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 “30년전보다 야만적인 현실 비통함에 숨막혀”

글 이영경·사진 김세구기자

‘난쏘공’ 작가 조세희씨… 경찰 강제진압 비판

“어제(20일) 돌아가신 6명은 마지막 순간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들은 뜨거움, 절망,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이명박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도 알아야 합니다. 난쏘공이 출간된 지 30주년 됐는데, 그 30년 동안 달라진 게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21일 저녁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현장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조세희 작가.

21일 저녁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현장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조세희 작가.

엄혹한 시대를 온몸으로 앓으며 철거민과 도시빈민의 삶을 그려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씨(67)는 이번 용산 철거민 참사 소식을 듣고 또 다시 앓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밤에 아파서 잠을 못 잤습니다. 약과 수면제를 먹고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용산 철거민 사망 참사 보도가 나오더라고요. 순간 그냥 숨이 콱 막혔습니다. 어지럼증이 와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참사 이야기를 하면 응급실로 실려갈 것 같아 딴 얘기만 하고 돌아왔어요. 그래도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1978년 출간된 소설 속 난장이는 강제철거 속에 집과 희망을 잃고 굴뚝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0년 후 21세기 대한민국 철거민은 옥상에서 농성을 하다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용산 철거민 참사 소식에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을 듯한 조씨를 21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 그의 자택 근처에서 만났다. 조씨는 30년 전 소설 속 낙원구 행복동과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 없는 ‘여전한 현실’ 앞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 진압에 들어간 김 경찰청장 내정자의 경찰부대는 21세기의 경찰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의 관군과 같습니다. 기근 때문에 농민들이 먹고 살게 없을 때 성안의 곡식을 먹기 위해 쳐들어가는 겁니다. 관군은 일본군·중국군 등 외국 군대가 들어갔을 때는 백전백패했습니다. 동족을 상대로 했을 때는 백전백승 했습니다. 어제의 경찰은 조선시대 어느날 삼지창으로 동족을 찔렀던 조선시대의 관군과 똑같습니다.”

조씨는 6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경찰의 강제진압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쏟아냈다. “30년 전엔 그래도 경찰도 철거반원도 인간성은 있었는데, 어제 진압작전을 보면서 그런 것마저 없어진 것 같았다”며 “진압방법이 더욱 잔인하고 야만적으로 변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찰은 80년 5·18의 한국 특전사 병사들처럼 자기 임무를 유기했다”면서 “군대나 경찰은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 임무를 유기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난쏘공>은 암울했던 70년대 독재정권 치하의 고도성장의 그늘을 난쟁이 가족들을 통해 밀도있게 그려낸 조씨의 대표작. 해를 거듭해 애독되며 100만부 넘게 팔렸으며 지난해 출간 30주년을 맞았다.

그는 “한국의 뉴타운도 집 문제고 <난쏘공>도 집 문제”라며 “그러나 한국이 부족한 것은 집이 아니라 지혜”라고 꼬집었다. 또 “우선 한국 경제를 위해서 희생당하는 가난뱅이를 그냥 죽으라고 놔두는 것은 학살과 같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깜깜한 밀림 속을 엉겅퀴에 찔리면서 피 흘리며 가고 있다”고 현실을 비유하는 작가는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인들과 달리 토론을 통해 대운하나 잘못돼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써야 할 것을 쓰지 못한다”며 최근 정권의 정책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조씨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송경동 시인 등과 함께 용산 참사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자리를 일어섰다. “옛날 군부독재 시대에는 민간정권 들어서고 다들 곧 낙원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낙원의 첫 세대가 됐어야 합니다. 그런데, 낙원이 좋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그. 조씨는 “낙원이 아닌 아주 불행한 시대에 떨어져 있다”며 허망한 눈초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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