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학폭위’…교사들 “외부로 넘겨야” 말하는 이유는

김경학 기자
서울 남대문 경찰서 옥상에 ‘학교폭력 신고전화 117’을 알리는 옥외광고물이 설치돼 있다. 자료사진

서울 남대문 경찰서 옥상에 ‘학교폭력 신고전화 117’을 알리는 옥외광고물이 설치돼 있다. 자료사진

“학폭 신고건에 대해 책임교사의 업무가 지나치게 과하며, 업무처리하랴 학부모 대응하랴 책임교사는 수업파행까지 되어가며 업무에 시달립니다. 자치위(학폭위)로 가기 전 회복적 단계라는 부분도 은폐·축소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학교현장에선 학폭담당 교원업무는 저경력 또는 부장교사에게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법률에 관한 전문가를 지원청에 상주하도록 하여 처리하도록 해주세요. 정말 학폭 터지면 수업도 못합니다. 열심히 일해놓고 절차상 문제 있다고 책임교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문제입니다. 새로 맡은 업무 파악하기도 전에 학폭 터지면 정말 어찌할 바를 몰라요. 물어보면서 하라고 해도 교사가 수업은 안합니까?”

지난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전국 유·초·중·고 교사와 대학교수, 교육전문직 등 11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메일 설문조사에서 나온 의견이다. 이 조사 결과 응답자의 79.4%(945명)이 법률을 개정해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이나 경찰서 등 외부기관으로 이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자는 17.1%(204명)이었다.

조사 결과를 조금 더 면밀히 보면 고등학교 교사들보다는 중학교 교사가, 중학교 교사들보다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폭위 이관을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교사는 86.4%, 중학교 교사는 78.5%, 고등학교 교사는 71.0%가 이관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또 경력으로는 11~20년차 교사들이 학폭위 이관을 가장 많이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1~20년차 교원은 86.5%, 21~30년차는 80.1%, 10년 이하는 76.8%, 31년 이상은 74.7%로 조사됐다.

교총은 교사들이 학폭위를 학교 안에 둔다는 데 부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교총 관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고, 그 과정에서 학교나 담당교사의 행정상 실수를 물고 늘어지며 문제제기나 소송을 거는 등 학생교육에 힘써야 할 학교가 폭력사건의 처리까지 도맡아 공교육 약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학폭위의 기능을 학교가 아닌 전문기관으로 이관하는 것에 찬성하는 비율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학폭위. 정식 명칭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줄여서 ‘학교폭력예방법’ 또는 ‘학폭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진 교내 기구다. 학폭법상 학교폭력 대책과 관련된 위원회는 총 3가지가 있다. 우선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등 국가 정책적인 사안을 심의하고 평가하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있다. 위원장은 국무총리로, 장관·전문가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란 것도 있다. 전국 17개 시·도 단위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지만 관련자들이 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한 경우 ‘재심’하는 역할도 한다.

마지막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일명 학폭위는 학교에 두는 기구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피해학생을 보고하고, 관련 학생들의 분쟁을 조정하거나 가해학생에 어떤 조치를 적용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최근 학폭위를 학교 밖으로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학교폭력 사안이 매년 조금씩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안은 모두 2만4761건으로 전년보다 15.4% 증가했다. 학폭위에서 심의한 건수도 2013년 1만7749건에서 지난해 2만2673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는 건수는 2012년 572건에서 지난해 1299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학교 등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2012년 50건에서 2015년 109건으로 2배가량 늘었다.

학교폭력 사안이 늘어나는 것은 학생들이 예전보다 폭력적으로 변해서가 아니라,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정신적 폭력 등 폭력으로 인식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스마트폰 등 수단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학폭위를 열도록 학폭법을 개정한 탓도 있다. 현행 학폭법과 교육부 가이드라인 등은 아무리 작은 신체적 접촉도 피해학생이 학교폭력이라고 하면 학교폭력에 해당해 학폭위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래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여중생이 지난 9월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연합뉴스

또래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여중생이 지난 9월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연합뉴스

교사들은 학교폭력 사안을 다룰 때 가장 힘든 것은 부산 여중생 사건처럼 누가 봐도 범죄에 해당하는 폭력 사안이 아닌, 낮은 단계의 폭력 사안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여름 불거져 아직 진행 중인 재벌 회장 손자의 학교폭력 논란도 어느 선까지 학교폭력으로 봐야 하는지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재벌 회장 손자가 다니는 서울 숭의초 측은 학교폭력이 아니라서 학폭위를 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서울시교육청은 피해학생이 학교폭력을 주장함에도 학폭위를 열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징계를 요청해놓은 상태다.

교총 조사에서 나온 의견을 보면, 교사들의 고충이 드러난다.

“현재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 구성원은 경찰관 1명을 제외하고는 법률적 전문 지식이나 조사관련 업무에 전혀 전문성이 없는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요즘 모든 것을 법정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학부모의 변화되어가는 양상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학교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교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학부모와의 마찰, 상급기관의 서류보고·행정소송 대비 등 교사의 의욕 상실과 학생 지도의 회의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본 교사는 제안 사항으로 지역 교육지원청 단위로 학교 폭력 전담요원을 상시 배정하여 변호사·수사관·장학사·교원관리자 출신 지역위원·파견교사·학부모 대표·행정요원 등을 구성하여 학폭사건 발생시 사건 초기 조사부터 위원회 회의까지 전담하여 그 결과를 교육청을 통해 학교로 통보함으로써 학교는 은폐 혹은 처벌의 조정의혹에서 벗어나고 학부모 신뢰를 잃지 않고, 교권을 확보하는 다양한 이점이 있어 교사의 사기 진작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폭 예방 교육 등 좀 더 교육적이고 안정적인 학교 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부모의 태도를 언급한 의견도 있었다.

“사소한 학교폭력 관련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에도 학부모의 갑질에 학교가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교육현장입니다. 학부모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하겠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법률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현재 학폭위에서 적용할 수 있는 조치가 너무 약하다며 구치소와 같은 곳에 일정 기간 가둘 수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법률 개정으로) 외부의 감호기관에 문제학생을 일정기간(1학기 이상) 감치시킬 수 있는 처분을 만들어 주십시오. 1~9호까지의 처벌수위가 너무나도 가볍습니다. 심지어 가장 큰 처벌인 9호(퇴학처분)는 의무교육기관인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실시할 수조차 없습니다. 8호(전학)은 어떻고요? 결국 폭탄 학생들 돌리라는 말 아닙니까? 7호(학급교체) 교체시켜봤자 다른 반 친구들마저 물들어버립니다. 학교내에서 피해학생과 계속 마주치는 상황은요? 3학급 정도밖에 없는 학교는 어떡하나요? 결국 법적으로 면죄부 주는 겁니다. 6호(출석정지) 출석정지 10일 시키면 그 다음은요? 10일 이후에 돌아와서 똑같은 짓 하면 또 학폭위 열어야 합니까? 피해 학생은 10일만 세면서 벌벌 떨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징계 모두다 결국 학폭위에서 결정하는거 아닙니까? 담임교사는요? 담임교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결국 학부모들은 담임교사 원망합니다. 아무도 학폭위 위원들 원망하지 않아요. ‘너 때문에 내 아들 인생 조지게 생겼다.’ ‘나중에 이것 때문에 불이익 생기면 가만히 안 있을 줄 알아’ ‘너가 학급운영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냐’...류의 말들,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합니까?”

이같은 의견을 토대로 학폭위를 외부에 보내는 내용의 학폭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법안은 학폭위를 폐지하고,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학교폭력대책기초위원회’로 만들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홍 의원 등은 “학교폭력 사태의 1차적 해결을 학교 밖에 있는 기초위원회가 담당하게 해 더 중립적·객관적·합리적인 처분이 내려질 확률을 높여야 한다”며 “‘채찍 대신 당근’이라는 온정주의적 마무리나 가해학생을 비호하는 돼 동원되는 등 과도한 직무스트레스에 고통 받던 일선 교사들이 교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직무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사들 가운데도 학폭위를 외부기관으로 넘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법적으로 너무 첨예하게 대립하다보니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검찰이 기소하는 것처럼 학교가 학생을 외부에 넘겨야 하는 것인데 피해 학생이 이중고를 겪을 수 있고, 교사는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교육적으로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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