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제는 검열”… 세계서 드문 ‘과잉규제’ 바로잡아

장은교기자

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개입 ‘사법파동’ 불러

집시법 위반 175건 주목… 재심청구 잇따를 듯

헌법재판소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집시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해가 진 뒤에는 일절 집회를 못하게 하는 금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과잉 규제라는 점에서 위헌이란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집회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할 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 신영철 대법관(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재판개입 논란으로 ‘5차 사법파동’을 촉발시켰던 위헌제청은 11개월 만에 헌법불합치로 결론났다.

“허가제는 검열”… 세계서 드문 ‘과잉규제’ 바로잡아

◇‘헌법불합치’의 의미 =헌재의 결정은 헌법상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권에 무게가 실려 있다. 김갑배 변호사는 “낮에는 생업과 학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자유롭게 집회·시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1표 차이지만 사실상 위헌결정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송두환 재판관 등 5명은 “헌법상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 조항은 유신헌법에서 삭제되었으나 현행헌법에서 다시 규정된 것”이라며 “집회의 허용 여부를 행정권의 일반적·사전적 판단에 맡기는 허가제는 집회에 대한 검열제와 같아 이를 헌법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결단으로 봐야 한다”고 위헌 의견을 냈다.

현대인들은 낮에는 생업과 학업에 종사해야 하므로 사실상 집회에 참여할 시간은 저녁시간대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적극 반영됐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민형기·목영준 재판관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시간대의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주간 동안 직업활동이나 학업활동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사실상 집회를 주최하거나 참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2명이 헌법불합치로 모두 7명이 사실상 위헌 의견을 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에 미치지 못해 헌법불합치로 최종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신영철 당시 법원장의 “(헌재 결정이 나기 전) 현행법대로 사건을 처리해달라”는 주문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 신 전 원장은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 현행법대로 사건을 처리할 것을 주문, 일선 판사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신 전 원장은 위헌성이 있는 법률로 피고인들을 처벌하라고 독촉한 셈이 됐다.

24일 헌법재판소 이강국 소장(오른쪽) 등 재판관들이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문석기자>

24일 헌법재판소 이강국 소장(오른쪽) 등 재판관들이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문석기자>

◇향후 재판은 어떻게=2010년 6월 말 이전에 개선입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조항이 유지되도록 했기 때문에 당장 재판을 해야 하는 법원에서는 유·무죄 적용 여부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법조항을 적용해 유죄를 선고한다면 피고인들의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재판을 보류했다가 법안이 개정되면 새법안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최완주 형사수석부장판사는 “형법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잠정 적용 조항이 붙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재판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맞는지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야간집시법 조항을 위반해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모두 913명. 가장 많은 사건이 몰려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재판부에는 모두 175건의 집시법 위반 사건이 진행 중이다. 이 중 154건은 일반교통방해 혐의 등과 병합된 사건이다. 현재 헌재에는 일반교통방해죄(제185조)에 대해서도 위헌제청이 계류 중이어서 최종 판단 여부를 지켜보고 선고하는 편이 부담을 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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