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돕다 탈레반 표적 됐는데… 한국 정부, 신변보호 않고 버려”

박순봉 기자

아프간 PRT 근무했던 통역사, 한국 건너와 난민신청

2011년 초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길거리. 내전으로 황폐해진 아프간의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와 있는 한국 지방재건팀(PRT)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압둘 나비(당시 26세·가명)는 출근길에 흉기로 심하게 훼손된 한 남자의 버려진 시신을 목격했다. 탈레반의 로켓 공격과 자살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보니 시신을 보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시신의 얼굴을 본 나비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한국 PRT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의사였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전날 밤 병원을 습격해 의사를 살해한 뒤 길에 버렸다. 온몸의 상처는 ‘외세에 협조한 배신자’에 대한 처형의 의미다. 3개월 전 그의 결혼을 축하해주기도 했다. ‘다음 차례는 나’라는 공포와 함께 죽음이 떠올랐다.

▲ 안전보장 믿고 업무 지원… 테러 위협에 불안한 나날
보호 요청마저 거절 당해

나비의 공포는 2011년 6월 구체화됐다. 카불에 주둔하던 유럽연합군은 한국 PRT에 녹취록과 함께 “나비를 잘 보호하라”는 말을 전했다. 녹취록에는 “나비를 납치하고, 한국 정부에 돈을 요구한다” “돈을 받지 못하면 살해한다” 등 탈레반의 계획이 담겨 있었다.

나비는 2010년 10월부터 한국 PRT 대표의 통역사로 근무했다. 통역사지만 방송 등 언론매체 인터뷰를 담당하는 대변인 역할과 정치적 조언, 정보 수집 등 다양한 일을 맡았다. 공을 인정받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나비는 한국 PRT에서는 가장 많이 노출돼 있었고,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나비는 한국대사관에 머물고, 매일 다른 차를 타고, 출근시간을 바꿨다. 위협 조짐이 있는 날은 출근하지 않았다. 테러 공포에 잠을 못 자는 날도 많았다. 고향에는 자신이 돌봐야 하는 8명의 동생들이 있었지만 만날 수도 없었다.

나비가 한국 PRT에서 일하게 된 것은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 때문이다. PRT에서 일하기 전에는 아프간을 돕기 위해 온 한국 비정부기구(NGO)에서 2년간 일했다.

이 NGO 대표가 나비에게 한국 PRT에서 일할 것을 추천했다. 당시 독일, 미국 등 다른 나라 PRT에서 일하는 대학 동창들은 나비를 말렸다. 이 나라들이 한국보다 확실히 안전을 보장해줄 거라는 게 이유였다. 나비는 한국을 선택했다. 나비는 한국 사람들이 ‘예의가 바르고, 의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PRT에서 일하며 폐허가 된 마을에 학교를 지어주고, 다리를 만들어줄 때 나비는 행복했다.

하지만 나비는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아프간인들을 보호하지 않고 2014년 말 완전 철수할 예정인 한국에 분노했다.

2012년 말 나비는 한국 PRT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현지에서 고용한 이들에 대한 이주 등의 절차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비는 한국 PRT를 그만두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석사 과정을 지원해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지난달 난민신청을 했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공익법센터 ‘어필’ 사무실에서 만난 나비는 “다른 나라는 PRT에서 일한 청소부, 요리사 등까지 모두 자국으로 데려와 국적을 주고 살 곳과 직업을 마련해주는데 한국만 유일하게 아무런 보호대책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한국 정부를 믿고 일하겠느냐”고 말했다.

아프간 한국 PRT에 고용된 현지인은 통역과 엔지니어, 의사, 교사, 조리사, 청소부 등 50여명에 이른다.

▲ 지방재건팀(PRT)

선진국들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불안정한 국가의 재건을 돕기 위해 파견하는 조직이다. 한국도 2010년 4월부터 아프간에 PRT(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를 파견해 병원·학교·다리 건설, 교육·직원 훈련 등 내전으로 파괴된 지역의 재건을 지원했다. 2014년 말 미군 철수와 함께 한국 PRT도 철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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