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은 판사’ 순혈주의, 김선수로 깬다

이혜리·박광연 기자

관례 깬 대법관 후보 제청

‘통진당 사건 대리’ 김선수 과거 두 차례 최종 명단에

‘보수 성향’ 알려진 이동원 개혁적 판결도 눈에 띄어

노정희 법원도서관장 제청 임명 땐 여성 4명 역대 최다

<b>통합진보당 재판정에서</b> 대법관에 제청된 김선수 변호사(오른쪽)가 2013년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열린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합진보당 변론을 앞두고 청구인 측인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통합진보당 재판정에서 대법관에 제청된 김선수 변호사(오른쪽)가 2013년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열린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합진보당 변론을 앞두고 청구인 측인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김명수 대법원장이 2일 후임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한 김선수 변호사(57·사법연수원 17기)는 1980년 이후 제청된 대법관 중 처음으로 판사나 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 재야 변호사다. 대법관은 판사 출신이 해야 한다는 ‘순혈주의’를 깨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동원 제주지방법원장(55·17기)과 노정희 법원도서관장(54·19기)이 임명되면 전체 대법관 14명 중 비서울대 출신이 기존 4명에서 5명으로, 여성은 3명에서 4명으로 늘어난다.

대법관은 판사 출신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법원 내부의 ‘불문율’이었다. 현재 대법관 14명 중 검사 출신인 박상옥 대법관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판사 출신이다. 변호사 몫인 조재연 대법관도, 학계 몫인 김재형 대법관도 모두 과거 법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김 변호사는 과거에도 두 번이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 후보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이상훈·박병대 전 대법관 퇴임 때, 그해 11월 김용덕·박보영 전 대법관 퇴임 때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최종 후보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끝에 제청된 것이다. 그의 제청은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도권 지역의 한 법원 판사는 “김 변호사 제청에 대해 이견은 많지 않은 분위기”라며 “대법관을 꼭 판사 출신이 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홍성담 화가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비정규직 보호 확대를 이끌어낸 예스코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 사건에서 변론을 했다.

이동원 법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보수적 성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개혁적 판결을 한 적도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한 사단법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설립 신청을 법무부가 반려한 것은 위법하다며 재단 측 승소 판결을 했다. 또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부모와 같이 난민 신청을 한 미성년 자녀에 대해 별도의 면접심사를 하지 않은 채 난민 불인정 결정을 한 사건에서 한국이 비준한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을 위반했다며 위법하다는 판결을 했다.

특히 이 법원장의 일부 판결이 김 변호사의 변론과 상반되는 점이 눈에 띈다. 김 변호사는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때 통진당 측 대리인단장을 맡았다. 반면 이 법원장은 통진당 국회의원들의 지위상실 확인 소송의 재판장으로서 정당을 해산한 경우 소속 의원의 신분이 상실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또 이 법원장은 재미교포 신은미씨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결도 했다.

노정희 관장 제청은 대법관 중 여성 비율을 늘리겠다는 김 대법원장의 의지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퇴임하는 대법관 3명이 모두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인 노 관장이 후임이 되면 여성 대법관의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노 관장은 여성·아동 문제에 천착해왔으며 현재 법원 내 모임인 젠더법연구회 회장이다. 우리법연구회 멤버이기도 했으며 개혁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서울고법 민사부에 있을 때 어머니의 성으로 바꾼 자녀도 어머니가 소속된 종중의 종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귀순 이후 신원정보가 노출돼 탈북자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도 내렸다.

최근 사법부 안팎에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법원장을 거쳐 대법관이 되는 기존의 ‘승진 코스’가 법원 관료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 법원장과 노 관장의 경우 김 대법원장 취임 후인 지난 2월 법원장급이 됐고,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이 반영돼 이번 제청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법원장 출신을 대법관 제청에서 배제할 경우 고위법관들이 불만을 제기할 것을 감안해 법원장 출신을 포함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법원장을 대법관 후보에 넣어야) 고위법관들이 김 대법원장의 뜻을 잘 받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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