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소유욕의 상관관계
강렬하게 갖고 싶었다. 고작 시계일 뿐인데.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면 되는데. 이미 대여섯 개의 시계를 갖고 있는데도 갖고 싶었다. 가까운 스와치 매장을 검색해 동선이 겹치면 몇 번인가 들러보기도 했다.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수시로 열면서 시세를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봄처럼 들떴다. 소비의 시작은 결제가 아니라서. 갖고 싶다는, 그 강렬한 마음을 인지하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2022년 3월26일. 스와치가 오메가랑 같이 만든 ‘문스와치(Moonswatch)’를 출시하던 날 전 세계 스와치 매장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그날 아침 서울에는 비가 왔는데도 수십명이 줄을 서 있었다. 명동 스와치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는 경찰차가 출동하는 소란이 일기도 했다. 세계 유수의 도시에 있는 스와치 매장에서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스와치가 오메가와 함께 만든 ‘문스와치’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었다. 좀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흔하고 흔한 협업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설계가 기가 막혔다. 외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가볍고 경쾌한 시계의 대명사 스와치가 전무후무한 역사와 만듦새를 자랑하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와 만났다. 모든 화제의 근본에 그게 있었다. 두 회사 사이의 강렬한 콘트라스트.
스와치는 바이오세라믹이라는 신소재를 개발해 광범위하게 쓴다. 바이오세라믹은 세라믹의 원료로 쓰는 산화지르코늄 파우더를 3분의 2, 과립 형태로 정제한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 3분의 1을 조합해 가볍고 견고하면서 정교한 세공이 가능한 소재로 알려져 있다. 설명은 좀 복잡하지만 무척 가볍고 질감이 살짝 다른 플라스틱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 스와치는 그런 회사다. 경쾌하고 편한 소재부터 스틸까지를 폭넓게 활용해 재치있고 산뜻한 시계를 다채롭게 만든다. 면세점에서 하나씩 사서 선물하기에도 부담 없고 그러다 잃어버려도 크게 속 쓰리지 않지만,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예쁜 시계를 고를 수 있다는 뜻이다.
오메가·스와치 협업 제품 ‘문스와치’
스피드마스터에 스와치 신소재 적용
33만원으로 오메가 헤리티지 경험
출시 초반 리셀가 폭등…현재는 안정
지난달엔 스누피까지 ‘3자 컬래버’
스마트워치 시대에도 여전히 매혹적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다르다. 스와치와 협업한 모델의 정확한 이름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별명은 문워치(Moonwatch)다. 1969년 7월, 인류 최초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내린 지 20분 후, 두 번째 우주인 버즈 올드린이 달에 내렸을 때 그의 손목에 감겨 있던 시계가 바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이었다. 닐 암스트롱이 시계를 차지 않았던 건 착륙선 시계가 망가져서였다. 두 대의 시계를 모두 차고 달에 내렸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일종의 보험으로 한 대의 스피드마스터는 착륙선에 남겨둔 것이었다.
그렇게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시계가 되었다. 최초의 스피드마스터는 1957년에 나왔지만 1963년에 등장한 4세대 스피드마스터가 가장 유명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나사의 혹독한 테스트를 유일하게 통과해 마침내 달에 착륙한 시계였으니까. 나사의 테스트는 견고함을 시험하기 위한 수준 정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시계를 부수기 위한 테스트였다고 한다. 최종 테스트에 남아 있던 브랜드는 총 세 개였다. 오메가, 롤렉스, 론진. 오메가만이 살아남아 영원히 문워치가 되었다.
전 세계가 선망하는 물성이란 이렇게 탄생하는 법이다. 시간과 역사와 스토리. 멋진 디자인, 틀림없는 기능과 견고한 수명. 그 자체로 유일한 존재감과 생명력까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가격은 그래서 만만치 않다. 문워치라는 별명을 가진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부터 각종 헤리티지 모델과 기념 모델들이 디자인과 재질에 따라 9백만원대부터 수천만원까지 포진해 있다. 이런 시계의 디자인과 스토리를 스와치의 재질과 감각으로, 33만원에 소유할 수 있는 이벤트였던 것이다.
귀엽고 경쾌한 협업이었다. 오리지널 오메가가 있는 사람도 하나쯤 살 법한 시계였고, 오메가를 꿈꾸던 사람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었다. 한 지붕 아래 있는 두 회사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오메가와 스와치는 둘 다 스와치그룹 소속이다.
이토록 합리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이유로 오매불망 갖고 싶었는데 가질 수가 없었다. 한정판은 아니었지만 물량이 적었다. 스와치는 문스와치를 총 11개의 에디션으로 만들었다. 수성부터 명왕성까지 9개의 에디션에 달과 태양까지 태양계를 살뜰히 살펴 보탠 숫자였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건 역시 달 에디션, ‘미션 투 더 문(Mission to the Moon)’이었다. 당근마켓, 크림 같은 리셀 앱을 가끔 열어 시세를 확인했지만 곤란한 가격이었다. 한때 리셀가는 무려 100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몇 날 며칠 매장 앞에서 진을 치는 기업형 리셀러들의 등살 때문이었다.
몇 번인가 들른 코엑스 스와치 매장에서 간간이 다른 모델들을 만날 수는 있었지만 ‘미션 투 더 문’은 연이 닿지 않았다. 런던 출장 때는 런던 스와치, 베를린 출장 때는 베를린 스와치 매장에 들렀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내 돈으로 애꿎은 리셀러들 배를 불려줄 순 없으니 좀 침착해지기로 했다. 이럴 때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시간뿐이라서. 갖고 싶어하는 마음이 진짜인지, 분위기에 휩쓸린 건 아닌지, 혼자 들뜬 건 아닌지를 감별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리셀가는 춤을 췄다. ‘미션 투 더 문’의 리셀가가 30만원대로 안정화되는 동안 가격이 치솟은 모델은 ‘미션 투 넵튠’이었다. 파란색 계열의 다이얼과 베젤이 매혹적인 모델이었는데, 마침 오메가 앰배서더인 영화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공식 석상에 차고 나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유명했지만 몸값이 오르고, 더 많은 사람이 원하면 또 오르는 게 리셀 시장의 자연스럽고도 애타는 원칙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가라앉는 동안 이 귀여운 쿼츠 시계의 가격은 다시 안정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리셀 앱을 켰을 때 눈에 들어온 가격은 40만8000원이었다. 어느새 문스와치의 공식가격도 37만1000원으로 올라 있었다. 3만7000원 차이. 여기에 중개수수료 1200원과 배송비 3000원을 더해 총 42만3200원에 살 수 있었다. 정가보다 5만2200원 비싼 가격. 그럴 가치가 있는 시계인가? 다시 고민하다 마침내 주문 버튼을 눌렀다. 출시 후 그 난리를 보고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갖고 싶어서였다. 매장을 부러 찾아가는 시간과 노력, 그래도 미션 투 더 문을 만날 수는 없을 거라는 불확실성, 서울이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라도 같은 상황이라는 막막함이 5만2200원의 웃돈을 납득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만족하느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계는 그야말로 사뿐한 마음으로 어디에나 어울리니까. 질리는 디자인도 아니라서 마음이 동할 때마다 손목에 얹는다. 그러는 동안 스와치는 몇 개의 협업을 더 진행했다. 블랑팡의 다이버 시계 피프티 패덤스를 각각 오대양을 상징하는 다섯 개 버전으로 디자인했다. 지난 3월26일, 문스와치 등장 2년이 지난 날에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또 다른 마스코트 스누피를 소환해 ‘미션 투 더 문페이스’를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했다. 또 한 번 가슴이 떨릴 이벤트. 스누피와 오메가 사이의 역사를 알차게 담아 각각 신월(New Moon)과 보름달(Full Moon) 버전으로 출시한 것이었다. 가격은 42만3000원.
구하기 어려운 건 여전하다. 리셀 시장에서 미션 투 더 문페이스의 가격은 79만원까지 올라 있다. 내가 가진 미션 투 더 문의 가격은 40만7000원. 딱 1000원 떨어졌다. 팔 생각은 없지만…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마음에 쏙 드는 소비를 했다는 (혼자만의) 뿌듯함만이 가볍고 산뜻한 감각으로 남아 있다. 이러니 시계는 왼쪽 손목 위에서 각자의 마음에 닿아 있는 것이다. 그저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만은 아니라는 의미.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의 시대에도 여전한 매혹이라는 뜻이다.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