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는 7일간 90.5시간 노동도 가능…“사용자만 유리한 개편안”

김지환 기자

직장인 10명 중 3명 연차 제대로 못쓰는 현실 속

“연장근로시간 월·분기·반기·연 단위 확대안은

사용자가 원할 때 몰아서 노동자 쓸 수 있는 안”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직장인 10명 중 3명이 연차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런 현실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안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때 몰아서 노동자를 쓸 수 있는 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7~14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3명(30.1%)은 법정유급휴가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e메일 제보 중 휴가 관련 내용은 229건이었다. 이 중 연차휴가 제한이 96건(41.9%)으로 가장 많았다.

한 노동자는 직장갑질119에 “연차 쓰는 것에 대해 상사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한다”며 “연차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하니 ‘어느 직장에서 연차를 다 쓰냐’고 하더라”고 제보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상사가 연차 승인을 했다가 ‘내일 내 기분에 따라 결정하겠다’며 승인을 번복했다. 다음날 왜 연차를 쓸 수 없냐고 묻자 ‘안마를 해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는 휴가를 모아 ‘제주 한 달살이’를 가라고 하지만, 한 달 휴가가 가능해지려면 최소 117시간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며 “하루 12시간씩 30일 일하거나 10시간씩 60일을 일해야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론적으로는 7일간 90.5시간 노동도 가능…“사용자만 유리한 개편안”

정부는 개편안에 따른 1주 최대 노동시간은 주휴일 1일을 제외하고 69시간(11.5시간×6일)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주 90.5시간이 최대 노동시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적 사례는 아니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는 주 69시간제라고 하지만 일요일(유급휴일)에 휴일근무수당을 지급하면 (7일을 일해) 주 80.5시간제가 된다. 한 주의 첫날은 전날 근무가 없어 ‘연속 11시간 휴식’으로 시작하지 않으니 10시간을 더해 최대 21.5시간(1일 24시간 중 2.5시간의 휴게시간 제외)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몰아서 일하기’는 주 69시간제가 아니라 주 90.5시간제(80.5시간+10시간)”라고 주장했다.

월~금(5일간) 내내 12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한 방식. 직장갑질119 제공

월~금(5일간) 내내 12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한 방식. 직장갑질119 제공

아울러 ‘근무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이 없는 주 64시간제는 ‘주5일 자정 퇴근법’이고,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주 4일제를 하려면 나흘 연속 새벽 4시에 퇴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개월로 할 경우, 특정 주에 몰아서 근무하면 월~금(5일간) 내내 12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하다. 휴게시간을 포함하면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자정에 퇴근하는 생활이 주 5일 내내 가능해지고 그러고도 토요일에 1.5시간을 더 일을 시킬 수 있다(평일 5일 12.5시간 근무 + 토요일 1일 1.5시간 근무 = 총 64시간)”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면서 주 4일제도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근무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없이 주 4일제로 일하면 주 4일 내내 하루 16시간 근무(1일 8시간 근로 + 연장근로 8시간 : 1주 총 64시간)도 가능하다”며 “주 4일 내내 아침 9시 출근, 새벽 4시 퇴근이다. 즉 하루 24시간 중 19시간을 회사에 있어야 한다(1일 근로시간이 16시간이므로 도중에 휴게시간 3시간)”고 설명했다.

주 4일 내내 아침 9시 출근, 새벽 4시 퇴근하는 주 4일제. 직장갑질119 제공

주 4일 내내 아침 9시 출근, 새벽 4시 퇴근하는 주 4일제. 직장갑질119 제공

직장갑질119 야근갑질 특별위원장인 박성우 노무사는 “정부안은 실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법안”이라며 “‘몰아서 일하기’ 법안은 즉시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반박자료를 내고 “현실적이지 않고 수치상에 불과한 가정을 일반화해서 ‘90.5시간 근무’ 등 극단적인 주장을 하거나, ‘주 5일 자정 퇴근법’ 등으로 명명하는 것은 합리적 비판이라 볼 수 없으며 흠집내기식 비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 달 휴가가 가능하려면 최소 117시간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통상 6개월~1년 정도의 장기간 동안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저축해서 휴가로 사용할 수 있는 추가적인 선택권을 부여하자는 것”이라며 “한 달간의 연장근로를 저축해서 한 달간 휴가를 간다는 것은 제도의 내용과 다르고 상식과 현실에도 맞지 않는 가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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