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는 재벌 총수에 ‘사면’…이재용은 ‘가석방’인 이유

허진무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15 광복절을 앞두고 9일 받은 ‘가석방’ 허가는 재벌 총수에게 이례적인 조치다. 역대 정부는 재벌 총수에 대해 가석방보다는 ‘사면’을 택해왔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두 번씩 사면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2년 12월31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2월12일 IMF 경제위기 극복 10주년을 맞아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을 대거 사면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그 해 12월31일 사면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첫 해인 2008년 광복절에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재벌 총수를 대거 사면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사면·복권됐다. 정 회장은 115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790억원대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2008년 6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김 회장은 2007년 둘째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당하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술집 종업원을 보복 폭행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최 회장은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에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로 2008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가석방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가석방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2009년 12월31일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원포인트’ 사면했다. 재벌 총수 한 명을 위한 사면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당시는 2010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앞두고 있었다. 한국이 평창올림픽 유치에 연이어 실패하자 IOC 위원이던 이 회장의 역할론과 사면론이 힘을 얻었다. 당시 법무부는 보도자료에서 이 회장을 ‘이건희 IOC 위원’이라고 적으며 “적극적인 유치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0년 광복절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을 사면했다. 김 전 회장은 그룹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회사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09년 10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회장은 회삿돈 3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8년 3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광복절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6년 광복절에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사면했다. 최 회장은 회삿돈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13년 1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2016년 7월 가석방됐다. 최 부회장은 형보다 징역 6월을 덜 선고받았는데 감옥에는 1년 더 있었다. 이 회장은 1657억원대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2015년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까지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을 한 차례도 단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와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률상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다. 현 정부가 가석방을 택한 것은 ‘중대 부패범죄자’인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이 앞서 공언한 사면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가석방이라는 우회로를 밟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가석방으로 문 대통령의 원칙도 빛이 바랬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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