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받는데 28차례 ‘부재중 전화’···대법 “불안감 주는 스토킹 행위” 첫 판단

김희진 기자

부재중 전화를 남긴 행위를

스토킹으로 볼 수 있는지

하급심에선 판단이 엇갈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상대방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다면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도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하급심에선 부재중 전화를 남긴 행위를 스토킹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판단이 엇갈려 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10월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피해자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차단하자 9차례 메시지를 보내고 29차례 전화한 혐의(스토킹처벌법·정보통신망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전화 통화가 연결된 경우는 한 차례였다. A씨는 피해자에게 ‘찾는 순간 너는 끝이다’ 등 메시지와 함께 피해자 어머니의 집 사진을 찍어 보내고,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1·2심은 A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으나 부재중 전화를 스토킹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판단이 엇갈렸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피해자가 받지 않은 28통의 전화는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화를 걸었다는 것만으로는 피고인이 정보통신망을 통해 피해자에게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부재중 전화’ 표시는 전화기 자체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해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스토킹처벌법에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스토킹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급심에서는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도달하게 하는 행위’가 성립한다고 봐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왔다.

대법원은 실제 전화 통화가 이뤄졌는지와 상관없이 부재중 전화 기록이나 벨소리를 남겨 상대방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은 스토킹처벌법이 정한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이번 판결에서 최초로 설시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 피해자에게 유발되는 불암감 또는 공포심은 일상생활이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고,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며 “오히려 스토킹행위가 반복되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증폭된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수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스토킹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정도가 심각해져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전화를 시도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 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해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해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A씨로서는 적어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피해자 휴대전화에서 벨소리나 진동음이 울리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된다는 점을 알 수 있었고, 그런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는 의사도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봐야한다”며 “원심은 스토킹처벌법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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