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사 수혈 ‘응급 상황’

강현석 기자

주 4.5일 근무에 연봉 3억 드려도…안 와요, 여기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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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덕기 기자

강진 ‘유일 종합병원’ 의료원
일주일 4~8시간 유급휴가에
서울의료원장보다 많은 급여
파격 조건에도 채용 어려워

타 농어촌 지역도 상황 비슷
“정부, 인력 확보에 개입해야”

‘주 4.5일 근무, 평균 연봉 3억원.’

전남도가 강진군에 설립·운영하고 있는 강진의료원은 최근까지 이 같은 조건으로 의사를 채용해 왔다. 주 5일 근무가 원칙이지만 의료원은 의사들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일주일에 4~8시간씩 별도의 유급휴가를 줬다.

사실상 특혜이지만 강진의료원은 핵심 인력인 의사 확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진의료원은 “강진은 광주광역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2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의사들이 이런 조건을 제시해도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강진의료원의 ‘의사 모시기’는 열악한 농어촌지역의 의료현실을 잘 보여준다. 199병상 규모의 강진의료원은 인구 3만4000여명인 강진군에서 하나뿐인 종합병원이다. 지역에서는 유일한 소아청소년과와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비롯해 내과, 외과, 정형외과 등 10개 진료과에 응급실도 운영하고 있다.

강진의료원은 2018년 3월부터 의사들에게 이면 합의를 통해 별도의 휴게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일주일 중 본인이 쉬고 싶은 요일을 정해 반나절(4시간)이나 하루(8시간) 동안 진료를 쉬는 조건이었다. 이 같은 조건으로 의료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의사는 올해에만 8명에 이른다. 7명은 주 4시간, 1명은 주 8시간을 휴진했다.

그러나 의료원은 의사를 제때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원의 의사 정원은 15명이지만 6명은 병역의무 대신 보건의료 취약지역에서 종사하는 공중보건의사를 배정받고 있다. 나머지 9명은 의료원이 직접 채용해야 하는데 수시로 공고를 내도 채용이 쉽지 않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의사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절반 정도 그만둔다는 게 의료원의 설명이다. 올해만 해도 의료원은 5번이나 의사 채용공고를 냈다. 최근에는 1명뿐인 안과 의사가 그만두면서 지난 11월부터 진료가 중단됐다. 후임도 구하지 못해 의과대학에서 의사들이 배출되는 내년 4월까지는 안과 진료 중단이 불가피하다. 지난해에는 내과 의사가 갑자기 다른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1년 가까이 정상 운영되지 못했다.

강진의료원은 의사 영입을 위해 도시지역보다 1.5∼2배 정도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강진의료원 의사들의 평균 연봉은 3억740만원이다. 서울시가 설립한 서울의료원 원장의 연봉은 진료 수당을 포함해 2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이 같은 의사 채용에 대해 전남도 감사관실은 지난달 “채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의사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고 지적하며 의료원에 시정을 요구했다. 강진의료원 관계자는 “휴게시간을 없애면 연봉을 더 높여줘야 하는데 그런다고 의사들이 문화시설 등이 부족한 농촌지역에 온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농어촌 지역의 열악한 의료 상황은 강진의료원뿐만이 아니다. 2020년 9월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를 보면 서울 3.2명, 부산 2.4명, 대구 2.5명, 광주 2.6명, 대전 2.5명 등 대도시에 의사들이 집중돼 있었다. 반면 농촌지역인 전남은 1.7명, 충북 1.6명, 충남 1.5명, 경북은 1.4명에 불과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진료하는 의사들을 양성하자는 법률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의사협회 등의 반대로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다. 조희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지방 공공의료원의 의료 인력을 확충해 의료 격차를 해소해야 하지만 높은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의사협회의 눈치만 보고 있다. 의지를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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