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당 후려치기’ 못하게 허용 조건 엄격 규정

김상범 기자

고용노동부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 살펴보니

출퇴근 체크 불가능한 경우만…노동자 합의도 필수

노동부 “재량·간주근로시간제로 대체하도록 지도”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의 골자는 포괄임금이라는 명목의 ‘수당 후려치기’를 광범위하게 규제해, 기업들이 직원에게서 헐값에 장시간 노동을 끌어내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지침은 포괄임금제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임을 명시하고 허용 조건을 엄격히 규정했다.

지침에 따르면 포괄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는 것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한다. 노동시간 관리가 복잡해 기업들이 꺼리는 경우, 혹은 임금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한 경우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출퇴근시간을 체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경우만을 뜻한다. 지침대로라면 그런 직종은 극히 제한돼 있다. 사업장 밖에서, 관리자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재량에 따라 일하는 경우다. 다만 사업장 밖에 있더라도 관리자가 함께 있거나 출장 뒤 사업장에 돌아오는 경우는 빠진다. 예를 들면 체증 때문에 운행 시간이 들쑥날쑥한 관광버스 기사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사례에 속한다. 하지만 배차표에 운행 종료시간이 정해져 있거나 운행기록장치로 근무시간을 잴 수 있다면 포괄임금제를 적용할 수 없다.

업무가 단속적이거나 대기시간이 긴 업종도 있다. 그러나 지침은 “감시·단속적 업무라도 늘 긴장을 유지해야 하거나 다른 업무를 반복해서 수행·겸직하는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비실을 비웠어도 택배를 받거나 쓰레기장을 치우는 경비원, 잠자는 시간에도 환자 상태에 유의해야 하는 요양보호사에게는 대기시간도 노동시간이라고 본 대법원 판례가 있다.

지침은 특히 “일반 사무직에는 포괄임금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관리자의 통제 아래 일을 하고 출퇴근과 쉬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사무직 41.3%가 포괄임금을 받는다. 일한 만큼 초과수당을 받는 곳은 32.5%에 그쳤다. 출퇴근 관리기기를 설치해 노동시간을 잴 수 있는데도 기업들이 근태관리를 방기하면서 야근이 일상이 된 것이다.

조건은 또 있다. 노동자가 포괄임금제의 성격을 충분히 알고 명시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그동안 회사로부터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 없이 포괄임금제가 뭔지도 모른 채 월급을 받다가 뒤늦게 체불 수당을 청구하는 이들이 많았다. 노동자 합의와 계약서 명시라는 두 조건을 지켜야만 연장·야간·휴일수당과 주휴수당이 포괄임금에 포함된 것으로 인정한다고 지침은 설명했다.

요건을 지키지 못한 회사는 일한 시간대로 수당을 줘야 한다. 기본급과 근무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월 200만원만 줘온 회사라면, 노동자가 한 달에 20시간 연장근로를 했을 때 밀린 수당은 28만7081원이다. 통상시급 9570원에, 20시간에 따른 연장근로 할증률(1.5배)을 적용한 액수다. 야근이 잦은 직종에선 노사 합의로 매달 일정 시간을 연장근로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일감이 적어 일을 덜 했어도 약속한 시간만큼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도 없는 제도다.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것은 재량·간주근로시간제다.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영업사원이나 재량껏 근무하는 디자이너, 연구원 등은 노사 합의로 일정 시간을 일한 것으로 치게끔 했다. 이렇게 하려면 근로자 대표와 반드시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 도입 요건과 절차가 훨씬 엄격하다는 뜻이다. 노동부는 포괄임금제를 제한하는 대신 재량·간주근로시간제도를 활용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이달 중 지침을 공식 발표한다. 권혁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싼값에 연장·야간근로를 시키기 위해 남용돼온 포괄임금제를 바로잡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노동 시간과 장소가 유연해지고 개인 재량도 커지는 추세인 만큼 합리적이고 정당한 새로운 임금체계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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