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아픔을 돌보지 않는다”…순직 아들 관련 사건 ‘재정신청’도 하세월

이보라 기자
5월26일 서울 관악구 수도방위사령부 앞에 화환이 놓여 있다. 군치유센터 함께 제공

5월26일 서울 관악구 수도방위사령부 앞에 화환이 놓여 있다. 군치유센터 함께 제공

“자식을 잃으면 부모는 정신이 마비됩니다. 군인인 아들이 휴가 나왔다 숨졌는데 군검찰은 초동수사에서 여러 의혹들을 덮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증거를 갖다대도 재수사는 없었고, 그래서 수사관을 고소했더니 ‘불기소’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남아있는 건 부실수사에 대한 재정신청을 하는 것뿐이어서 (재정신청을) 해봤지만, 이마저도 법에 정해진 것들이 전혀 안 지켜지고 있습니다.”

조준우 일병은 2019년 7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 자택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의 극단적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조씨의 어머니 강경화씨는 아들의 군 복무 당시 일기장을 뒤져 간부가 괴롭힌 일, 주 3일 당직을 선 일 등을 자료로 제시하며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달라”고 수차례 국방부에 호소했다. 하지만 조 일병의 죽음을 일찌감치 ‘일반사망’으로 결론내린 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씨는 아들과 같은 부대에 근무한 병사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해 들은 당시 사정 등 근거자료들을 모아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국방부 장관에게 ‘순직 여부를 재심사하라’고 권고했고, 국방부도 결국 지난해 8월 조씨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과중한 군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사망 원인이 됐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후 보상금과 보훈 연금이 나왔지만 어머니 강씨는 “차마 이 돈을 쓸 수 없다”며 매달 나오는 연금을 지난해 12월부터 아들이 다닌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기부하고 있다. 이 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인다.

강씨는 지금도 군검찰의 사건 처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망 사건 처리 자체도 의혹투성이였지만, 이후 법에 정해져 있는 이의 제기 절차를 충실히 따랐는데도 군은 무엇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씨는 “아들의 사망 사건을 부실수사했다”며 당시 수사 담당자를 2020년 10월 육군본부 보통검찰부에 고소했다. 하지만 군검찰은 10개월이 지난 지난해 8월 불기소 처분했다.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강씨 등 유족은 같은 해 9월13일 육군본부 보통검찰부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은 고소·고발인이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절차이다. 군검찰은 재정신청에 대해서도 ‘뭉개기’로 일관했다. 육군본부 보통검찰부는 재정신청을 접수한 지 38일 만인 10월21일 고등검찰부로 송치했다. 군사법원법에는 ‘7일 이내’로 규정돼 있는 고등검찰부 송치 기한을 한 달 넘게 어긴 것이다. 육본 고등검찰부 또한 사건을 송치받은 지 7개월 만인 지난달 12일에야 고등군사법원으로 넘겼다. 군사법원법상 ‘30일 이내’인 규정이 여기서도 무시된 것이다. 법원의 재정신청 결정도 덩달아 늦어지게 됐다.

유족들은 국방부에 ‘절차 지연이 아니냐’고 따졌지만, 국방부는 “군사법원법 해당 규정은 ‘훈시규정’일 뿐 그 기간 내에 결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법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강제할 수단도 없다”고 답했다. 군 관련 사건의 경우 재정신청이 불기소 처분에 불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절차이다. 민간 사건의 경우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고소·고발인은 우선 검찰에 항고를 할 수 있다. 검찰 항고 이후 3개월이 경과한 뒤에도 조치가 없으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군 관련 사건은 항고 절차 없이 재정신청만 가능하다. 더구나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직접 재정신청할 수 있지만 민간 사건과 달리 군 관련 사건은 군 검찰을 거쳐야만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고소·고발인은 검찰에 재정신청을 한 뒤 검찰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씨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겨우 순직 결정을 받아냈을 뿐, 아들 사망 사건 재수사를 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남은 것은 부실수사에 대한 재정신청밖에 없는데,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군은 국민의 아픔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호인인 최정규 변호사는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인 법을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데, 사법기관은 법을 위반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서 “훈시규정이라는 이유로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결국 법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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