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산업안전’ 핵심협약으로 격상 추진…윤석열 정부 어떤 태도 취할까

이혜리 기자
평택항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 이선호씨 추모 움직임이 이어지던 지난해 5월1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일하다 죽지않게’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준헌 기자

평택항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 이선호씨 추모 움직임이 이어지던 지난해 5월1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일하다 죽지않게’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준헌 기자

국제노동기구(ILO)가 ‘산업안전보건(Safety and health at work)’을 노동기본권으로 선언하는 방안을 오는 6월 총회에서 논의한다. 이는 일터에서의 안전과 건강을 전세계 노동자가 두루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악의 산재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한국의 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가 심각한 상황에서 오는 5월 출범할 윤석열 차기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ILO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오는 6월 110차 총회에 산업안전보건을 노동기본권으로 선언하는 방안을 상정해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핵심협약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

ILO는 1919년 설립된 유엔(UN) 산하 노동 분야 전문 국제기구로 각국 정부와 노동계·경영계가 참여한다. 1998년 노동기본권 선언을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4개 분야를 핵심협약(기본협약)으로 정했다. 현재까지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차별 금지, 아동노동 금지가 핵심협약 분야인데 산업안전보건을 노동기본권 선언에 명시하고 핵심협약에 추가하겠다는 게 ILO의 검토 내용이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이에 대해 “노동안전보건을 핵심협약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를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한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성장과 이윤만 앞세우기보다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보호에 노사정이 힘써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 배경엔 전세계적으로 충격을 준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건물 붕괴 같은 사고가 있다. 의류공장이 입주해있던 건물이 무너져 노동자 1143명 사망한 참사다. 이후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ILO는 2019년 100주년 선언문에서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은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언급했다.

산업안전보건이 핵심협약이 될 경우 포함될 수 있는 구체적인 협약으로는 155호 산업안전보건 협약과 161호 산업보건서비스 협약, 187호 산업안전보건 증진체계 협약이 거론된다. 한국은 155호와 187호는 비준했고 161호는 비준하지 않았다. 155호와 187호는 국가가 노사 대표와 협의해 노동환경의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등 산업안전보건과 작업환경에 관한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161호는 다양한 보건전문가로 구성된 기구 설치, 노동자의 건강 모니터링, 위험성 평가와 예방 조치가 그 내용이다. 오상호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핵심협약으로 격상되면) 근로자들의 보호 수준이 높아지고, 국제적인 산업안전보건의 표준을 한국이 못 따라가고 있던 부분이 개선될 수 있다”며 “자발적으로 위험을 평가하고 개선하는 노사 협의체 설치에 관한 산업안전보건법상 기준 완화나 별도의 조직을 설치하는 방안 등 어떤 식으로 보완할지 논의하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했다.

155호와 187호가 핵심협약으로 정해진다면 한국은 두 건은 이미 비준했기 때문에 새로운 의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161호가 포함된다면 새로 비준 요구를 받을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중요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협약 이행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게 이뤄지고, 노동계는 제대로 된 산재 대책을 시행하라고 정부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ILO는 회원국이 핵심협약 이행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하라고 규정한다.

다만 산업안전보건의 핵심협약 격상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기업의 비용 지출이 필요한데다가,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열악한 개발도상국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안전보건 협약은 즉각적인 비용 발생이 예견되기 때문에 경제 발전 속도가 각기 다른 회원국들 입장에서 부담스럽게 여길 수 있다”며 “2019년 100주년 선언 때 사용자 측과 개발도상국들 반발로 (산업안전보건 관련) 문구가 완화됐는데,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고 논의가 무르익어 (실제 격상될지 여부는) 총회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4월 한국이 핵심협약 3건을 추가 비준하고,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 이슈가 실종된 데다가,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을 옥죈다며 개정을 주장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의 ILO 총회 핵심협약 격상에 대해 정부가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도 관심이다. 류 국장은 “국내에서 산업안전이 큰 사회적 이슈였던 만큼 한국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추가 비준한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2개 분야의 협약 3건(29호, 87호, 98호)은 다음달 20일 발효된다. 노동계에서는 추가 비준에 따라 국회가 개정한 노동조합법 등이 노동3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며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윤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ILO 핵심협약의 원칙에 따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노동3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새 정부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