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주요 과제인데…대선 국면서 안 보이는 ‘연금개혁’ 논의

김향미·민서영 기자
2019년 10월 참여연대가 진행한 국민연금 관련 집담회에서 청년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9년 10월 참여연대가 진행한 국민연금 관련 집담회에서 청년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작성한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최근 화제를 모았다. 국민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주장한 것인데, 정부는 즉각 “국민연금은 법으로 정한 사회보험으로서 수급권자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경연의 지적처럼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2054~2057년쯤 재정이 고갈되고, 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차기 정부에서는 국민연금의 장기적 재정 상황을 점검하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2023년)를 해야 하는 만큼, 대선 정국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선후보들이 ‘연금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있다. 연금개혁은 보험료 인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장 선거에는 ‘표 떨어지는 공약’으로 꼽힌다. 다만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따져볼 때 대선후보들이 ‘차기 정부가 연금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0여년 뒤 재정 고갈”

한경연은 지난 13일 ‘이대로 가다간 90년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받아…연금개혁 시급’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국회예산정책처의 ‘4대 공적연금 장기 재정전망’(2020년 7월) 보고서 내용을 일부 인용했다.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국민연금은 2039년에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된 뒤 2090년에 178조원까지 적자가 증가하고, 적립금은 2055년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2055년에 국민연금 수령 자격이 생기는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자료를 내고 “법에 정한 사회보험으로서 연금을 받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미 적자 상태로 돌아선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현재 국고로 보전해주고 있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연금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다. 복지부는 또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해 종합운영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어 ‘현 체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가정일 뿐이라고도 했다. 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한경연이 국민연금을 못 받을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들었다”며 “보도자료에 사적연금 활성화와 사적연금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를 명시하며 (공적연금 약화·사적연금 강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대부분 보험사를 하나씩은 갖고 있는 재계의 이해관계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연금개혁이 시급한 것은 분명하다. 국회예산정책처뿐만 아니라 정부의 2018년 제4차 재정 추계결과를 봐도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에 최고에 도달한 후 2057년에 바닥을 드러낸다. 저출생·고령화란 인구구조 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있어 이 시기는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국민연금 개혁 쟁점은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소득의 9%를 보험료(직장가입자는 회사와 반반씩, 지역가입자는 전액 본인 부담)로 40년간 납부하면 62세(2033년부터 65세)부터 생애 평균소득의 40%(명목소득대체율)를 숨질 때까지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동안 연금개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1998년 1차, 2007년 2차, 2013년 3차 연금개혁과정을 거쳤다. 보험률은 1988년 3%였으나 이후 5년마다 3%포인트씩 두 차례 올라 1998년 9%가 됐고 이후로는 20년 넘게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소득대체율은 1988년 가입기간 40년 기준으로 70%에 달했지만 1차 연금개혁에서 60%로, 2차 연금개편에서 50%로 낮아졌다.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져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인하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제4차 재정계산 당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보험료율 인상안을 담은 복수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며 돌려보냈다. 이후 정부는 4가지 개혁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1안은 현행 유지, 2안은 현행 유지하되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3안은 소득대체율 45%·보험료율 12%로 인상, 4안은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로 인상 등이었다. 이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연금개혁특위가 설치돼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상은 동시에, 장기적으로 추진한다’는 원칙은 세웠지만 역시 단일안을 만들지는 못한 채 2019년 8월 활동을 종료했다. 이후로 정부 단위에서 연금개혁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시급한 연금개혁을 미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정부 주요 과제인데…대선 국면서 안 보이는 ‘연금개혁’ 논의

일단 전문가와 시민사회도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해선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현 보험료율(9%)은 일본(17.8%), 독일(18.7%), 영국(25.8%), 미국(13.0%), 노르웨이(22.3%)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정부·국회·경사노위 연금특위 및 개별 연구자들의 개혁안들을 보면 초기 보험료율 인상안은 11~13%로 제시돼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험료율을 12%로 인상할 경우, 2021년에 바로 인상하면 적립금 소진 시점이 2063년으로 기준선 대비 8년이 늦춰지지만, 2040년에 인상하면 소진 시점이 2058년이 돼 기준선 대비 3년 늦춰진다”며 “보험료율 인상이 늦어질수록 현 세대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노후소득원’이란 성격상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긴 어렵다는 평가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선 이를 통해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고소득층의 혜택으로 귀결돼 노후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재정 소진 시점을 늦추기 위한 방안으로 가입기간을 늘리는 안(의무가입 연령 상향), 지급 기간을 줄이는 안(수급 개시 연령 연장) 등도 제시되고 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에 노후소득보장 측면에서 연금 구조를 다층화해야 한다는 제언들이 나온다.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기초연금의 적정 규모 유지 및 퇴직연금의 공적 기능 강화 등을 통해 소득계층별로 적절한 노후소득보장을 이룰 수 있도록 연금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후보들 입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구체적인 공약을 내기보다는 ‘연금개혁위원회’와 같은 논의기구를 만들겠다는 의사만 밝히는 수준이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KBS에 출연해 관련 질의에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 연금개혁위원회와 같은 논의 기구를 만들어 가능한 방안을 만들겠다까지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도 지난달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초당적으로 큰 계획을 제시하겠다”면서 “의석 수가 많은 민주당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건을 붙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공무원연금·군인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겠다고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 후보는 지난 11일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는 세금으로 메워지는데, 국민연금을 받을 확률이 줄어들고 공무원연금 적자는 세금으로 메워주면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일리있지만, 연금개혁의 핵심인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방안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지난 6일 MBC에 출연해 “국민에게 솔직하게 국민연금의 재정 구조를 밝히고, 현 세대가 일정하게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을 요청할 생각”이라며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개혁해 노후는 공적연금이 책임질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사진기자단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현재도 의무적으로 5년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하게 돼 있어서, 개혁논의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은 연금개혁과 관련해 아무것도 공약하지 않은 것과 같다”며 “연금개혁의 주제가 다양하지만 핵심은 보험료를 인상할 것인가인데, 대선후보들이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재정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야 책임있는 정치라고 본다”고 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개혁을 하지 않음으로써 개혁 부담이 가중된 측면이 있고, 보험료율을 대폭 인상하는 개혁안을 내야 하는데 이는 큰 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대선후보들이 구체적인 안을 공약한다면 파장이 클 것이라서 현실적으로 공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후보들은 반드시 임기내 개혁하겠다는 공약은 해야 한다”고 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측은 지난 17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필두로 한 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오종헌 사무국장은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는 개혁 논의구조부터 벗어나야 한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건강보험료율을 정하듯 국민연금도 상시적 개혁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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