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가 불댕긴 교직개방 논쟁…‘선생님’의 자격은?

이호준·이하늬 기자
7월 22일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전교조 제공

7월 22일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전교조 제공

현 정부가 핵심 교육 혁신사업으로 추진중인 ‘고교학점제’를 둘러싸고 파열음이 잇따르고 있다. 고교 학사개편 작업의 최대 주체인 고등학교 교사들이 고교학점제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내보이면서다. 특히 고교학점제에 필수적인 교원 충원 방식에서 정부와 교원단체가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면서 현장에서는 ‘실패가 예견된 사업’ ‘대통령 공약 실행을 위한 사업’이라는 날선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무자격 기간제교사 충원 불가’를 못박은 교원단체와 정부가 성과없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시행이 2년 앞으로 다가온 고교학점제의 성공 여부도 흐릿하기만 하다.

■“정규직 교원 충원 우선”vs“외부 전문가 투입 불가피”

현재 중학교 2학년인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2023년부터 고교학점제 수업을 듣게 된다. 고교학점제의 경우 대학의 전공과목처럼 공통과목을 듣고, 학생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별해 듣는 제도인만큼 대학입시 제도와의 일치성, 새로운 교과 개설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선제적으로 풀어야할 숙제들이 적지 않다. 예컨데 현재 고교 교육과정에서 소화하기 힘든 인공지능(AI) 과목을 개설해 진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수업 공간과 기구, 교재, 강사진이 확보돼야 한다. 다만 교실과 교재 등을 마련하는 인프라 구축이 일회성 비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위한 재정 지원을 확보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학생들을 가르칠 역량을 가진 양질의 교사들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다. 앞서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교원대 연구진은 고교학점제를 정상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8만8106명의 교사가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현재의 고교 교사 인력만으로는 고교학점제가 불가능하다는 분석으로, 8만8000여명 모두를 정규직 교원으로 충원할 경우 이들의 정년까지 지속적인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정부가 신규 교원 임용에 소극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는 필요시 외부 전문가가 고등학교 교단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박사 학위 이상의 자격을 획득한 전문가에게 현재 고등학교에 개설되지 않은 과목에 한해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돼있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부도, 여당도 강하게 입법 지원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대 교원 직능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총은 “고교 교원의 72%가 고교학점제 2025년 도입에 반대하고, 그 이유로 교사 부족 등 여건 미비를 꼽았는데도 여당에서 전문가라는 미명 하에 교사 자격 없는 자를 기간제교사로 채용하는 법까지 추진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공약 실현을 위한 정부·여당의 일방 행정, 입법 독주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교조에서는 고교학점제가 현 정부의 성과 달성을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전교조 관계자는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과대 선전했다. 모든 학생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다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선전했는데 사실 불가능하다”면서 “교사는 어떤 존재이고 학교라는 공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입장이 다른 만큼 교직개방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토론이 이뤄졌으면 좋을텐데 지금은 포퓰리즘적인 분위기만 있다”고 꼬집었다.

■교원양성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고민 필요

정부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교원단체들의 반발이 공식화되면서 의견수렴을 위한 교원단체 회의체까지 구성됐지만, 벌써부터 “실질적인 기능 없이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회의”(회의 참석자)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교원단체 반발이 학생보다 교사라는 직업의 득실에 지나치게 몰입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사불신’ 저자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교원단체가 인성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교직 개방에 반대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교직 관련) 150학점을 이수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뚜렷한 인성 학습을 했다는 것인지 (일반인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박사 학위를 소지한 대학 강사들도 매 학기 강의평가로 검증을 받는데, ‘인성이 검증 안됐다’는 식의 주장은 (교사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직 개방에 대한 교사들의 반발이 심할수록 오히려 개방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불을 댕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교원단체들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해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있어 왔다”면서 “대학도 수요에 따라서 강사들이 바뀌는 것처럼 고교학점제에서 노동의 유연화는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교원양성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교대나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직이수를 한 사람에게만 학교 교단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국가 고시 형태다. 교육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교사 양성 구조는 군관, 교사(사범대) 육성을 위한 일제 시대의 엘리트 양성 시스템으로 이제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다”며 “교직 이수자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가 고교 교단에서 화학을 가르칠 수 있는 게 보다 상식적이고, 기초 학문 육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고교학점제가 도입될 경우 다양한 과목에 대한 교사가 필요하고, 이들 모두를 교원양성 시스템으로 양성해 낼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현재 직업계 고등학교에 적용중인 ‘산학겸임교사제’를 손질해 일반고에 도입하거나 기존 교원 재교육 등을 통한 교수 충원 방법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수요에 맞춘다’는 고교학점제의 본래 취지를 고려하면 다양성과 전문성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수는 “교육 예산의 70%가 인건비인 상황에서 정규 교원으로 충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교원양성기관이 해줄 수도 없는 일”이라면서 “전문교과란 본래 강사제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교직개방이 아니라 시간강사제 도입으로 교원들과 대화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6개월 정도 교직을 이수하면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에서 시간 강사를 할 사람에 대한 자격기준을 내놓고, 거기에 따른 프로그램을 내놔야 모든 것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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