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지휘권도 외면, ‘광고주 압박’땐 발동… 그때 그때 다른 잣대
‘윗선 의혹’ 이영호씨 대포폰 관련조사 안해
검찰의 ‘이중잣대’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검찰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을 여럿 확보하고도 수사결과 발표 때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과거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는 4일 ‘청와대 대포폰’ 등 청와대가 불법사찰에 개입한 정황을 수사결과 발표 때나 재판 과정에서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는 것”이라며 “의혹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쏟아놓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 차장은 또 불법사찰의 ‘윗선’이라는 의혹을 산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는 ‘대포폰’ 관련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개입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느냐를 놓고 의구심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같은 설명은 의구심만 더하고 있다.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장모 주무관이 불법사찰 내용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총리실 외부로 반출해 삭제하는 과정에 문제의 대포폰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대포폰을 지급한 청와대 최모 행정관을 6시간 ‘출장조사’하고 끝냈다.
검찰이 청와대 개입 정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PD수첩’ 사건 등에서 공소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개인적 내용까지 공개했던 종전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검찰은 2009년 6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며 작가가 지인에게 보낸 e메일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 4월 한명숙 전 총리의 5만달러 수수 의혹 공판 때는 한 전 총리 아들 박모씨(25)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진첩과 일기장 내용까지 법정에서 공개했다.
이귀남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는 데 대해서도 비판론이 커지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사지휘권 발동 문제는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검찰이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고 받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현 정부 초기인 2008년 6월 당시 김경한 법무장관은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 대해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민간인 불법사찰의 청와대 개입 여부에 대해 검찰이 부실·축소 수사를 한 사실이 명백해진 만큼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검찰이 스스로 나서지 않을 경우 특별검사제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