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5명 중 1명은 물도 못 마셔”···폭염에 현장이 익어간다

김세훈 기자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현장에 폭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현장에 폭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레미콘의 복사열에 몸이 익고, 유리로 둘러싸여 숨이 턱턱 막히는 작업장에서 일하다 노동자들이 쓰러집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노동이 고열 작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체감 온도가 35도를 웃돈 2일 건설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폭염 작업 시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외 노동을 고열 작업으로 인정하고 노동자들에게 휴게공간과 휴식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26년 차 철근노동자 장석문씨는 “건설 현장 어디에도 그늘이나 쉴 만한 곳이 없다. 폭염에 철근이 달궈지는 와중에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면서 “폭염기에는 30도가 넘으면 양철판에서 열이 올라온다. 그 위를 철근을 메고 이동한다. 뜨거운 양철판과 싸우는 게 철근 직종”이라고 했다.

이어 “열사병으로 언론에 나오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일사병과 열사병으로 병원에 매일같이 실려 가고 있다”면서 “정부는 야외작업을 모두 고열 작업으로 분류해놓지 않았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노동자가 작업 중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거푸집을 만드는 이창배씨는 “열사병은 며칠 쉬고 나가면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한 분이 쓰러지셨는데 가족들 얼굴도 못 알아보신다고 한다”면서 “한 번 열사병으로 쓰러지면 이후에 계속 건설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한 가정의 생계가 위험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그늘막을 설치했다고 홍보하는데 그늘막이 현장에서 10분 거리에 있으면 누가 거기에 가서 쉬겠나”라며 “정부가 건설노조 때려잡기를 하는 동안 폭염 속에서 노동자들이 대책없이 쓰러져가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현장에 폭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현장에 폭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건설자본이 자신들의 이윤만을 위해, 공사 기간 단축에만 몰두하는 상황”이라며 “노동자들은 너무 더워 쓰러질 것 같아도 작업 방해한다고 잘릴까 봐 걱정한다. 죽음을 감수하고 일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건설노조는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실시한 폭염기 건설 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설문조사에는 총 3206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설문 응답자 4명 중 1명꼴인 604명(24.9%)은 휴게공간 없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1명(20.3%·493명)은 작업장에서 시원한 물을 제공받지 못했다고 했다. 폭염기 작업 시 4명 중 3명은(74%·2372명)은 어지러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어 두통(37.9%,·1214명), 메스꺼움(35.2%·1130명), 근육경련(32.1%·1030명) 순으로 증상을 느꼈다고 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폭염 시 쉬어가면서 일하라고 하지만 공정이 바쁜 관계로 한 명이라도 일 안하면 눈치가 보인다” “정말 눈이 돌아가지만 동료들 때문에 이 악물고 한다” “(휴게시간을) 건설사에 요구하면 다음날 해고되거나 눈 밖에 난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81.7%(1981명)는 폭염이어도 별도의 작업 중단 없이 계속 일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조사치인 58.5%(664명)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고용노동부는 33도 이상에서는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에서는 시간당 15분 휴식 시간을 제공하도록 권고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매년 더위가 심해지는데 폭염 대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현장에 폭염 대책을 요구하며 얼음물을 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현장에 폭염 대책을 요구하며 얼음물을 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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