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신의료기술평가의 대못을 뽑아주세요

박효순 기자

루트로닉의 기타안과용레이저수술기(신의료기술명 : 선택적 망막 치료술)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가 이뤄지면서 크게 주목받은 국내 원천기술이다. 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의 문턱을 넘지 못해 ‘세계 최초’의 기록을 놓치고 말았다.

큐렉소의 네비게이션의료용입체정위기(신의료기술명 : 수술 보조 로봇을 이용한 척추 수술) 역시 주요 척추 유합술 및 고난이도 척추 수술 시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은 국내 원천기술로서 식약처의 허가를 무난히 통과했다. 그런데 신의료기술평가를 못 넘어 국내 시장 진입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 기술은 미국 FDA 허가 후 현지에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보건당국의 신의료기술평가에 ‘가위 눌리고’ 있는 의료기기 업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유사 사례는 매우 많다. 무엇이 문제인가.

의료의 발전은 상당부분 새로운 의료기술을 통해 이뤄진다. 이름하여 신의료기술이다. 보통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신의료기술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수가적용 평가를 거쳐 보건복지부의 고시를 통해 환자들에게(임상) 적용된다.

보건의료연구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캐릭터(기사 특정 내용과 무관함).

보건의료연구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캐릭터(기사 특정 내용과 무관함).

보건복지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200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보건의료원구원(보의연)에서 담당한다. 통상적인 순서는 식약처-심평원-보의연이다. 그런데 이 과정 중 보의연의 최대 심사 기간이 너무 길어 신의료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몇 년 전부터는 식약처, 심평원, 보의연의 세가지 허가 및 평가 과정을 신의료기술 상당수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런 관행이 15년 이상 지속되면서 ‘신의료기술평가 없이는 신의료기술을 시술할 수 없다’는 인식이 보건의료계에 뿌리내렸다. 환자나 의사들은 보의연의 신의료기술평가 없이는 해당 최신·첨단의료 시술을 받을 수 없고, 만약 받더라도 실손의료비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신의료기술평가제를 허가제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이라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의료법 제45조의3은, ‘신의료기술이라 함은 새로이 개발된 의료기술로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라고 규정한다. ‘평가한’이 아니라 ‘평가할’인 것이다. 즉 신의료기술은 신의료기술평가 전의 의료기술라는 점이 법 규정에 명확이 나와 있다. 그런데 보의연과 심평원,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평가한 의료기술’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의료계와 관련 업계에 안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다르다. 대표적으로 2019년 초음파유도하의 진공보조장치를 이용한 유방양성병변절제술(맘모톰)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자, KB손해보험 등은 환자들이 청구한 맘모톰절제술에 관한 실손의료비보험금을 지급을 거절했다. 그런데 2020년 5월 법원은 “초음파유도하의 진공보조장치를 이용한 유방양성병변절제술(맘모톰)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신의료기술로 승인되기 전에 시행된 경우에도 보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헌법 제37조제2항은 ‘기본권은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신의료기술의 시술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어야만 신의료기술의 시술을 금지할 수 있다고 국내 로펌 관계자는 밝혔다. 즉 신의료기술평가제를 도입한 의료법에는 ‘신의료기술평가의 결과를 공표할 수 있다’고만 규정한다. 그리고 ‘평가를 받지 아니한 신의료기술에 관한 광고’만 금지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에 관한 입법이유도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등에 관한 평가를 하도록 하고, 그 평가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이라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신의료기술에 관한 시술을 금지하고 있지 않는다.

식약처에서 의료기기의 안전성·유효성을 인정한 이상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의료기기 제품의 안전에 관한 사항을 식약처의 권한과 책임 하에 둔 의료기기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더욱이 신의료기술평가는 신청인이 제출한 임상시험 자료를 넘어 전 세계에 출간된 관련 임상문헌들을 체계적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단순히 관련 제품의 안전성·유효성의 차원을 넘어 해당 의료기술의 비용효과성까지 판단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 및 의료기기 업계는 신의료기술의 선사용·후신의료기술평가를 줄기차게 강력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의료기기가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다면 일단 시장에 진입하여 비급여 등으로 사용되면서 안전성·유효성에 관한 데이터를 충분히 쌓은 후에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 해당 의료기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제도운영 방법이라는 ‘합리적 주장’에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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