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재로 가방으로…친환경 럭셔리 아이템의 재발견, 보자기

장회정 기자
보자기 아티스트인 이윤영 한국보자기아트협회 회장이 보자기로 만든 숄더백을 메고 서촌 길을 걷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보자기 아티스트인 이윤영 한국보자기아트협회 회장이 보자기로 만든 숄더백을 메고 서촌 길을 걷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보자기 아티스트인 이윤영 한국보자기아트협회 회장이 어깨에 멘 청록색 숄더백은 조금 전만 해도 평범한 보자기였다. 110×100㎝ 크기의 보자기가 어엿한 가방이 되는 데에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두 가지 다른 색의 천을 앞뒤로 붙여 만든 겹보자기의 양 모서리를 세줄땋기 매듭으로 땋아 어깨끈을 만들어 한결 멋스럽다. 토트백처럼 팔에 슬쩍 걸쳐도 된다.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 같은 캐주얼한 차림에도 잘 어울리지만, 재킷과 바지의 정장 차림과도 궁합이 좋다. 겨울에는 도톰한 양단이나 비단 소재의 보자기가, 여름에는 시원한 노방 소재 보자기가 제격이지만 요즘 세대는 굳이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겹보자기의 양 모서리를 세줄땋기 매듭으로 땋아 끈을 만든 ‘보자기 가방’은 숄더백으로, 토트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서성일 선임기자

겹보자기의 양 모서리를 세줄땋기 매듭으로 땋아 끈을 만든 ‘보자기 가방’은 숄더백으로, 토트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서성일 선임기자

일회용 비닐봉지를 쓰지 않기 위해 또는 가죽가방이 무거워서, 천 소재의 에코백을 애용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에코’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천 가방이 넘쳐나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휴대가 간편한 것은 기본이고 포장재로, 가방으로, 생활용품으로, 말 그대로 휘뚜루마뚜루 쓰기 좋은 ‘친환경 럭셔리 아이템’인 우리의 보자기를 주목해보자.

최근 보자기에 관심을 갖는 2030세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복을 싸서 선물하다” “본연의 것(허물)을 감싸주다”는 뜻을 품은 보자기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자 2017년 설립된 보자기협회에 찾아온 변화다. 이 회장은 “보자기의 실용적이고 친환경적인 점에 젊은 세대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협회에서 제작한 화보집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보자기의 ‘인스타그래머블’한 면모를 어필한 것도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꼽는 보자기의 매력은 “매듭을 짓기 전에는 평면이지만, 입체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혼인 전날 밤 보자기로 곱게 싼 함을 지고 신붓집을 찾은 함진아비가 벌이는 실랑이나 보따리를 이고 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홈드라마에서조차 사라진 요즘, 보자기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굴비나 한과를 싸는 황금빛 포장용품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보자기는 최근 몇년 새 상견례나 돌잔치 답례품 같은 귀한 선물을 싸는 ‘명품’ 포장재로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보자기 아티스트인 이윤영 한국보자기아트협회 회장은 “매듭을 짓기 전에는 평면이지만, 입체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자기의 매력으로 꼽았다. 서성일 선임기자

보자기 아티스트인 이윤영 한국보자기아트협회 회장은 “매듭을 짓기 전에는 평면이지만, 입체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자기의 매력으로 꼽았다. 서성일 선임기자

글로벌 패션브랜드 구찌는 몇년 전부터 특별한 고객에게 보내는 포장을 전문 보자기 아티스트에게 의뢰하고 있다. 이 회장은 “보자기의 재질이나 매듭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논할 정도로 (구찌 측의) 보자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전했다. 2022년 해외에 우리 전통문화상품을 선보이는 콘셉트로 방송된 <도포자락 휘날리며>에서도 보자기를 이용한 ‘K포장법’이 유럽인의 주목을 받았다. 출연자 주우재, 황대헌, 노상현은 촬영에 앞서 이 회장으로부터 보자기 포장법을 배웠다.

보자기협회 연구팀에서 정리·개발한 매듭법만 80여가지에 이른다. 불과 4번의 매듭으로 물건을 담을 때는 입구를 넓히고 다시 오므릴 수 있는 복주머니 형태의 보자기 가방도 만들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보자기 아트 원데이클래스를 찾는데 특히 외국인들은 와인병 포장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어떤 형태의 물건이라도 폭 감쌀 수 있는 만능 포용력도 보자기의 묘미다.

2020년 영국 해리 왕자 부인 메건 마클이 마치 작은 보따리를 연상시키는 레지나표의 클러치백을 들어 눈길을 끌었다. 보자기를 모티브로 제작한 리본 매듭 장식의 백은 영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출신 표지영 디자이너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몇년 전만 해도 웹사이트에 ‘bojagi’를 검색하면 일본의 보자기를 일컫는 후로시키로 검색하라는 알림이 떴다. 지금은 아마존에서도 다양한 보자기 제품과 장식용 노리개 등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보자기에 대한 인식이 확장됐다.

보자기 한 장으로 입구를 벌였다가 오므릴 수 있는 실용적인 복주머니형 가방을 만들 수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보자기 한 장으로 입구를 벌였다가 오므릴 수 있는 실용적인 복주머니형 가방을 만들 수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평소에는 착착 접어서 가지고 다니다, 필요할 때 가방으로 휙 바꿀 수 있어 젊은 층에서는 ‘힙’한 아이템으로 통하는 보자기. 혹 손매듭으로 만든 가방이라 끈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까? 이 회장은 “특수 매듭이 아니더라도 두 번 매듭을 지은 끈은 잘 풀리지 않는다”며 “무게가 더해질수록 아래에서 끌어주는 힘이 생겨 매듭이 단단해진다”고 설명한다. 미끄러운 재질이 염려된다면 광택이 적고 까슬까슬한 노방 소재를 사용하기를 권했다.

선물 포장으로 받은 보자기가 집에 있다면 좋겠지만, 혹 없다면 55×55㎝나 70×70㎝ 크기의 보자기를 하나 마련해두면 두루 활용하기 좋다. 작은 가방을 만들거나 앞치마로 쓸 수도 있다. 사각곽휴지의 커버, 테이블보나 걸개, 꽃병이나 화분 커버 등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유용하다.

‘힙’ 하고 친환경적인 보자기 활용법. 원데이클래스로도 익힐 수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힙’ 하고 친환경적인 보자기 활용법. 원데이클래스로도 익힐 수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값싼 단색 폴리에스테르 일색이던 보자기 업계에도 차별화된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앞·뒷면 색상이 각각인 화려한 실크 겹보자기, 구름이나 와당 같은 전통 문양이 있거나 자수가 놓인 제품은 소장 가치도 높다. 보자기협회에서 단청 무늬를 넣은 보자기를 제작하는 등 예술성을 높인 제품을 창작하고 있다. 미니 사이즈의 용돈 보자기나 모서리에 똑딱이 단추를 달아 편의성을 더한 보자기 등 아이디어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색이 담긴 용품을 제작하는 호호당은 폐플라스틱 원사로 제직한 에코 양단에 반구대 암각화 속 고래와 바다거북을 새긴 보자기 가방을 판매하며 “버려지지 않는 포장재”의 위엄을 강조하고 있다.

보자기는 동대문종합상가의 한복 원단 판매 업체나 광장시장, 꽃시장,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겹보자기의 경우 1만원에서 1만5000원 선이다. 과거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양단을 선호했으나, 젊은 세대는 파스텔톤 등 색상이 다양하고 가벼운 노방 소재를 많이 찾는다. 비단은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하지만, 합성섬유 함유 제품은 물빨래를 한 뒤 비틀어 짜지 않고 그대로 널어 말리면 될 정도로 관리가 수월하다.

■양단홑보자기(70×70㎝)로 만드는 보자기 아트 실전

포장재로 가방으로…친환경 럭셔리 아이템의 재발견, 보자기
1분이면 보자기가 삼각형의 실용적은 가방으로 변신. 서성일 선임기자

1분이면 보자기가 삼각형의 실용적은 가방으로 변신. 서성일 선임기자

●삼각가방

보자기의 안쪽 면이 겉으로 오도록 대각선 모서리가 맞닿게 삼각으로 접어준다. 대칭하는 양쪽 끝을 각각 제자리에서 돌리는 매듭으로 묶어준다. 이때 양쪽 매듭의 위치는 같아야 한다. 그대로 뒤집은 뒤 매듭짓지 않은 남은 두 귀(모서리)를 모아 두 번의 리본 매듭으로 묶으면 가방끈이 완성된다. 내부의 바닥 부분과 측면의 주름을 어떻게 만져주느냐에 따라 가방의 느낌이 달라진다. 수납력이 좋은 것이 장점이며, 꽃바구니로 활용하거나 화분 포장용으로도 쓸 수 있다.

이윤영 회장이 시연한 보자기로 앞치마 만들기. 서성일 선임기자

이윤영 회장이 시연한 보자기로 앞치마 만들기. 서성일 선임기자

앞치마

보자기 한쪽 외변과 긴 리본끈을 나란히 놓은 뒤 보자기로 감싸 두세 번 접어준다. 접은 상태에서 그대로 허리를 감싸고 매듭을 지으면 앞치마가 된다. 박음질이 필요 없어서 앞치마가 없을 때 급조하기도 좋다. 색동끈으로 매듭을 지으면 한결 전통의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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