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검찰의 ‘디지털 캐비닛’ 수사에 제동 판결

이혜리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모습. 문재원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모습. 문재원 기자

검찰이 압수수색한 휴대전화 전자정보를 ‘통째’ 보관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 수사를 벌인 것은 적법절차를 어긴 ‘위법 수사’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검찰은 최근 이른바 ‘디지털 캐비닛’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부인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의 범죄사실과 무관한 자료를 삭제하지 않은 채 갖고 있으면서 다른 수사에 활용한 정황이 또다시 확인됐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청탁금지법 위반·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지난 16일 유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에 돌려보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수사를 지연시켜달라는 청탁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고 수사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원주지청 소속 직원이던 A씨를 기소했다.

문제는 검찰의 증거 수집이었다. 대법원 판결에 기재된 사실관계를 보면, 검찰은 2018년 12월 국토계획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면서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원주시청 간부 B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디지털 증거분석(포렌식)한 뒤 그 이미징(복제) 파일을 대검찰청 서버의 통합디지털증거관리시스템(디넷)에 통째 저장했다. 여기서 국토계획법 위반 혐의 관련 전자정보를 탐색하던 중 우연히 A씨와 B씨의 통화녹음, 일정내역표, 문자메시지 등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 자료를 토대로 국토계획법 위반 혐의와는 관계없는 A씨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해당 자료를 대검 서버에 저장한 채 계속 수사를 하던 검찰은 2019년 1월 A씨 혐의를 적용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은 이를 집행하지 않고 수사를 이어가다가 2019년 3월에서야 다시 영장을 받아 대검 서버에 저장돼있던 A씨 혐의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 자료를 A씨 재판에서 증거로 냈다.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1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뉴스타파 직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1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뉴스타파 직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대법원 “검찰, 무관정보 발견했음에도 위법수사 계속..원칙 위반 중해”

대법원은 검찰의 이같은 증거수집은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수사기관은 저장매체에서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근거였다.

대법원은 “A씨는 첫 번째 영장(국토계획법 위반 혐의로 발부된 영장)의 대상자와 인적 관련성이 없고, B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자료는 국토계획법 위반 혐의사실과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 있는 관련성 있는 전자정보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검찰이) 첫 번째 영장 집행 종료 후 무관정보를 삭제·폐기·반환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보관하면서 이를 탐색·복제·출력하는 등 일련의 수사상 조치는 모두 위법함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국토계획법 위반 사건과 A씨 건은 피의자·범행 내용·사건 발생 시기·관련자가 서로 전혀 달라 검찰이 유관정보와 무관정보를 구별하기 어렵지도 않다고 했다. 유관정보와 무관정보를 구별하기 어려워 휴대전화 전자정보를 ‘통째’ 보관했다는 검찰 측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검찰이) 무관정보를 발견하고 두 번째 영장을 발부받기까지 약 한달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은 첫 번째 영장 혐의사실에 대한 무관정보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오로지 무관정보를 기초로 한 이 사건 수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고 했다.

대법원은 검찰이 뒤늦게 영장을 발부받아 대검 서버 자료를 확보한 ‘2차 압수’도 위법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집한 ‘2차적 자료’도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상 위법 수집 증거는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게 원칙이지만, 사법 정의 실현에 반한다면 예외적으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그 예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은 무관정보를 발견했음에도 무려 약 3개월 동안 계속 탐색·열람·복제하는 등의 위법한 수사를 계속 진행했다”며 “압수수색 절차에 요구되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한 정도가 상당히 중하다”고 했다.

대검 “현재는 선별절차 이후 전부이미지에 접근 엄격히 통제”

검찰의 압수수색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이 인터넷 언론 뉴스버스 이진동 대표의 휴대전화 내 정보를 대검 서버(디넷)에 ‘통째 저장’한 사실이 지난달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통째 보관한 전자정보가 별건 수사에 활용되며 ‘디지털 캐비닛’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검찰청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해당 사건 당시에는 전부 이미지, 선별 이미지(유관정보)에 대한 등록 및 폐기 절차가 구체적·개별적으로 규정돼있지 않았다”며 “현재는 유관정보 탐색 및 선별을 종료한 후 디지털증거의 무결성·동일성·진정성 등 증거능력 입증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전부 이미지를 보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선별절차까지 종료된 이후부터는 전부 이미지에 접근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조국혁신당은 이 사안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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