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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승무원 ‘우주방사선 위암’ 산재 첫 승인···고인의 아내는 울음을 삼켰다

김세훈 기자
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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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방사선에 20년 넘게 노출되어 오다 위암 판정을 받고 사망한 항공 승무원에 대해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우주방사선으로 인한 위암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산재는 백혈병·유방암에 국한됐다. 향후 방사선 산재 인정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5일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 따르면,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달 6일 대한항공 승무원이었던 고 송모씨(53)의 위암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위원회는 “고인의 누적 노출 방사선량이 측정된 것보다 많을 수 있고, 장거리 노선의 특성상 불규칙한 시간에 식생활을 하는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신청인의 상병과 업무의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노출 문제는 2018년 급성백혈병 판정을 받은 항공 승무원의 산재 신청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송씨는 1995년부터 2021년까지 25년가량 항공기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했다. 송씨의 연평균 비행시간은 약 1022시간이었는데 그중 절반(49%)은 장시간 비행인 미주·유럽 노선이었다. 미주·유럽 노선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단기 노선보다 우주방사선 노출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씨는 2021년 4월16일 위암 4기를 진단받고 다음 달 8일 사망했다.

대한항공이 측정한 송씨의 2008년 이후 총 누적 피폭 방사선량은 약 42mSv였다.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1년간 누적 피폭 방사선량은 2.7mSv였다. 항공 승무원의 연간 개인 누적 피폭 방사선량 안전기준은 6mSv다. 대한항공 측은 “승무원의 누적 피폭 방사선량이 연간 6mSv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으며, 신청인의 상병(위암)과 우주방사선과의 상관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단은 대한항공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대한항공이 사용하는 측정법(CARI-6M)에 따른 누적 방사선량이 과소측정 됐을 수 있다고 봤다. A 심사위원은 “누적 방사선 자료상 100mSv 이상의 방사선 노출이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B 심사위원은 “CARI-6M은 (방사선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이보다는 노출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은 연간 6mSv 이하의 저량 방사선 노출도 암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B 심사위원은 “저선량 방사선의 위험도에 대해 최근 더 알려진 상황 등을 고려했다”고 했다. C 심사위원은 “전리 방사선은 암 발생과 역치가 없는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고인이 장거리 비행으로 불규칙한 식생활을 한 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고 음주·흡연력이 없었던 점, 위암이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발병한 점도 고려됐다.

아내 “여전히 죽음 실감 안 돼···평소처럼 잠깐 비행을 떠난 것만 같아”

송씨의 부인 원모씨(48)는 산재 승인 소식을 듣고 울음을 삼켰다. 원씨는 송씨와 함께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다 부부가 됐다. 원씨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 뒤로도 송씨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랬던 남편이 “소화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한 달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평소 아픈 내색도 잘 하지 않던 남편의 죽음을 원씨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씨는 “여전히 남편이 평소처럼 잠깐 비행을 떠나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황망한 소식에도 원씨는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남편이 숨질 당시 자녀들은 고등학교 3학년·중학교 2학년이었다. 원씨는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지 3일 만에 숨을 거뒀다. 유언도 따로 남기지 못했다”며 “아이들이 한창 예민하고,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기였다. 나부터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산재 신청에 압박감도 컸다. 첫 산재 신청에서 불승인을 받았을 때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좌절감이 들 때마다 원씨는 자신과 남편의 경험을 돌이켜봤다. 그는 “평소 남편과도 승무원의 불규칙한 생활 등을 자주 이야기했다. 항공 승무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며 “남편의 위암에 업무가 영향을 줬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고 했다.

원씨는 남편의 자긍심을 지켰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는 “남편은 대한항공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비행업무 외에도 승무원 교육을 도맡는 등 열심이었다”며 “남편의 헌신이 인정받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원씨는 다음 주 자녀들과 함께 남편이 안치된 납골당을 찾을 계획이다.

유족 측을 대리한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대표노무사는 “혈액암에 이어 비교적 흔한 고형암인 위암에도 우주방사선 산재를 인정해준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현재 대한항공의 방사선 측정 모델에는 과소 측정 우려가 계속 제기되는 만큼 신형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직 확인되지 않은 방사선의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 승무원의 건강 상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당 기사는 항공승무원의 ‘우주방사선 위암’ 산재 최초 인정 사례를 소개하며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산재는 백혈병 등 혈액암에 국한됐는데, 위암처럼 단단한 덩어리 형태의 종양인 고형암에 대해서도 산재가 인정된 것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후 독자의 제보로 2021년 유방암에 대해서도 항공승무원의 우주방사선 산재가 인정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해당 문장을 “그간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산재는 백혈병·유방암에 국한됐다”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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