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A형 많아 조선인보다 우월하다?

김재중 기자

1920년대 초 광범위한 조사… 일본인 우월성 ‘왜곡’에 이용

한국인의 혈액형 분류가 일제시대인 1920년대 초부터 광범위하게 실시됐고 혈액형 연구 결과는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고 왜곡하는 작업에 이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는 대한의사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피의 인종주의와 식민지의학-경성제대 법의학교실의 혈액형 인류학’ 논문에서 “제국 일본의 혈액형 연구가 식민지인들에 대한 인종적 차별과 위계를 정당화하는 유력한 과학적 도구로 작동했다”고 밝혔다.

1901년 오스트리아 면역학자 란트슈타이너가 처음 발견한 혈액형은 독일의 힐슈펠트에 의해 인종 간 특성과 우열을 나누는 지표로 오용되기 시작했다. 힐슈펠트는 1차 대전 당시 유럽과 아프리카 16개국 8500여명의 혈액형을 분류한 뒤 ‘B형에 비해 A형이 진화된 형태이며, 백인종일수록 A형 빈도가 높고 유색인종일수록 B형 빈도가 높다’는 가설을 세웠다. 힐슈펠트는 A형인 사람수를 B형인 사람수로 나눈 값을 ‘생화학적 인종계수’로도 제시했다. 그의 연구에서는 유럽인의 인종계수가 높게, 유색인종이 낮게 나타났다. 힐슈펠트는 인종계수 2.0 이상을 ‘유럽형’, 1.3 미만을 ‘아시아·아프리카형’, 2.0과 1.3 사이를 ‘중간형’이라고 이름 붙였다. 혈액형 분포의 차이를 인종적 우열이나 민족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규정한 혈액형 인종학은 이후 통계적으로 과학적으로도 ‘난센스’로 증명됐다.

그러나 제국 일본 의료진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조선인의 혈액형 분류 결과는 1922년 처음 보고됐다. 규슈제대 법의학교실의 후카마치는 1922년 서울과 평양에서 조선인 혈액형 사례 363건, 중국 동북 3성에서 만주인 혈액형 사례 199건을 수집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조선인의 인종계수는 1.16, 만주인은 0.75로 아시아·아프리카형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키리하라와 그의 제자 백인제는 조선총독부의원의 외래환자, 병원직원, 경성감옥 수인 등을 대상으로 재조선 일본인 502명, 조선인 1167명의 혈액형을 조사해 1922년 7월 발표하고, 충북·전남의 조선인 사례를 보강해 12월에 다시 발표했다. 이들은 재조선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로서 중간형에 속하지만 조선인은 0.83~1.41로 아시아·아프리카형에 속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키리하라와 백인제는 조선 남부로 갈수록 인종계수가 높아진다면서 일본 민족과 조선 민족 사이의 역사적·언어적 유사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제국 일본은 혈액형 분포상 서양인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거부했지만 반대로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해선 혈액형 인종학을 이용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정 교수는 “일제 의료진의 연구는 당시 식민사관 연구자의 역사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며 “3·1운동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백인제가 (논문에서) 혈액형 인종과학의 과학적 권위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백인제는 백병원의 창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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