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내부 규정 ‘성평등’하게 바뀌었나…44개 중 7개 개정

이보라 기자

‘성적 수치심’을 ‘불쾌감’으로

개정 권고 훈령 9개 중 2개

예규는 35개 중 5개 고쳐

[단독]검찰 내부 규정 ‘성평등’하게 바뀌었나…44개 중 7개 개정

검찰개혁이란 말이 넘치는 시대. 검찰개혁 방안으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나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등 검찰 권한 축소 문제가 주로 논의된 반면 남성 중심, 강한 위계로 특징지어지는 검찰의 조직문화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검찰 내 성평등 실태 파악과 대안 모색이 더 넓은 의미의, 근본적인 검찰개혁 과제라는 지적이 많다.

경향신문이 27일 검찰의 성평등 실태를 보여줄 수 있는 기준 중 하나인 대검 훈령·예규의 개정 현황을 살펴본 결과, 2개 훈령과 6개 예규가 성평등 관점으로 개정된 것을 확인했다. ‘성적 수치심’이란 용어는 ‘성적 불쾌감’으로, ‘호주’란 용어는 ‘가족’으로 변경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이 검찰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훈령·예규를 일부 개정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경향신문은 또 다른 성평등 지표가 될 수 있는 법무부·대검·서울중앙지검 등 주요기관의 여성 검사 비율도 파악했다. 전체 평검사 중 여성 비율이 40%인 데 비해 세 주요기관의 여성 평검사 비율은 21~30% 정도로 저조했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 검사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향신문 5월28일자 2면 보도).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개혁의 첫번째는 검찰 권한의 축소가 아니라 검찰 조직문화 개혁이 돼야 한다”며 “그중 이 같은 성차별적 관행이나 인권침해적 규정 등의 조직문화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은 훈령인 ‘대검찰청 공무직 등 근로자 관리지침’을 성평등 관점에서 개정했다. 이 중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바꿨다. ‘수치심’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정조 관념에 뿌리를 둔 것으로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단어라고 봤다. 대검은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에 ‘성적 수치심’ 용어가 남아 있지만 선제적으로 해당 훈령에서 이를 삭제했다.

또 ‘인적요소 등 편견’을 ‘성차별, 그 외 인적요소 등 편견’으로 고쳐 ‘성차별’을 편견 요인 중 하나로 명시했다. 훈령에 따른 관련 위원회 구성 시 성별을 고려하는 내용도 넣었다. 또 다른 훈령인 ‘검찰 인권위원회 운영 규정’의 경우 지난해 11월 위원 구성 시 성별을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을 넣어 고쳤다. 대검은 예규 ‘형의실효등에관한법률 시행에 따른 업무처리 지침’도 지난 1월 성평등 관점을 담아 개정했다. ‘호주’라는 용어를 ‘가족’으로 대체했다. 앞서 호주제는 2007년 폐지됐지만 ‘호주’라는 용어는 이 훈령에 남아 있었다.

■아직 남았다, 편견 안 지운 ‘7개 훈령·30개 예규’…먼저 바꿔야 한다, 잘못된 상위 법률

여종업원·편부·편모 등
법률에 따라 용어 그대로
국회 입법·개정 뒷받침돼야

대검은 예규 ‘대검찰청 노사협의회 규정’과 ‘대검찰청 정보화사업 관리지침’ ‘노동수사전문자문단 운영규정’에서 관련 위원회 구성 시 성별을 고려하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예규 ‘검찰청인권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지침’에서 통계자료 작성 시 성별 구분을 명시하도록 바꿨다. 예규 ‘대검찰청 과업심의위원회 운영 규정’의 경우 당초 검찰 양성평등정책위 권고 대상에 없었지만 대검은 위원회 구성에 성별을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이 같은 훈령·예규 개정은 검찰 양성평등정책위의 권고에 따른 조치다. 양성평등정책위는 지난해 11월 첫 회의를 열고 대검 훈령·예규를 성평등 관점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대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은 지난해 9월 대검 소관 훈령 40개, 예규 230개 등 총 270개에 대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했다. 성별영향평가란 정책의 성차별적 영향·요인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대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은 대검 훈령·예규에 성별을 구분하는 조항이 있는지 또는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된 표현이 있는지, 성별에 따른 신체적·사회문화적 차이 등을 고려해 반영했는지를 살펴봤다. 또 위원회 등의 구성과 관련해 성별을 고려하도록 명시하고 있는지, 자격 요건이 특정 성에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도 점검했다. 제·개정 법령과 관련한 실태조사 등에 성별을 고려하도록 명시하는지, 차별 표현을 지양하고 인권보호를 위한 적절한 행정용어 등을 사용하는지도 따졌다.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고려한 결과 개정 권고 대상은 훈령 9개, 예규 35개였다. 이 중 아직 개정되지 않은 훈령·예규에는 훈령 ‘대검찰청 사무분장 규정’과 ‘시한부 기소중지 관련 업무처리 지침’이 있다. 이 훈령들에서 ‘여성 관련 사건’이란 용어는 ‘성폭력 가정폭력 등 사건’으로 고치도록 권고받았지만 개정되지 않았다. 검찰 양성평등정책위는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사건을 ‘여성 관련 사건’으로 표기한 경우 여성만을 특정 범죄의 피해자로 한정하거나 성별을 기준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해 성별 고정관념이 포함됐다고 판단했다.

대검 훈령·예규에는 ‘여종업원’ ‘성매매 여성’ 등 불필요한 성별 구분 표현도 남아 있다. 양성평등정책위는 예규 ‘성매매알선 등 행위자에 대한 사건 처리지침’에서 ‘여종업원’을 성매매알선처벌법상 표현인 ‘성을 파는 행위를 할 사람’ 또는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으로,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를 한 사람’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개정되지 않았다.

차별적 용어도 개선되지 않았다. 예규 ‘소년사건 처리지침’에서는 ‘편부, 편모’가, ‘범죄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업무처리’에는 ‘소년소녀가장’이란 용어가 남아 있다. 양성평등정책위는 ‘편부, 편모’를 ‘한부모’로, ‘소년소녀가장’을 ‘소년소녀가정’으로 고치라고 했다. ‘편부, 편모’는 사회 통념상 부모, 자녀로 구성된 가정만 보편적 가족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소년소녀가장’의 경우 ‘소년소녀가정’이 현행 법규용어라는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입법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오선희 변호사는 “대검 훈령·예규는 법률에 근거하기 때문에 법률상 용어가 잘못됐어도 이를 끌고 올 수밖에 없다. 법률에 있는 부적절한 용어를 개정하는 움직임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는 “법적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검찰과 법무부가 법을 바꾸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고 더 나아가 법 개정 의견도 내야 한다. 검찰 내부 차별적 규정을 바꿔나가는 것은 검사들의 인식과 조직문화 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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