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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확진 직원 ‘유급휴가→무급휴가’ 지침 바꿨다…대기업 지정 앞뒀다더니

박하얀 기자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측이 지난 23일 공지한 ‘코로나19 확진자 지원 안내’ 공지. 쿠팡은 3월24일부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에게 무급휴가 5일을 부여하고 회사 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A씨 제공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측이 지난 23일 공지한 ‘코로나19 확진자 지원 안내’ 공지. 쿠팡은 3월24일부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에게 무급휴가 5일을 부여하고 회사 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A씨 제공

경기도의 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계약직원 A씨는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자 “무급휴가로 처리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코로나 확진 시 유급휴가 5일을 부여하던 기존 지침이 갑자기 ‘무급휴가’로 바뀐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됐다. A씨는 “아픈 것도 서러운데, 유급휴가 처리를 안 해준다고 하니 좀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나오고 있는데, 몇몇 센터들은 확진자 규모와 근무 시간 등의 정보를 생략한 채 공지하고 있어 내부 불안이 큰 상황이다. 회사와 집만 다녔는데 물류센터에서 확진됐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7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쿠팡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직원에게 ‘무급휴가’를 부여하기로 내부 정책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이 지난 23일 직원들에게 공지한 안내문에는 24일부터 회사 정책을 변경해 코로나19에 확진된 직원에게 무급휴가를 최대 5일 부여하고 이후에는 개인 연차를 소진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쿠팡 측은 “(확진 판정을 받는 사람은) 일괄 무급휴가를 사용한다”고 밝히며 “(사업주에 대한) 정부의 코로나 격리자 유급휴가비 지원이 중단된 데 따른 방침”이라고 밝혔다.

쿠팡의 이 같은 조치는 정부가 유급휴가를 제공한 사업주에게 비용을 지원하는 대상에서 ‘대기업·중견기업’을 제외한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여 만에 단행됐다. 지난 16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가 발표한 ‘입원·격리자 유급휴가비용 지원사업 안내’ 개편안은 사업주의 신청에 따라 정부가 유급휴가 비용(1일당 4만5000원, 최대 5일)을 지원하는 사업 대상에서 대기업·중견기업을 제외했다.

정부는 쿠팡과 같이 고용·사업 규모가 큰 기업은 노동자에게 유급휴가를 부여할 경제적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입장이다. 중대본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경영 여건이 좋은 대기업·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사업장 내 감염 방지와 근로자 복지 차원에서 자율적 협조를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은 입원 또는 격리 기간 중인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것을 ‘사업주의 협조 의무’로 규정(41조의2)해 권고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쿠팡은 확진 직원들에 대한 근무지침을 ‘무급휴가’로 변경하면서 일종의 보상으로 회사 차원의 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부 반응은 싸늘하다. 특히 경제 사정이 곤란한 물류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계 공백 등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피치 못해 걸린 감염병 때문에 닷새를 쉬어야 하는 대신 회사로부터 받게 되는 돈은 하루치 임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측은 정부에 생활지원금 10만원을 신청해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회사가 생색낼 일도 아닌 데다 또 하루치에 불과하다.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센터 분회장은 “회사에서 지원금 10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기존 유급휴가보다 보장되는 금액 자체가 적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사실상 대기업 반열에 오른 쿠팡이 중소기업·영세 사업체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노동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연매출 22조원을 넘어선 쿠팡은 오는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정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에 확진된 노동자에게 무급휴가를 쓰도록 종용한다는 지적은 그간 중소기업과 5인 미만 사업장 등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대기업·중견기업들은 단체협약 등으로 유급병가를 보장하고 있고, 특히 비정규직의 코로나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대기업도 많다”며 쿠팡의 조치를 비판했다. 박 위원은 “특히 쿠팡처럼 노동자 수가 많은 기업이 유급휴가를 못 쓰게 하면 (노동자들이) 임금 감소를 우려해 감염 사실을 속이고 출근할 수 있어 집단감염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때그때 예산에 맞춰 적용되는 정부의 ‘고무줄 정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권남표 노무사는 “재난에 따른 소득 감소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 있는 만큼 일하다가 아픈 모든 사람의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상병수당 제도를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확진자가 늘어가는데 정부의 유급휴가 지원금은 오히려 대폭 줄었다”며 “고용노동부가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아 일터의 약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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