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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전자정보 ‘통째 보관’ 안 한다···대검 예규·경찰청 훈령 비교해보니

이보라 기자
경찰 수사관들이 압수물을 옮기는 모습. 연합뉴스

경찰 수사관들이 압수물을 옮기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검증 보도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휴대전화·노트북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전자정보를 통째로 보관해 논란을 빚는 것과 달리 경찰은 압수수색 범위 밖의 전자정보를 일절 보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고 나면 관련 전자정보 전체를 모두 삭제·폐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전자정보 ‘통째 보관’ 이유로 공소유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검찰은 경찰이 수사해 송치한 사건도 공소를 유지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경찰청 훈령인 ‘디지털 증거의 처리 등에 관한 규칙’에는 전자기기 안의 정보 전체 보관을 허용하는 규정이 아예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14조 제1항은 경찰관이 전자정보를 압수할 때부터 범죄 혐의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에 한해 해당 전자정보만을 복제하는 방식(선별압수)을 취하도록 했다. 선별압수가 불가피할 경우 복제본이나 원본을 반출할 수 있지만 이럴 경우에도 압수당한 사람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제35조는 증거분석관이 증거 분석을 의뢰한 경찰관에게 분석결과물을 회신한 뒤 분석 과정에서 생성된 전자정보를 삭제·폐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분석결과물을 회신받은 경찰관은 증거로서 가치가 있는 전자정보(디지털 증거)를 압수한 뒤 그 외 정보는 삭제·폐기해야 한다.

경찰관이 사건을 다른 경찰서에 이송하거나 검찰에 송치한 뒤에도 수사 과정에서 생성된 디지털 증거의 복제본을 삭제·폐기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경찰에는 범죄 혐의사실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전자정보가 모두 폐기되는 것이다. 입건 전 조사(내사)·미제 사건 때문에 압수를 계속할 필요가 있으면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까지 보관 후 삭제·폐기하도록 규정돼 있다.

검찰 규정은 이와 다르다. 대검찰청은 전자기기 안의 전자정보를 통째로 보관하는 근거로 대검 예규 ‘디지털 증거의 수집·분석 및 관리 규정’을 든다. ‘주임검사 등은 법정에서 디지털 증거의 재현이나 검증을 위해 필요한 경우 디지털포렌식 수사관에게 이미지 파일의 보관을 요청할 수 있다(제37조 제1항)’ 등이 근거 조항이다.

검찰은 수사뿐만 아니라 공소유지까지 염두에 두고 예규를 만든 것이어서 공소유지를 담당하지 않는 경찰의 훈령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검사가 재판에서 증거 능력 보전을 하려면 전자기기 내 전자정보 전체 보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한 사건의 경우 전자기기 안의 전자정보가 통째로 보관돼 있지 않음에도 검찰이 공소유지를 맡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지훈 변호사는 “대부분의 수사를 담당하는 조직이 경찰이고 경찰이 수사한 사건의 공소유지를 하는 게 검찰”이라며 “경찰 사건은 전자기기 안 전자정보가 통째로 보관돼 있지 않은데도 검찰의 공소유지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국가정보원 등 다른 기관도 압수수색시 전자정보 전체를 저장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증거의 동일성·무결성을 증명하기 위해 전자기기 안의 전자정보를 통째로 보관하지 않는 대신 다른 방식을 사용한다. 압수수색과 분석 과정이 기록된 증거분석 보고서와 압수한 전자정보의 해시값(고유 식별값) 등으로 증거 능력을 보전한다는 것이다. ‘카카오톡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애플리케이션은 개별 추출이 힘들어 전체를 보관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특정 내용이 포함된 대화방을 선별하는 등 범죄 사실과 관련되는 부분만 선별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2013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유죄로 확정하며 “정보저장매체 원본에 대한 압수, 봉인, 봉인해제,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 등 일련의 절차에 참여한 수사관이나 전문가 등의 증언, 법원이 그 원본에 저장된 자료와 증거로 제출된 출력 문건을 대조하는 방법 등으로도 무결성·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방식으로도 증거의 무결성·동일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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