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신뢰 저하 막으려 검찰 약점 공격…언성 높인 ‘진흙탕 싸움’

이혜리 기자

‘검찰 vs 법원’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검찰청과 법원 방향이 갈리는 지점.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에서는 피고인인 판사가 검찰과 격하게 대립하곤 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검찰청과 법원 방향이 갈리는 지점.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에서는 피고인인 판사가 검찰과 격하게 대립하곤 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정운호 게이트 법관 수사 막으려
임종헌이 2016년 두 명의 판사에
대응 방안 마련하라 지시 때부터
법원 대 검찰의 대립구도 시작

수사정보 유출 혐의 판사 재판에
현직 검찰 간부 증인으로 신청 등
“검찰이 정보 줘놓고 판사 기소”
공격 수위 고조하자 검찰은 반론

피고인이 법원행정처 준 수사정보
그들의 부인 불구 매우 구체적

사법농단 재판에서는 ‘검찰 대 피고인’이 아니라 ‘검찰 대 법원’의 대결이 자주 벌어진다.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 재판이 대표적이다. 이 피고인들은 지난 2일 이원석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현직 검찰 간부를 법정에 불러내겠다는 것이다. 신 판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형사수석부장, 조·성 판사는 영장 전담을 하면서 정운호 게이트 수사정보를 법원행정처로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받는다. 이 부장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검사로 정운호 게이트를 수사했다.

지난 5월부터 열린 12번의 재판에서는 고성과 날선 단어들이 오갔다. 피고인들은 검찰이 스스로 정보를 줘놓고 애꿎은 판사들을 기소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당시 이 부장검사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에 수사정보를 알려줬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한다. 검찰을 향한 공격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23부의 유영근 재판장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법원과 검찰의 대립 구도, 그런 식으로까지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 사법부와 검찰이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굉장히 당혹스럽습니다.” “최악이 서로 간에 진흙탕 싸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운호 사건 그때처럼 물고 뜯는 것은 국민들 보기도 힘들고, 서로 간에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그런 논쟁을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일단 의견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 ‘검찰 대 법원’ 프레임

피고인들은 재판 초기부터 이 부장을 수차례 언급했다. 신 판사 측 한주한 변호사는 “대검 기조부장이신 분(이 부장)이 2016년 5월2일 최유정 변호사에 대한 영장을 최초 청구하기 전에 김현보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에게 전화해 영장의 종류와 내용을 상세히 알려준 것으로 보인다”며 “신 판사가 보고한 5월3일 전에 이미 법원행정처가 (영장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조 판사 측 윤석상 변호사도 “이 부장은 김 윤리감사관에게 2016년 5월2일부터 적어도 같은 해 8월9일까지 최소 6회에 걸쳐 수사상황을 알려준 것으로 나타난다”며 “김 윤리감사관이 5월11일 이 부장과의 통화내용을 정리한 문건에는 최 변호사 조사상황, 오늘 저녁 영장청구 예정이라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신 판사가 정운호 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이동열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부터 수사정보를 받았다고도 주장한다. 설령 자신들이 수사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유출했더라도 검찰 관계자들이 스스로 알려준 수사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었고, 이렇게 널리 공유된 수사정보는 ‘비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이른바 ‘가(假)목록’ 공방도 있다. 혐의 입증의 첫 단계는 피고인들이 법원행정처로 유출했다는 수사정보가 검찰이 정운호 게이트 관련 영장을 청구하며 법원에 낸 자료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영장 청구 당시에는 수사가 완료된 상태가 아니라서 피고인들이 유출한 수사정보들이 최종적인 수사기록 목록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별도의 가목록에 섞여 있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검찰의 증거 은폐·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조 판사 측 송봉준 변호사는 “검찰이 이렇게 분리해 목록을 만든 것은 (정운호 게이트 관련 사건의) 변호인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형사소송법상 증거는 수사기록 목록에 빠짐없이 기재하도록 돼 있는데 별도의 가목록을 만든 게 위법하다는 뜻의 주장이다. 피고인들은 정운호 게이트 관련 사건에서 다룰 일을 이 사건까지 끌어왔다. 급기야 송 변호사는 검찰을 향해 따졌다. “검사님께서 가슴에 손을 10초만 얹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법농단 사건에는 가목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검사님이 전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겁니다.” 검찰은 “송 변호사의 변론은 명백히 허위이고 매우 유감”이라며 “쪽수가 기재돼 있지 않은 가목록이 있는 것일 뿐 완결된 수사기록 목록에 증거가 빠짐없이 들어 있다”고 반박했다. 유영근 재판장이 “감정적으로 하는 건 신사답지 못하다”며 분위기를 가라앉힌 뒤에야 법정은 차분해졌다.

■ 행정처가 입수한 검찰 수사보고서

검찰은 피고인들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이원석 부장을 증인으로 부르는 데도 반대했다. 이 부장이 김현보 윤리감사관과 통화했다고 하더라도 알려준 내용이 양적·질적으로 신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과 다르다고 했다. 검찰은 오히려 당시 법원행정처가 이 부장을 ‘인적 컨택 포인트’로 삼아 정보를 얻기 위해 공략했고, 이 부장이 수사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들을 반박한다. 법원행정처의 문건엔 “수사 진행 경과 파악할 수 있는 인적 컨택 포인트 필요[윤감실]”라는 문구가 있다.

여러 쟁점을 두고 검찰과 피고인들이 싸우지만 결국 이 사건 핵심은 신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줬다는 ‘9개 문건’과 ‘검찰의 153쪽짜리 수사보고서’에 있다.

신 판사가 작성한 문건들에 적혀 있는 수사정보는 매우 구체적이다. “두 사람이 애시당초 짜지 않고서야 거액의 변호사비용을 뜯어내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한번 물린 변호사비용을 계속 주게 된 것입니다”라는 검찰 진술조서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식이다. 여러 현직 법관에 대한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이 주를 이루고, 계좌 입출금 상황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뉘앙스’나 ‘빽(가방)’과 같은 단어들이 신 판사 작성 문건과 수사기록에 동일하게 적혀 있다고 짚었다.

피고인들은 부인하지만, 지난달 25일 증인으로 나온 서경원 판사(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 심의관)는 검찰의 수사보고서로 추정되는 종이 문서를 누군가로부터 전달받았고 이 문서가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청구 관련 기록이라는 것을 당시 인식했다고 인정했다. 이 수사보고서는 검찰이 2016년 8월9일 작성해 다음날 서울중앙지법에 영장 청구하면서 제출한 것으로 분량이 153쪽에 달한다. 서 판사는 이 문서를 요약해 ‘김수천 부장 압수수색영장 청구서류 정리’ 보고서를 만들었다. 김수천 판사는 당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보고서엔 수사보고서의 쪽수와 함께 내용이 정리돼 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를 넘겨준 게 바로 피고인들이라고 본다. 영장 기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영장 전담 판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인은 김수천 부장판사 계좌추적 영장의 핵심인 153쪽 수사보고서를 통째로 받으면서 놀라지 않았습니까?”(검사)

“이례적인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할 때 수사보고 형식으로 증거자료를 첨부한다는 것을 이례적으로 생각해서 그 내용을 보고서 앞부분에 적은 것으로 기억합니다.”(서 판사)

“윤리감사관실에서는 1장짜리 문건이라도 스캔하는데 윤리감사관과 심의관들이 이 수사보고서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검사)

“아마 사본이라고 하더라도 압수수색 청구 기록 자체이기 때문에 윤리감사관실에서 보관하기에는 부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서 판사)

■ 2016년 8월17일에 무슨 일이?

검찰은 정운호 게이트 때 법원행정처가 비리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초점은 2016년 8월17일로 맞춰진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날 두 명의 판사에게 정운호 게이트 관련 대응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사법정책실 심의관이던 최누림 판사와 대법원 공보관이던 조병구 판사다. 검찰은 이때가 김수천 판사에게 뇌물을 준 사람이 구속된 지 이틀 뒤라 법원행정처가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시점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로 뇌물 판사가 계속 밝혀지면 법원 신뢰에 금이 가는 건 순식간인 상황이었다.

최 판사가 쓴 ‘향후 추진방향 및 전망’ 문건에는 정운호 게이트 관련 검찰 수사의 6대 문제점과 함께 “검찰 측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사실상 전면전을 할 각오를 해야 함”이라는 문구가 있다. “정운호·홍만표 사건 재판부의 석명 및 직권 증거조사” “정운호 사건: 상습도박 사건 수사과정 시 업무상 횡령 혐의 사실에 대한 조사 여부에 대한 피고인 직권신문” 등 일선 재판부가 할 내용도 있다. 최 판사는 “임 전 차장이 몇 개 문건을 줬고 포스트잇에 적혀 있는 내용과 목차까지 불러줬다”며 “제가 (방안들이) 모두 현실성이 없는데 검토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는데 (임 전 차장이) 현실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토의용’으로 쓸 것이니 빨리 요약해달라고 해서 작성했다”고 말했다.

조 판사는 ‘정운호 로비 관련 검찰의 전략적 행위에 대한 대응 문건’을 만들었다. 조 판사는 검찰이 정운호 게이트 수사정보를 기자에게 흘려 ‘법원 망신주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법원 내에 조성됐고 임 전 차장이 강하게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문건엔 ‘상정 가능한 전략의 검토 부분’ 아래 “검찰의 weak point(약점)를 파고드는 전략” “(정운호 상습도박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들 및 보고라인에 대해서 중대한 의혹제기” “홍만표 로비의 대상이 결국 검찰 수뇌부였다는 사정 언급 및 재조명”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조 판사는 “정책결정자들이 판단을 하기 위해 A부터 Z까지 다 열거한다는 차원에서 쓴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법관 수사 확대 저지 목적 여부를 두고는 모른다고 했다.

똑같은 날짜에 임 전 차장이 주도해 작성한 ‘현안 대처 방안’ 문건에도 검찰 압박 내용이 등장한다. 2016년 4월27일 신 판사가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보낸 e메일 수신자에는 설범식 대법원장 비서실장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 약점을 언론에 공개해 법관 수사 확대를 막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두고 검찰에서 “대법원장 보고용으로 썼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법원에 대한 신뢰 저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검찰을 공격하려는 ‘검찰 대 법원’ 대결 구도는 이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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