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조교 파업에 전임교수들 동참한 이유는”

송윤경 기자

‘시간강사 43% 임금인상’ 미 뉴저지주 럿거스대 교수진 e메일 인터뷰

[주간경향] 지난 5월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노동자가 경찰의 진압봉에 약 1분간 맞아 머리 출혈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다. 5월 25일부터는 불법집회 해산을 위한 경찰기동대 훈련이 시작됐고, 경찰청 비공개회의에선 “기동대원들의 정신 재무장”이 언급됐다. 5월 1일 노동절엔 철근공 양회동씨가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사망했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했는데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양씨는 유서에 이런 말을 남겼다.

지난 한 달간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이 겪은 일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현 정부는 “노동자를 자기 앞길의 걸림돌로 생각하는”(고 양회동씨) 것은 아닌가. 파업과 집회를 ‘진압’ 대상으로만 보는 공권력의 태도는 옳은가.

주간경향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전임 교수, 시간강사(비정규교수), 대학원생이 함께 파업을 벌여 큰 폭의 임금인상을 이뤄낸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대학(Rutgers University)의 이야기다. 럿거스대학은 재학생 6만7000명, 교직원 9000명 규모의 대형 주립대학으로, 뉴저지주에 4개의 캠퍼스가 있다.

이 대학에선 교수·시간강사·대학원생이 소속된 3개의 노조가 지난 4월 10일부터 15일까지 수업·연구를 중단하는 대대적인 파업을 벌였다. 주된 요구사항은 저임금·단기계약에 시달리는 시간강사와 대학원생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었다. 파업이 벌어지자 럿거스대학 총장은 “불법 파업”이라고 맞섰지만, 파업 지지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많은 학생이 일부 교수·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을 거부하는 등 ‘동맹휴업’에 나섰고, 지역사회에서도 파업을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필 머피 주지사까지 중재에 나서 시간강사와 대학원생 노동자 임금을 33~43% 인상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 4월 미국 뉴저지주의 럿거스 대학에서 파업을 벌인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 등 노조원들이 뉴브런즈윅에 있는 대학 건물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미국 뉴저지주의 럿거스 대학에서 파업을 벌인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 등 노조원들이 뉴브런즈윅에 있는 대학 건물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럿거스대학의 파업 사례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의 정서로는 ‘노동자 투쟁’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대학 교수진이 일을 멈췄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이 수업을 받지 못했지만, 이들의 파업은 보편적 권리로 존중받았다. 특히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테뉴어 트랙’의 전임교수들)이 시간강사·대학원생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주로 요구하는 파업에 함께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럿거스대학 교수진이 ‘심각한 저임금’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비정규교수(시간강사)들의 임금은 교수들의 절반. 한국 시간강사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한국 시간강사 임금은 교수의 4분의 1(국립대)~10분의 1(서울 사립대) 수준이다. 조교와 연구원, 학회 간사로서 허드렛일을 맡는 대학원생 역시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교수사회의 주축인 정년보장 교수(테뉴어 트랙의 교수)들은 이러한 사안에 대해 대개 ‘방관자’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수·시간강사·대학원생들이 힘을 합해 파업을 벌여 승리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럿거스대학의 토드 울프슨 교수(저널리즘학과·교수노조), 호위 스워들로프 교수(영문학과·비정규교수노조), 행크 캘럿 교수(저널리즘학과·비정규교수노조)를 지난 5월 23~26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미국의 대학들이 이익을 중시하면서 저임금·단기계약의 비정규 교수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면서 “교수진 내 약자인 시간강사·대학원생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정년보장 교수들의 지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대학 교수진은 ‘풀타임’으로 일하는 전임교수와 그렇지 않은 비전임교수(시간강사)로 나뉜다. 전임교수 중에는 정년이 보장된 교수(테뉴어 트랙)와 그렇지 않은 비정년교수가 있다. 럿거스대학의 비정규교수노조는 시간강사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미국 럿거스에서는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들이 다함께 파업을 했고 34%(대학원생)~43%(시간강사)에 이르는 임금인상을 이뤄냈다. 럿거스대학 파업에 대해 교수노조와 비정규교수노조 지도부들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왼쪽부터 토드 울프슨 교수(저널리즘학과, 교수노조 부대표), 호위 스워들로프 교수(영문학과, 비정규교수노조 사무총장), 행크 캘럿 교수(저널리즘학과, 비정규교수노조 브런즈윅 캠퍼스 부대표)다.

미국 럿거스에서는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들이 다함께 파업을 했고 34%(대학원생)~43%(시간강사)에 이르는 임금인상을 이뤄냈다. 럿거스대학 파업에 대해 교수노조와 비정규교수노조 지도부들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왼쪽부터 토드 울프슨 교수(저널리즘학과, 교수노조 부대표), 호위 스워들로프 교수(영문학과, 비정규교수노조 사무총장), 행크 캘럿 교수(저널리즘학과, 비정규교수노조 브런즈윅 캠퍼스 부대표)다.

-이번 파업에서 시간강사들과 대학원생들의 처우 개선을 주로 요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심각했나요.

호위 스워들로프 “비정규교수(시간강사)들은 정규교수들과 완전히 똑같은 일을 했지만, 임금은 절반이었고, 건강보험을 비롯한 복지제도에서도 소외돼 있었습니다. 많은 비정규교수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러 개 대학을 오가면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업을 해야 했죠. 지난해 6월 모든 비정규교수의 기존 계약이 만료됐고 임금협상을 앞두고 있었는데요. 우리는 이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했습니다. ‘대학원생 노동자’들은 자신의 학위 과정을 이수하면서 그와 동시에 강의도 하고 (연구실 등에서) 일도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학생용 건강보험이 있었고 비정규 교수보다 많이 받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임금수준은 이 지역에서 살아가기엔 부족했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대학원생들도 있었고요. 대학원생 노동자들의 삶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죠. 장학금이 불가능한 이들에겐 저임금의 일자리가 주어졌습니다. 게다가 다수의 대학원생 노동자가 코로나19 때문에 학위 과정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생계유지에 필요한) 장학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겐 큰 문제였죠.”

-럿거스대학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교수들이 많아진 이유는 뭘까요.

호위 스워들로프 “럿거스대학은 공립대학이지만 최근 10여년간 주정부의 지원이 줄자, 영리 기관처럼 운영됐습니다. 학생을 돈 내는 ‘고객’으로 여기고, 타 지역과 해외에서 고객(학생)을 끌어들이는 경쟁에 빠져들었죠. 그래서 고급 기숙사와 우승 스포츠팀에 대대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대학의 각 학과는 반드시 흑자를 내야 했고, 무디스와 S&P 같은 신용평가기관이 ‘효율성’을 기준으로 내린 평가에 따라 대학의 대출금리가 좌우됐습니다. 보수가 좋고, 정년이 보장되고, 노조가 있는 노동력은 부정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이건 신자유주의의 만트라(주문)이지요. 이윤을 내지 못하는 수업은 중단됐습니다. 전통적으로 비정규교수는 낮에는 전문직으로 일하고 저녁에 파트타임으로 수업하는 객원교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가르치는 일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겼기에 소액의 임금을 받았습니다. 혹은 은퇴자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공유하고 싶어서 객원교수를 자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 측에서 교육보다는 예산 절감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임금이 싼’ 비정규교수들에 대한 의존이 시작됐습니다. 이건 미국 대학들이 전반적으로 겪고 있는 일입니다.”

토드 울프슨 “정년이 보장된 교수진을 비정규 교수들로 대체하는 흐름은 미국 전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습니다. 50년 전엔 대학 교수진의 절반 이상이 정년을 보장받았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28%로 줄었습니다. 럿거스대학의 비율도 대략 비슷합니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이 이번 파업에 함께했다고 들었습니다. 비정규교수, 대학원생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었는데 전임교수들이 함께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호위 스워들로프 “전임교수, 특히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파업 승리의 가능성은 아마도 낮았을 겁니다. 럿거스대학에는 3개의 교수노조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임교수와 대학원생들이 가입(AAUP-AFT)해 있고, 다른 하나는 생의학·보건 교수 노조(AAUP-BHSNJ)입니다. 또 다른 하나가 비정규 교수노조(PTLFC-AAUP-AFT)입니다. 우리는 하나가 돼 교섭하기로 했고, 이 결정이 우리의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정년보장 교수들은 가장 열악한 처지의 동료들(저임금을 받는 비정규교수와 대학원생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중심에 두고 함께 싸웠습니다. 이타적인 동기도 있었겠지만, 비정규교수의 증가로 그들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정년보장 교수들이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급여인상을 수용함으로써 비정규교수와 대학원생 노동자들은 큰 폭의 임금인상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토드 울프슨 “럿거스대학의 AAUP-AFT 노조는 정년보장 교수뿐 아니라 대학원생 노동자까지 함께하는 노조입니다. 하지만 럿거스대학엔 별도의 시간강사 노조(비정규교수)가 조직돼 있었죠. 새로운 계약을 앞두고 우리는 단결하기로 하고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이 자기 자신보다 취약한 지위의 동료들(비정규교수·대학원생 노동자)의 승리를 위해 더 헌신했기 때문에 이번 파업에서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강사는 43%의 임금인상, 대학원생 노동자는 33%의 임금인상을 이뤘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의 계약에 소급적용하기로 했다고요. 이런 성공, 어떻게 가능했나요.

호위 스워들로프 “우리의 요구사항을 다 관철하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교수는 여전히 건강보험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죠. 그렇지만 이번 파업의 결과가 비정규교수들의 역사적 승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성취가 뉴저지와 미국 전역의 모든 비정규교수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 믿습니다. 고등교육에서의 ‘긱 이코노미’ 종말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두 자릿수 임금 상승으로 우리는 거의 ‘동일노동 동일임금’(비정년 교수 기준)을 달성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증액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일종의 고용안정성을 얻었습니다. 그동안에는 비정규교수들이 매 학기 계약을 다시 맺어야 했지만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1년 계약을 맺게 됐고, 일부는 2년 계약이 약속됐습니다.”

행크 캘럿 “우리의 파업 승리를 잘 설명하는 두 가지는 ‘준비’와 ‘단결’입니다. 지난 2년간 비정규교수 노조는 전화·문자는 물론 SNS를 활용해 노조원을 모았습니다. 매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도 (우리의 문제의식에 관해) 교감했습니다. 그리고 정년보장 교수, 대학원생 등 여건이 다른 교수진들과 ‘단결’했죠. 지난 1년간 미국 대학가에선 12차례의 파업이 있었는데, 럿거스대학에서만 이런 단결이 이뤄졌습니다.”

지난 4월 미국 뉴저지주의 럿거스 대학에서 파업을 벌인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 등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월 미국 뉴저지주의 럿거스 대학에서 파업을 벌인 교수, 시간강사, 대학원생 등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럿거스대학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파업이 잇따랐다고 들었습니다. 저임금 임시직의 증가가 원인일까요.

행크 캘럿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주립대 수업의 4분의 3은 정년보장 교수가 맡았지만, 이제는 그 비율이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2년제인 커뮤니티 칼리지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지요. 최근 이어진 대학가 파업은 대개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이 주도했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죠. 럿거스대학을 비롯한 많은 대학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학원생 장학금을 끊었고, 시간강사들을 해고했습니다. 또 수업이 온라인화되는 과정에서 시간강사들은 대학 측으로부터 아무 조력도 받지 못한 채 추가 업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대학가의 파업을 더 큰 맥락에서 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고등교육계에서 일어난 파업은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끄는 큰 파업 물결의 일부입니다. 스타벅스의 바리스타, 아마존 창고의 직원들이 저임금을 강요하고 노동자를 교묘하게 통제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시간강사들이 오랫동안 싸워 강사법을 이뤄냈지만, 이들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정년보장을 약속받은 전임교수들은 비정규교수의 현실엔 관심이 없고요. 연대를 통해 성공적 파업을 이뤄낸 경험자로서 한국 고등교육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토드 울프슨 “우리 노조의 현수막과 티셔츠엔 이런 구호가 적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상처를 입는 것은 모두가 상처를 입는 것과 같다(An injury to one is an injury to all).’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년보장 교수들에 대한 공격은 ‘교수의 비정규직화’라는 흐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조지아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정년보장 교수직 폐지·축소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편집자 주)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이 비정규교수, 대학원생들과 힘을 합하지 않으면 교수 스스로의 권리를 지킬 길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행크 캘럿 “정년보장 교수들은 자신이 시간강사(비정규교수)들이 처한 위기와 관련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강사들에 대한 의존-우리는 이것을 종종 ‘긱’이라고 부릅니다-은 대학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테면 돈이 되지 않는 수업은 사라지는 식이지요. 일부 주에서는 정년보장 교수직을 폐지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려는 흐름을 그대로 둔다면) 모든 교수를 ‘임시직’으로 만드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 럿거스대학의 정년보장 교수들은 이 사실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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