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넘기는 방안을 골자로 한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21일 발표됐습니다. 수직적이었던 검·경의 관계가 상호협력형태로 바뀌는 겁니다. 그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불린 검찰을 견제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인데요. 검찰 권한이 크게 축소되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 개혁의 역사를 짚어봅니다.
검찰 개혁에 나선 것은 사실상 노무현 정부가 처음이었습니다. ‘검찰 개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김영삼 정부입니다만, 이렇다 할 개혁은 없었습니다. 하나회 등 신군부가 가진 권력을 검찰로 옮겼을 뿐입니다. 1997년 영장전담 판사가 구속 전 피의자를 심문하는 제도가 생긴 것이 그나마 성과였습니다.
김대중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사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는 특별검사제도가 생겼지만, 이는 ‘옷 로비 사건’과 ‘이용호 게이트’ 등의 영향으로 정권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 시도’의 상징은 2003년 3월 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술회합니다. “그들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사고에서 검사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는 세력들이 고졸 출신 변호사였던 대통령에게 ‘학번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식으로 거만했다. 기득권적 사고를 버리지 않았던 것.(문재인 저, <대한민국이 묻는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검사 동일체 원칙을 완화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형사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고, 검사의 잘못된 불기소 처분을 법원이 보완하는 재정신청제도를 확대합니다. 하지만 재정신청이 인용 돼도, 검사가 무죄 구형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 성적표는 초라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돼 있습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는데요.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검찰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우리는 검찰개혁의 출발선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봤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문재인 저, <문재인의 운명>)”
이명박 정부는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전관예우 금지’라는 카드를 내세웠지만, 역시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따라 2013년 4월 ‘정치 수사’의 상징으로 여겨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