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국외도피’ 무죄는 최순실에 대금 넘어갔기 때문

이혜리 기자

국정농단 ‘3가지 무죄’ 살펴보니

‘재산국외도피’ 무죄는 최순실에 대금 넘어갔기 때문

자신에게 재산 빼돌린 경우만 해당
박근혜와 독대 때 얘기 오간 출연금
다른 기업들과 함께 낸 점이 영향

대통령 요구라도 강요죄 성립 안돼
소수의견 “청 요구는 묵시적 협박”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1·사진)의 2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선고 핵심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을 했고, 이는 곧 대가관계가 성립한다는 취지의 유죄 판단이다. 이날 대법원은 3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형량이 제일 높은 재산국외도피죄와 뇌물 액수가 가장 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204억원)에 대한 제3자뇌물죄,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벌인 이권 행위에 관한 ‘강요죄’다. 이 3가지 ‘무죄’를 두고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이유, 엇갈린 1·2심 판단, 시민사회 반박과 소수 의견을 살펴봤다.

① 최순실 해외계좌로 바로 보내면 무죄?

대법원은 제3자뇌물죄가 적용된 한국동계스포츠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이 뇌물이 아니라는 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비타나·라우싱·살시도 등 말 3마리도 2심과 달리 삼성에서 최씨에게 실질적인 사용·처분권한이 넘어갔다며 뇌물이 맞다고 했다. 반면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 혐의는 2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해외로 돈을 보낼 때는 자본거래 신고를 해야 하는데, 정씨 지원이 뇌물이라는 점을 숨기려고 삼성전자가 최씨 측과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한 뒤 최씨 측 해외계좌에 돈을 보낸 혐의를 받았다. 재산국외도피죄는 한국의 법·제도 관리를 받지 않고 임의로 국내 재산을 해외로 이동할 때 성립한다.

유무죄 판단은 1·2심에서도 갈렸다. 1심은 용역계약 대금을 뇌물로 인정하면 재산국외도피죄도 성립한다고 했다. 2심은 재산국외도피죄는 해외에 ‘자신의 재산’을 빼돌린 경우를 처벌하는 취지인데, 용역계약 대금은 이 부회장이 아니라 최씨에게 넘어간 돈이기 때문에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산국외도피죄 형량은 도피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다.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뇌물죄보다도 높다. 대법원은 무죄라는 2심 판단이 맞다고 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3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연 좌담회에서 대법원 논리대로면 이 부회장이 자신의 해외계좌에 돈을 보낸 뒤 최씨에게 전하면 재산국외도피죄이고, 최씨 측 해외계좌에 곧바로 돈을 보내면 죄가 아니라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해외 재산 도피 방법에 따라 범죄 성립이 달라지는 게 법리적으로 올바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② 다른 대기업들과 함께 돈을 내 무죄?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은 204억원으로 이 부회장의 여러 뇌물 혐의 중 액수가 가장 크지만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단이 나왔다. 2심은 출연금과 이 부회장 사이 대가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내야 할 출연금을 ‘대납’했다고 볼 수도 없다면서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결 이유에 일부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은 없다”며 무죄 결론에 동의했다. 영재센터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때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갔지만, 출연금은 전국경제인연합회 가이드라인에 따라 다른 대기업들과 함께 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③ “청와대 요구는 묵시적 협박”

대법원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이권행위가 직권남용죄에는 해당하지만 강요죄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을 두고는 소수의견이 주목을 받았다. 강요죄는 협박을 하면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을 때 성립한다. 1·2심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요구는 그 자체만으로 강요가 된다고 봤다. 강요는 위세를 이용할 수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단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견(대법관 9명)은 아무리 대통령 요구라도 바로 강요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떤 협박을 했는지를 따져야 된다고 했다.

권력자가 어떤 불이익을 주겠다고 특정하면서 이권을 빼내는 일은 많지 않다. 박정화·민유숙·김선수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포괄적 권한을 가진 고위공직자일수록 특정한 불이익을 시사하는 구체적인 언동을 하지 않은 경우에 그 지위를 이용해 한 요구를 묵시적 협박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며 “이는 기존 법리보다 묵시적 협박의 인정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는 청와대가 대기업이 특정 업체와 납품계약을 체결하도록 압박한 사실이 나왔다. 소수의견은 “이러한 청와대 요구는 묵시적 협박에 해당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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