램에서 비리아타코를 검색하면 이를 즐기는 수많은 방법을 만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비리아타코를 검색하면 이를 즐기는 수많은 방법을 만날 수 있다.

비리아 타코를 굽고 있는 모습

비리아 타코를 굽고 있는 모습

서울 을지로 일대를 평정한 ‘올디스타코’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골목에 온 듯한 외관으로 눈길을 끈다. 푸드트럭에서 파는 비리아타코를 맛보는 듯한 감성을 충족시켜주고 있어 2030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곳으로 입소문이 났다. 종로와 반포에 매장을 둔 ‘슈가스컬’은 영화 <코코>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인테리어로 방문객의 시선을 끈다. 저승과 이승을 콘셉트 삼아 공간을 분리해 마치 놀이공원에 방문한 듯한 재미와 호기심을 더해준다. 멕시코에서 직수입한 콘 토르티야를 사용해 내놓는 다양한 타코는 현지의 식감과 풍미를 느끼게 해준다. 비리아누들과 같은 흔치 않은 메뉴도 만날 수 있다. ‘살사리까’에서는 멕시코의 육개장 격인 포솔레, 전통 음료 오르차타, 고유의 칵테일 미첼라다 등을 맛볼 수 있다. ‘멕시칼리’는 비리아타코를 비롯해 흰 생선살로 만든 피시타코가 대표 메뉴다. 삼성동의 ‘비야게레로’는 돼지고기 및 껍질, 내장 등 다양한 부위를 토르티야에 싸 먹는 카르니타스 타코로 본토 맛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맛집이다. ‘라까예’ ‘타코스탠드’ 등도 ‘힙’한 타케리아로 꼽힌다. 라까예는 꼬치에 꿰어 익힌 돼지고기로 만드는 타코 알 파스토르를 내놓는다.

비야게레로의 타코

비야게레로의 타코

국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멕시코 음식은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텍스 멕스(텍사스 스타일 멕시코 음식)나 캘리 멕스(캘리포니아 스타일 멕시코 음식)가 상당수다. 멕시코 현지식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멕시코에서는 주로 옥수수를 사용해 토르티야를 만든다면 미국식 멕시코 음식은 밀로 토르티야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납작한 토르티야에 고기·채소 싸 먹는 음식
케사디야 등 손쉽고 다양하게 변주도 가능
‘맵짠’ 자극적인 맛, 맥주와도 찰떡 궁합
스튜에 찍어 먹는 ‘비리아타코’ 큰 인기
서울시내 유명 매장마다 오픈런은 필수


멕시코 음식은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라틴아메리카 고유의 음식에 스페인 및 유럽, 아랍의 요소들이 합쳐졌다. 최명호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저서 <멕시코를 맛보다>에서 “1910년 멕시코 혁명은 멕시코의 여러 지역이 만나 본격적인 문화 교류가 시작된 분기점”이라면서 “이후 멕시코 음식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이 생겨나면서 세계 5대 요리로까지 발전, 확산됐다”고 썼다.

앞서 언급했듯 타코는 가장 널리 알려진 멕시코 음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음식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싸서 먹는 특정한 방식을 의미한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조리했는지, 어떤 소스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므로 그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굽거나 튀기는 방식 대신 쪄서 만든 타코는 타코 카나스타, 김밥처럼 토르티야를 돌돌 말아 만든 것은 타코 도라도라고 한다. 싸는 재료로 주로 사용하는 것이 토르티야이나 다른 채소를 활용하기도 한다. 타코 데 레추가는 상추로 싸 먹는 타코로, 구글 검색을 통해 쉽게 레시피를 찾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식으로 쌈을 싸서 먹는 것도 큰 의미에선 타코인 셈이다.

온갖 재료를 싸 먹는 타코

온갖 재료를 싸 먹는 타코

타코 이상으로 멕시코 음식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살사다. 스페인어로 소스를 의미하는 살사는 거의 모든 요리에 사용된다. 어떤 살사를 어떻게 사용해 먹는지에 따라 제각기 맛이 달라지므로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코만 해도 어떤 살사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살사의 기본 재료는 토마토, 고추, 양파, 레몬 등으로 건강에 좋은 것으로 꼽히는 식재료다. 대체로 기름지고 열량이 높은 멕시코 음식의 단점을 상쇄하면서 풍미를 더해준다. 대표적인 살사로는 살사 메히카나, 살사 베르데, 치폴레, 과카몰레 등이 있다. 살사 메히카나는 토마토와 양파, 고추로 만든다. 멕시코의 국기를 구성하는 3가지 색깔(붉은색, 초록색, 흰색)과 같다 하여 살사 메히카나로 불린다. 재료들을 잘게 썰어 만드는데, 이 모양이 흡사 닭이 쪼아놓은 것 같다고 해서 피코 데 가이요라고도 한다. 상큼하고 매콤하며 시원한 맛을 낸다.

살사 베르데는 녹색 토마토로 만든다. 일반 토마토보다 크기가 작고 조직이 단단하며 상큼한 맛이 강하다. 멕시코에서는 녹색 토마토를 토마티요라고 부른다.

치폴레는 멕시코 원주민 말로 구운 고추, 혹은 훈제된 고추를 의미한다. 할라페뇨 고추를 주로 사용해 만드는 붉은색의 치폴레는 매콤한 맛을 내며, 핫소스의 원조로 여겨진다. 살사 로하(붉은 소스라는 뜻)라고도 한다. 과카몰레는 아보카도가 주재료다. 아보카도에 살사 메히카나를 섞거나 양파, 토마토, 고추를 원하는 스타일에 따라 넣어 섞어주면 된다.

다양한 멕시코 요리. 과카몰레와 나초칩, 부리토, 화히타, 케사디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양한 멕시코 요리. 과카몰레와 나초칩, 부리토, 화히타, 케사디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멕시코 음식 중 엔칠라다도 꽤 인기가 있다. 토르티야에 속을 채워 김밥처럼 만 뒤 매콤한 칠리소스를 발라 굽는다. 그 위에 치즈와 소스를 듬뿍 얹어 먹는다. 치미창가는 튀긴 부리토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통해 일찌감치 국내에 소개됐던 파히타는 각종 고기와 채소, 소스를 늘어놓고 직접 토르티야에 싸 먹는 요리를 말한다. 라이스페이퍼에 다양한 재료를 싸 먹는 월남쌈과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플라우타와 타키토스는 속을 채운 토르티야를 길고 가늘게 말아 튀겼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플라우타를 만드는 토르티야가 좀 더 크다. 타키토스용 토르티야는 옥수수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이와 함께 반달 모양의 엠파나다는 만두와 비슷하다. 멕시코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전역과 스페인 등지에서도 많이 먹는다. 엠파나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을지로 올디스타코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을지로 올디스타코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온더보더를 안착시킨 뒤 서울랜드 외식사업부로 옮겨 슈가스컬을 론칭한 김도형 상무는 “멕시코 음식은 매콤한 맛에 익숙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을 뿐 아니라 다양한 살사와 내용물을 어떻게 조합하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취향과 입맛에 맞는 수많은 버전을 즐길 수 있다”면서 “현지의 다양한 재료와 결합해 앞으로도 확장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외식 브랜드 중 ‘코자’는 한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을 활용한 타코도 선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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