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 달 일하는 날 20일 이내” 손해배상액 기준 21년 만에 변경

이혜리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대법원이 산업재해를 입은 육체노동자(도시일용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액수를 계산할 때 요건 중 하나인 ‘한 달 중 일하는 날의 수(월 가동일수)’를 ‘20일 이내’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003년 육체노동자의 월 가동일수 최대치를 22일로 정했는데 이를 21년 만에 줄인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등 사회변화를 고려한 판결이라고 밝혔지만 향후 산재 피해 노동자 등의 손해배상액이 줄어들 여지가 생겼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5일 근로복지공단이 A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근로복지공단 승소인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는 2014년 여관 철거공사 현장에서 크레인에 후크를 매달고 굴뚝 철거 작업을 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해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공단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A씨에게 휴업급여 2억원 등을 지급했다. 공단은 사고 원인인 크레인의 보험자인 A사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 쟁점은 육체노동자인 B씨의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이었다. 손해배상액은 사고 없이 계속 일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입(일실수입)을 기준으로 정하고, 일실수입 계산은 월 가동일수, 가동연한(노동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최후연령)을 토대로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년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기존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높였다.

월 가동일수에 대해 산업계에서는 주 5일 근무제, 공휴일 증가,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 문화 등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있다며 적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 가동일수가 줄면 그에 따라 산재 피해 노동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도 같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이를 넓게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사건에서 1심은 월 가동일수를 19일, 2심은 22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 육체노동자의 월 가동일수를 20일을 초과해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1주 노동시간의 상한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면서 노동시간이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대체공휴일 신설과 임시공휴일 지정 등 1년에 공휴일로 쉬는날도 증가했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2003년 세운 ‘월 가동일수 22일’ 기준은 현재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노동시간과 관련해)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다”며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는 등 근로여건과 생활여건의 많은 부분도 과거와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개별 사건에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증명하면 월 가동일수가 20일을 초과해 인정될 수 있다. 다만 대법원 기준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하급심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손해배상액이 줄어든다는 비판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일실수입에 관해서는 실제 손해를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해야 하는 대원칙상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며 “대법원은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하는 등 시대상황에 맞는 경험칙을 선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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