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금칙어··· 매장서 ‘최저임금 인상’ ‘레즈비언·게이’는 못 쓴다?

이혜리 기자
지난 1월7일 서울 중구 스타벅스 프레스센터점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월7일 서울 중구 스타벅스 프레스센터점의 모습. 연합뉴스

“경향신문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스타벅스에는 ‘콜 마이 네임’이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고객이 닉네임을 정해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해놓으면 앱으로 주문(사이렌 오더)했을 때 매장에서 직원이 닉네임을 부르며 음료를 줍니다. 그런데 이 닉네임에도 스타벅스가 정한 ‘금칙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기자가 지난 3일 스타벅스 앱에서 ‘최저임금인상’을 닉네임으로 입력해봤습니다. 곧바로 “사용하실 수 없는 닉네임”이라고 뜹니다. ‘비정규직철폐’는 어떨까요? 이것도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옵니다. ‘스타벅스노조’, ‘스벅노동조합’도 등록 불가였습니다.

노동 현안이나 노동조합 관련 단어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도 닉네임으로 등록할 수 없다고 나왔습니다.

■특정 단어 닉네임 사용 제한…왜?

왜 특정 단어들은 닉네임 등록이 안 되는지 그 이유와 기준을 찾아봤습니다. 스타벅스 앱에는 닉네임 사용 제한의 사유로 4가지를 규정합니다.

①미풍양속 및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부적절한 표현 ②욕설·음란성·혐오성 단어나 비속어를 사용하여 타인을 직접적으로 비방하는 표현 ③영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표현 ④기타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입니다. 3번 사유에 대한 예시로는 ‘라떼 시키신 분’, ‘매장 내 모든 분’과 같이 다른 고객에게 혼란을 주는 단어, ‘왕밤빵’ ‘우루쿵쿠우웅’과 같이 직원이 부르기 어려운 단어를 들었습니다. ‘최저임금인상’과 ‘레즈비언·게이’ 같은 단어들이 이 중 어디에 해당하는 것인지 바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스타벅스에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스타벅스는 아래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닉네임은 친근하고 편안한 소통을 위한 고객과 파트너간의 호칭 문화로, 매장 내 호칭 외에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문의주신 호칭들(최저임금인상·비정규직철폐·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은 본인 닉네임으로 활용하기에 본래 의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돼 사용 제한으로 적용됐을 뿐,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다른 목적’이라함은 사회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면서 스타벅스는 “사용 제한 설정은 매장 이용 고객의 불편과 이해당사자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 영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표현에 대해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집회나 시위를 벌이는 것이 아니고 단지 닉네임 서비스가 있어서 닉네임을 등록했을 뿐인데 타인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게 되는 것일까요?

또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최저임금인상’은 닉네임으로 등록되지 않지만 ‘최저임금인하’와 ‘최저임금동결’, ‘최저시급인상’은 등록이 됩니다. ‘스타벅스노조’와 ‘스벅노동조합’은 등록이 안 되지만, ‘스벅노조응원’은 등록이 됩니다. ‘게이’는 등록이 안되는데 ‘이성애자’, ‘게이화이팅’은 등록이 됩니다.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에서 ‘최저임금인상’과 ‘비정규직철폐’로 닉네임을 입력하니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온 캡쳐 화면.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에서 ‘최저임금인상’과 ‘비정규직철폐’로 닉네임을 입력하니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온 캡쳐 화면.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에서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로 닉네임을 입력하니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온 캡쳐 화면.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에서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로 닉네임을 입력하니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온 캡쳐 화면.

■‘최저임금인상’은 안되고 ‘인하’는 되고?

이 문제를 발견한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스타벅스가 의도적으로 특정 단어를 금칙어 설정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오 실장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적) 단어를 막아놓은 것 같다”며 “아니라면 알고리즘으로 처리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스타벅스에 금칙어 선정을 사람이 하는 것인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하는 것인지 문의했지만 스타벅스는 이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타벅스 측은 고객이 등록한 적이 있는 단어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을 통해 금칙어 설정을 하지만 고객이 등록한 적이 없는 단어는 금칙어 설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스타벅스가 특정 단어를 등록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은 그 자체로 혐오와 차별적 인식을 반영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욕설이나 인격모독, 비하적 단어는 닉네임으로 등록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최저임금인상’이나 ‘레즈비언’과 같은 단어는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표의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호칭하는 단어부터도 굉장히 문제가 있다거나, 부르기 껄끄럽다고 생각되는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는 고객과 파트너가 소통하는 데 있어서 문제적 단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잖아요. 미국에서 레즈비언·게이를 부를 수 없도록 했다면 직원 교육을 하고 해당 지점을 폐쇄할 정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요? 글로벌 기업인 스타벅스가 한국에선 앱에 입력도 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다고 보여집니다.”

국회에 발의돼있는 차별금지법안(장혜영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을 보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보고 금지하는데 여기에는 ‘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도 포함됩니다. 스타벅스의 ‘콜 마이 네임’도 하나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고객이 서비스 이용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당한다면 차별로 다퉈볼 여지가 있습니다.

지난해 12월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 있는 커피 체인 스타벅스 매장의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노조결성 찬반투표 개표를 지켜본 뒤 찬성 측이 승리하자 환호하고 있다. 미 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이날 찬반투표에서 찬성 19명, 반대 8명으로 각각 집계됐다고 밝혔다. NLRB가 투표 결과를 승인하면 스타벅스가 미국 내에 직접 소유한 매장 9000곳 가운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노조가 생긴다. 스타벅스는 50년 동안 사실상 무노조 경영을 해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 있는 커피 체인 스타벅스 매장의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노조결성 찬반투표 개표를 지켜본 뒤 찬성 측이 승리하자 환호하고 있다. 미 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이날 찬반투표에서 찬성 19명, 반대 8명으로 각각 집계됐다고 밝혔다. NLRB가 투표 결과를 승인하면 스타벅스가 미국 내에 직접 소유한 매장 9000곳 가운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노조가 생긴다. 스타벅스는 50년 동안 사실상 무노조 경영을 해왔다. 로이터·연합뉴스

22년 만에 첫 단체행동에 나선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이 지난해 10월7일 국내 1호점인 서울 서대문구 이대R점 앞에서 트럭시위를 하고 있다. 스타벅스 파트너 총 3인으로 구성된 트럭시위 주최 측은 “지난 몇 년 간 부족한 현장 인력으로 회사를 운영해오며 파트너들이 소모품 취급당한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22년 만에 첫 단체행동에 나선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이 지난해 10월7일 국내 1호점인 서울 서대문구 이대R점 앞에서 트럭시위를 하고 있다. 스타벅스 파트너 총 3인으로 구성된 트럭시위 주최 측은 “지난 몇 년 간 부족한 현장 인력으로 회사를 운영해오며 파트너들이 소모품 취급당한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스타벅스에서 ‘노동조합’ 말하기

스타벅스 매장에서 특정 단어를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미국 스타벅스에서 확산되고 있는 노동조합 설립 운동과도 연결됩니다. 닉네임으로 불리는 고객의 다른 한편에 닉네임을 부르는 ‘스타벅스 노동자’가 있는데요. 시민들은 ‘union yes’ ‘union strong’ 이름으로 음료를 주문하며 노조 지지 의사를 표현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3일 ‘모어 퍼펙트 유니온(More Perfect Union)’이라는 단체가 트위터에 스타벅스가 고객이 ‘union’ ‘workers united’ 등 노동조합을 의미하는 이름을 사용하면 이름을 부르지 말고 음료만 부르라고 지시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미국 스타벅스는 노동조합 설립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0월 스타벅스 직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트럭시위를 벌였는데 노조 설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 실장은 ‘최저임금인상’, ‘비정규직철폐’와 같은 단어가 스타벅스 매장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각자의 구호를 닉네임으로 등록해 스타벅스 매장에서 불려지는 운동을 하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200~300군데에서 노조 결성 투표를 진행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이긴 곳도 40~50군데가 됩니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문화 속에 노동자 권리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제서야 (노동자들이) 뚫고 올라오고 있거든요. 한국에선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최저시급인상님,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되게 수줍어해요. 매장에서 그런 이름들이 불려진다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동 의제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스타벅스의 금칙어 선정, 독자분들은 동의하시나요? 스타벅스는 “닉네임과 관련해 파트너나 고객의 다양한 의견과 불편 사항도 지속 반영해 나가고 있다”며 “보다 균형잡는 운영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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