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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업장’이란 이유로 노동법 배제…국민의힘 “전면적용” 입장 변화에 국회 논의 이어질까

이혜리 기자
5인 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차별 적용 반대를 비판하며 국회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5인 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차별 적용 반대를 비판하며 국회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국민의힘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방안을 대선 노동정책 중 하나로 밝히면서 노동계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5인 미만 차별 폐지’ 운동을 전개해온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정기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를 촉구하는 행동에 돌입했다.

발단은 지난 24일 한국노총이 연 대선 정책 토론회에 국민의힘 노동정책 담당으로 참석한 임이자 의원의 발표문이었다. 임 의원은 발표문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임 의원은 “준비 없이 급격하게 시행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사업주 부담을 완화할 입법적·정책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위원회를 구성해 최저임금 인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를 위해 정부가 해야할 역할을 포함해 사회적 대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쪽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반면 국민의힘 쪽에선 소극적이었던 상황에서 임 의원이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는 오랫동안 비판 받아온 문제다. 근로기준법 제11조1항은 이 법을 상시적으로 5명 이상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시행령으로 정한 강제노동 금지, 근로계약, 임금 등 규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5인 미만 사업장은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배제하되, 예외적으로 일부 규정만 적용하는 구조다. 1974년 개정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을 전면 배제하던 것에서, 1989년 일부만 배제하는 것으로 바뀐 뒤 현재까지 30년 넘게 이같은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부당해고와 구제신청, 근로시간, 주 12시간 연장 한도, 연장·휴일·야간 가산수당 적용, 연차휴가 관련 규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35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사업장 수로 따지면 60% 가량이, 노동자 수로 따지면 전체 임금 노동자의 20%가 5인 미만이다.

노동계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지 않는 게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해왔다.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게 근로기준법인데, 더 열악한 노동환경의 5인 미만 사업장에 오히려 법을 적용하지 않아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한 것은 이 사업장들의 사업주가 노동자 보호를 위한 재정이나 관리 능력이 없다고 보고 편의를 봐준 것인데, 구체적인 능력의 여하를 따지지 않고 단순히 노동자 수(사업장 규모)만을 기준으로 삼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사업주의 능력은 경우마다 다르고, 이미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5인 미만 사업장도 있는 현실을 보면 일괄적으로 법이 사용자 책임을 면제해주는 게 부적절하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08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차별적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보호를 통한 복지의 실현과 생존권 보호를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최저임금이나 고용·산재보험 등 다른 노동관계법은 노동자 수와 상관없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는데, 특별히 5인 미만 사업장만 근로기준법 적용의 예외로 두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한 입법례는 주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81개 단체 대표들이 지난 9월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 폐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81개 단체 대표들이 지난 9월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 폐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고용노동 분야의 적폐청산을 담당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2018년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노동부에 권고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이 어렵다면 시행령 개정으로도 확대 적용은 일단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현재까지 위원회 권고의 취지가 반영된 시행령 개정은 하지 않았다. 안경덕 노동부 장관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는 “이제는 검토해야 될 때가 됐다”고 했지만,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사회적 공감을 얻은 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소상공인연합회 등 영세사업자들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경영과 일자리 창출에 치명적인 위협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는 게 변수다. 이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소상공인의 목숨줄을 조이는 악법’이라고 보고 있다.

노동계는 임 의원 발표문 내용이 알려진 뒤 잇따라 성명·논평을 내고 국회 논의와 대선 후보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81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인 ‘5인 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다음달 본회의에 상정하라는 성명을 지난 25일 냈다. 이들은 “사실상 거의 모든 정당과 국회의원이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동의하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논의를 미룰 이유가 없다. 여야 간에 꼬인 매듭이 문제라면, 당 운영과 법 개정을 관장한다고 천명한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직접 나서라”라고 했다.

5인 미만 차별 폐지 운동에 앞장서온 권리찾기유니온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 심사소위는 17개 상임위원회 중 유일하게 5개월 째 휴업 중”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차별 확산의 주범으로 낙인찍히지 않겠다면 누구든 먼저 응답하라”고 했다. 다음달 1일에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직접 서울 종로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에서부터 영등포구 이재명 캠프까지 행진하고, 2일에는 5인 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이 국회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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