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경비원을 아래로 봐요…불평하면 잘리고”

정희완 기자    이효상 기자

‘경비원 갑질 방지법’ 시행 1년…1도 달라진 게 없다

일러스트 이아름 기자

일러스트 이아름 기자

[주간경향] “자신보다 못하면 내려보잖아요. 경비원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천하게 여기는 거라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안 보고 경비라는 존재만 본다니까. 그렇다고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해요. 내 주장을 하면 그냥 잘리는 거거든. 3개월짜리 계약인데, 재계약 안 해주는 거지. 어디 갈 데도 없잖아.”

아파트 경비노동자 A씨(69)의 말에는 경비원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함축돼 있다. 이들은 입주민의 갑질,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 초단기 계약으로 인한 상시적인 고용불안 등을 안고 산다. 국토교통부의 공동주택관리시스템을 보면 지난 12월 1일 기준 150세대 이상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비원은 10만4000여명이다.

현재 경비원은 단순히 감시업무만 하는 게 아니다. 분리수거, 주차관리, 택배 보관, 청소 등 관리업무까지 도맡는다. 2020년 5월 아파트 경비노동자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폭언·폭행 등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러면서 경비노동자를 둘러싼 여러 노동문제도 함께 집중 조명됐다. 국회와 정부는 지난해 10월 공동주택관리법 등을 개정해 경비노동자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설정했다. 사적 심부름 등 부당한 지시에 시달리는 것을 방지하는 등 “근로조건 개선”이 목적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경비원 갑질 방지법’으로 불렸다.

현장 경비노동자들은 ‘변한 게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변변한 휴게시설이 없고 휴게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무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점도 여전했다. 대부분이 건강을 위협하는 24시간 맞교대로 일하지만 대가는 현저히 낮다. “아파트 운영에 필수 인력임에도 그 노동의 가치가 폄하돼 있다”(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는 것이다.

특히 초단기 ‘쪼개기’ 계약이 이들의 목줄을 쥐고 흔든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각종 법령은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다. 경비원은 고령노동자가 생계의 막다른 길에서 선택하는 ‘마지막 일자리’로 꼽힌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존중받으며 계속 일하고 싶다.”

무엇이 변했나

“1도 바뀐 게 없어요.”

경비노동자 B씨(66)는 감시·보안 외에도 여러 관리업무를 담당한다. 분리수거, 택배물품 보관, 차량증 발급, 불법주차 단속, 게시물 부착, 화단관리, 도로 청소 및 제설작업 등이다. 지난해 10월 공동주택관리법과 그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그간 논란이 된 경비원의 업무가 구체적으로 정비됐다. 기존에 경비원은 경비업법상 감시 외에 다른 업무를 해선 안 됐지만, 이런저런 관리업무를 관행적으로 수행해왔다. 현장에선 늘 혼란이 일었다. 법령 개정을 통해 ‘청소·미화 보조’, ‘분리수거 감시 및 정리’, ‘안내문 게시’, ‘주차관리 및 택배물품 보관’ 등이 경비노동자가 할 수 있는 업무에 포함됐다. B씨 입장에선 불법이던 업무가 합법이 됐을 뿐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일부 경비노동자들은 법령에서 정한 범위를 넘어선 업무도 한다. A씨는 하수구 배관이 막히는 등 공용설비가 고장 나면 수리·보수 작업을 한다. 이는 국토교통부가 예로 든 경비원의 ‘제한업무’에 해당한다. A씨는 “관리사무소장한테 우리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한번만 해달라’고 하는데,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제한업무인 건물 내 청소를 하거나, 공용 음식물쓰레기통 청소 등 법령상 허용 여부가 모호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례도 있다.

분리수거도 경비노동자의 대표적인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내가 경비를 하러 왔는지, 분리수거를 하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기존에는 분리수거 정리를 도우면 매달 수당을 받기라도 했지만, 합법 업무로 규정되면서 수당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법령 개정의 당초 목적인 ‘근로조건 개선’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2020년 5월 18일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경비실에 추모의 글이 붙어 있다. 그 밑에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권도현 기자

2020년 5월 18일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경비실에 추모의 글이 붙어 있다. 그 밑에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권도현 기자

“사람이 아니라 악마”

입주민의 갑질은 나아졌을까. ‘갑질 방지법’ 시행 이후 폭행은 줄었다는 반응도 있지만, “지금도 갑질은 말도 못 한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물론 모든 입주민이 그런 건 아니다.

C씨(68)는 반려견의 배설물을 그대로 두고 가려는 입주민에게 “치우셔야 한다”고 공손히 말했다. 돌아온 말은 “경비XX가”라는 욕설이었다. 특히 모욕적인 언사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한 입주민이 자녀와 함께 경비실을 바라보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라고 말했을 때다.

분리수거장에 내놓은 대형폐기물에 처리 스티커가 없어서 ‘양심껏 처리해 달라’는 취지의 안내문을 붙였다가, 해당 입주민이 “경비가 뭔데 양심이 어쩌고저쩌고 떠드냐. 당장 모가지 자르라”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D씨(67)는 눈만 마주치면 시비를 거는 입주민의 “발걸음 소리까지 기억해 두고 근무를 섰다”고 회상했다. 하루는 해당 입주민이 30분 동안 욕설을 퍼부었다. 참다못한 D씨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단지를 나왔다. 입주민은 지하철 입구까지 쫓아와 괴롭혔다. 그는 “그간 살면서 이런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 사람이 아니라 악마로 보였다”고 했다. 입주민들이 술에 취해 아파트 경비실을 발로 차거나 경비실 외벽에 소변을 보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이런 갑질을 당해도 마땅히 하소연하거나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경비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혼자 삭이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상책”이다.

경비용역회사나 관리사무소에 고충을 얘기할 엄두도 못 낸다. 외려 “왜 입주민과 다툼을 하느냐”는 질책만 받는다. 이들 또한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고용했기 때문이다. E씨(67)는 “관리사무소도 절대적으로 입주민 편이다. 이들도 입주민한테 잘 보여야 재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경위 파악도 안 하고 무조건 입주민에게 사과하라고만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을도 못 된다. 입주민이 갑, 관리사무소는 을, 경비용역회사는 병, 경비원은 정”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울 강동구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시행해 지난 5월 발표한 실태조사에도 이런 현실이 담겨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해결방법’을 묻는 질문에 경비원 168명 가운데 62.5%가 ‘참고 넘어감’, 20.8%가 ‘없음’이라고 답했다. 10명 중 8명이 속수무책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휴게시간? 사실상 대기시간

휴게시간 문제도 경비노동자들이 억울해하는 부분이다. 이들은 대부분 24시간 맞교대로 일한다. 휴게시간은 보통 점심과 저녁, 야간 등 세 구간으로 나뉜다. 휴게시간은 임금에서 제외된다.

A씨의 근로계약서상 휴게시간은 점심과 저녁에 각각 1시간, 야간에 6시간(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이다. 관리사무소는 점심과 저녁에 각각 15분을 더 쉬는 대신, 그만큼의 시간인 30분 동안 새벽에 건물 순찰을 하게 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옷을 챙겨 입는 시간, 순찰을 마친 뒤 정리하는 시간 등을 포함하면 약 1시간이 소요됐다. 새벽에 한번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도 어렵다. A씨는 “새벽 3~4시에 순찰에 걸리면 다시 잠을 못 잔다. 눕는다고 바로 잠이 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새벽 시간에 순찰을 하면 근로기준법상 야간수당이 추가로 붙는다.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점심과 저녁 휴게시간이 총 30분 늘었다는 점을 이유로 지급하지 않았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의도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낮 시간대 휴게시간에도 맘 놓고 쉴 수 없다. 수시로 방문차량을 관리하고 입주민의 민원에 응대해야 한다. 계약서에 휴게시간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기도 한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인상분만큼의 임금을 깎기 위해 휴게시간을 늘리는 꼼수도 벌어진다. 근무시간 중간중간에 30분이나 1시간짜리 휴게시간을 여러 번에 걸쳐 끼워넣는 아파트단지도 있다. 휴게시간이 30분이면 사실상 쉬기가 어렵다. 일과 휴게시간을 칼같이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분리수거가 진행되는 날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분리수거장을 지켜야 한다. E씨의 말이다. “휴게시간과 최저임금은 연계돼 있다. 어딜 가나 똑같다. 아파트마다 임금이 100만원 차이 나는 곳도 있다. 적게 주는 곳은 휴게시간을 대폭 늘린 곳이다. 근데 일하다가 딱 끊고 쉬러 갈 수 있나. 쉬는 시간이라고 분리수거를 손 놓고 들어가 버리면 입주민들이 항의한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본인이 알아서 휴게시간을 챙기라고 하는데 불가능한 얘기다.”

2020년 5월 12일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경비실 내부 / 권도현 기자

2020년 5월 12일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경비실 내부 / 권도현 기자

F씨(73)의 야간 휴게시간은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다. “오후 10시면 한창 일할 시간이다. 입주민과 택배 차량이 들락날락한다. 새벽 3~4시에도 새벽배송 택배차가 온다. 차량 조명에다가 시끄러운 엔진 소리까지, 눈만 아프고 잘 수가 없다”고 했다. 경비실 앞에는 휴게시간 안내문도 부착돼 있다. 그러나 “음식물쓰레기통 작동 안 한다고 새벽에 불쑥 찾아오는 입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새벽에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청하는 경비노동자도 있다고 한다.

경비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은 사실상 대기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의 정의헌 단장은 “휴게시간에 강제업무를 시키는 것과 같다. 무급노동 강요”라고 했다.

부산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부산지역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도 휴게시간 실태가 담겼다. 24시간 맞교대제로 일하는 4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규정상 총휴게시간은 9.41시간이었다. 실제 휴게시간은 7.44시간으로 약 2시간이 짧았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당일에도 근무를 서거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일주일 격리 기간에 근무를 못 해 임금이 깎인 사례도 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정부지원에 따라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경비용역업체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행정처리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

‘전시성’ 휴게시설

‘쉴 수 없는’ 휴게시설도 많았다. G씨(79)는 경비초소에서 식사하고 잠도 잔다. 휴게시설이 있기는 하다. 다만 아파트단지의 노인정 안에 마련돼 있다. G씨는 “노인정을 찾은 입주민들과 함께 사용해야 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쉴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라고 했다.

H씨(63)는 휴게시설이 따로 있지만 경비실을 떠나기가 어렵다. 수시로 열어줘야 하는 공동현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다. 밤에 경비실에서 잠을 잘 때도 근무하는 것처럼 불을 켜둬야 한다. 일부는 휴게공간이 너무 멀어서 계속 경비실에 상주하기도 한다. 간이침대나 의자, 비품 등은 대부분 입주민이 사용하다 버린 것들이라고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실태조사에도 ‘휴게시설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3.9%로 집계됐다. 이유는 ‘업무공간에서 쉬는 게 더 편하다’가 64.8%로 가장 많았다. ‘시간이 없다’가 13.0%, 너무 멀다 9.3%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야간근무 때 ‘경비초소에서 취침한다’는 응답이 42.9%로 가장 많았다.

초단기 계약의 굴레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은 일상이다. 대부분이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엔 3개월 이하의 초단기 계약이 확산하는 추세다. C씨는 경비일을 시작한 지 13년이 됐다. 그간 아파트 8곳을 옮겨다녔다. “파리 목숨”이라고 했다.

그는 “초반에는 5년 이상 일하기도 했다. 요새는 달라졌다. 최초 수습기간을 이유로 3개월을 제시했는데, 이후에도 별말 없이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고 말했다. 초단기 ‘쪼개기’ 계약이다. 1년을 채우는 경우도 드물다. 1년이 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짧은 계약기간은 입주민의 갑질과 개선되지 않는 열악한 처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입주민의 갑질이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해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괘씸죄’로 찍히면 재계약이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A씨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 좋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재계약이라는 무기로 경비노동자를 길들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으로 정한 월급명세서를 받지 못한 경비노동자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부산노동권익센터의 실태조사 결과, 326명 가운데 계약기간이 ‘3개월 이하’는 71.8%에 달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조사에서도 3개월 이하는 26.1% 등 1년 이하가 94.4%로 나타났다.

이런 고용불안과 더불어 ‘저임금·장시간 노동’도 문제로 꼽힌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1개월차와 10년차의 급여가 대체로 같거나, 경험이 많을수록 임금이 떨어지기도 한다. 반면 노동시간은 대체로 길다. 한국노동사회원구소의 실태조사(2022.5)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경비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평균 55.5시간이었다. 이 중에서 52시간 초과 노동자가 44.1%로 가장 많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합법화

24시간 맞교대를 통해 주 52시간이 넘는 노동을 함에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이 가능한 배경엔 ‘감시단속직의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제도가 있다. 대표적인 감시직이 경비노동자이다. 근로기준법상 감시를 주된 업무로 하면서 심신의 피로가 적다고 판단하면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거쳐 감시직으로 인정할 수 있다. 감시직은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 주 40시간(최대 52시간), 하루 8시간, 휴게, 유급주휴일, 연장·휴일근로의 수당 등이다.

노동부는 감시직 승인 요건을 근로감독관 집무규정(훈령)에 명시한다. 감시가 본래 업무지만 관리 등 다른 업무를 반복해 수행하거나 겸직하면 승인이 안 된다. 노동부는 지난해 10월 경비원의 합법 업무가 늘어난 것을 계기로 승인 요건을 강화했다. 적정한 휴게시설 설치와 휴게시간 보장 등을 요건에 새로 추가한 것이다. 아울러 ‘승인 판단 가이드라인’도 마련해 심신의 피로도가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할 정도로 높은지 여부가 기준이라고 밝혔다. 승인이 안 되거나 취소되면 감시직인 경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일반노동자로 전환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자료

고용노동부 자료

승인 요건이 강화됐지만 승인율은 여전히 높다. 감시단속직의 최근 5년간 승인율은 평균 90%를 웃돈다. 2018년 2만1724건(94.8%), 2019년 1만3258건(96.0%), 2020년 1만1522건(93.6%), 2021년 1만1702건(94.0%) 등이다. 올해도 10월 말 기준 8709건(92.6%)으로 예년과 차이가 없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보통 승인 요건에 충족하지 않으면 불승인을 내리기 전에 사업주가 신청을 반려한다. 보완 후 다시 신청을 하기 때문에 불승인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기존에 승인을 받았던 단지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지는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앞선 경비노동자들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휴게시설·휴게시간 확보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승인 유효기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도 당초 지난해 2월 3년 주기로 재승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승인 유효기간이 없어 관리·감독이 어렵고 승인 이후 변동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 합리적 제도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며 필요성을 인정했다.

실제 이뤄지지는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승인 유효기간을 3년으로 두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 개정이 필요해 의원입법을 통해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5월에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 논의가 진척되지도 않았다.

감시단속직 승인 제도는 그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다. 노동부는 2019년 9월 이전엔 서류 심사만으로 승인을 해줬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에야 현장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갑질 방지법에 따라 경비원의 관리업무가 대폭 증가한 만큼 아예 경비노동자를 감시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공동주택관리법령 개정에 따라 경비노동자가 관리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감시직 승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실태조사 결과를 봐도 아파트 경비원은 관리업무를 더 많이 수행한다. 경비원 314명을 대상으로 업무비중을 설문조사한 결과, 방범·안전점검이 33.7%였다. 분리수거(26.5%), 주차관리(14.6%), 안내문 게시(8.1%), 택배관리(7.2%), 조경(4.4%), 미화(3.2%) 등 관리업무가 64%를 차지했다.

‘노동인권 아파트’ 인증 사업

경비노동자를 감시직 승인 대상에서 당장 제외하면 고용불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24시간 맞교대제를 개편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노동부는 지난해 8월 근무체계 개편 컨설팅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했다. 경비노동자의 불필요한 야근을 줄여 건강권을 보호하고 임금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20여개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공인노무사회가 위탁을 받아 컨설팅을 진행했다. 개편안을 수용한 곳은 없었다. 노동부는 올해 200여개 단지를 대상으로도 컨설팅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반면,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해와 올해 진행한 컨설팅에선 총 33개 단지 가운데 18개(55%)가 개편안을 전면·부분 수용했다.

초단기 계약 등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간제법을 개정하거나, 용역회사가 바뀌어도 고용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아파트단지와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우수단지를 선정하는 ‘노동인권 아파트’ 인증 사업 등이 거론된다. 이런 우수단지에 지자체가 특별히 인센티브를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경비노동자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지자체는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 경비노동자와 1년 이상 계약을 체결하거나 휴게시간을 준수하는 등 모범이 되는 아파트에는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입주민의 갑질 등을 금지하는 관련 법령의 정비도 필요하다. 공동주택관리법에는 입주자 등이 경비노동자에게 부당한 지시·명령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선언적 의미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나 산업안전보건법상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 조치’도 아파트 경비노동자에겐 적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입대의-위탁관리회사-경비용역회사-경비원’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간접고용 구조와도 연결된다. 경비노동자의 법적 사용자는 용역업체이기 때문에 용역업체가 자신을 고용한 입주민을 상대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남 위원은 “사용자 책임을 도급인(입대의)에게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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